불공정거래에 멍드는 금융투자자│③ 국내외 피해사례

외국금융사 시세조종, 2천억대 피해소송

2015-06-23 10:28:57 게재

2010년 도이치증권·은행 옵션쇼크 사건 … 5년 지나도록 처벌·손해배상 지지부진

지난 2010년 11월 11일은 국내 증시가 외국증권사에 의해 막대한 타격을 받은 날이다. 도이치뱅크 홍콩지점 임직원들이 옵션만기일에 주식을 대량 매도해 주가를 크게 떨어뜨렸으며 자신들은 이득을 챙긴 '옵션쇼크' 사태가 발생했다. 1개 증권사가 국내 증시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수천억원대의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으로 다음해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이 도이치증권과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으며 배상액수는 25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내일신문이 전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옵션쇼크' 사건의 민사소송재판을 조사한 결과 서울중앙지법에서 9건의 소송이 4년 넘게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재판 거부하는 외국증권사 임직원들 = 검찰은 지난 2011년 8월 '옵션쇼크'를 주도한 외국인 임직원 3명과 한국도이치증권 박 모 상무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2010년 11월 11일 장 마감 직전에 '코스피200지주 풋옵션'을 16억원 상당 사들였다. 지수가 하락하면 이익을 얻는 선물 상품이다. 그리고는 코스피200지주를 구성하는 199개 종목의 주식 2조4400억원 어치를 시세보다 낮게 매도주문을 냈고 코스피200지수는 2.79% 급락했다. 코스피지수도 전날보다 53.12p 떨어했다.

검찰은 이날 도이치은행과 도이치증권이 시세조종행위를 통해 448억7873억원의 불법이득을 올렸다고 판단했다. 도이치뱅크 홍콩지점은 시세조종을 벌이기 이틀 전에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도이치증권 등에 빌려준 주식을 돌려받았고 당일에는 사전신고 시한(2시45분)을 1분 넘겨 거래소에 신고했다. 검찰은 짜여진 각본에 따라 다른 투자자들이 대량매도를 알아차릴 수 없게 한 의도적인 행위라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재판을 위한 입국을 거부했고 검찰은 홍콩사법당국에 이들의 송환을 위한 사법공조를 요청한 상태다.

결국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제대로 재판을 열지 못하고 연기와 재판기일 변경, 추정(추후지정)을 거듭하다가 외국인 임직원 3명과는 별개로 한국도이치증권 박 모 상무와 한국도이치증권에 대해 먼저 심리를 진행하는 분리 재판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사법공조를 통해 피고인들의 신병 인도를 요청한 상황이고 분리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송환이 미뤄지고 있어 외국인 피고인들에 대해 처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형사재판이 공전을 거듭하면서 민사재판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이치은행과 증권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은 9건으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 여러 곳에 흩어져있다. 그 중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가 선도 재판부 역할을 맡아 중요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해당 재판부는 전문기관에 피해금액 산정을 의뢰해 결과를 넘겨 받았으며 현재 원·피고측은 감정결과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해당 사건을 맡은 재판부의 한 관계자는 "원·피고측 대리인들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형사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도 민사소송이 지연됐던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도이치증권측 소송대리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해당 감정결과와는 별개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금융기관들이 다른 계좌를 통해서는 이익이 발생한 측면도 있는 만큼 이익 부분은 피해액 산정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추가 심리도 이뤄질 전망이다.


2000년대 들어 파생금융상품 피해 늘어 = 금융공학이 발전하면서 2000년대 들어 금융투자상품의 종류가 급증했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파생상품들이 유통되면서 국제적으로 유사한 피해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파생금융상품과 관련해 영국의 리보금리조작사건이나 골드만삭스의 부채담보부증권(CDO) 불완전판매사건, 홍콩의 미니본드사건 등이 불공정거래행위로 투자자나 고객에게 피해를 입힌 대표적 사안으로 분류하고 있다.

JP모건의 CDS(크레딧디폴트스왑)관련 거액손실사건과 UBS은행의 파생상품트레이더 거액손실사건은 금융기관의 피해가 주주와 예금자, 국민에게 간접적으로 전가된 경우에 해당된다.

증권집단소송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법무법인 한누리는 파생상품의 피해유형을 4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파생상품 기초자산 가격조작 사건'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주가연계증권인 ELS종가 조작사건이 대표적이다. 증권사 트레이더가 ELS의 기초자산에 해당하는 개별종목이나 지수에 개입해 종가를 특정 가격에 고정해 이득을 취한 행위를 말한다. 영국의 리보금리조작사건도 마찬가지다. 리보는 런던에 있는 16개 대형은행이 다른 은행으로부터 단기자금을 빌릴 때 내기로 한 금리로 영국 은행연합회가 취합해 평균을 산출한 것이다. 하지만 리보를 바탕으로 한 선물·옵션에 투자한 트레이너들이 금리보고자들에게 실제 금리보다 낮은 금리를 은행연합회에 보고하도록 해 리보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춘 것이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이러한 경우를 '복권함 속에 특정번호의 구슬만을 투입한 추첨'이라고 비유했다. 결과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파생금융상품 불완전판매 △구조적으로 거래당사자간에 균형을 상실한 위험한 파생상품판매 △파생상품 자기매매로 인한 거액의 손실 등을 피해 유형으로 분류했다.

국내에서 얼마전 문제가 된 '키코사건'은 '구조적으로 거래당사자간에 균형을 상실한 위험한 파생상품판매'로 분류했다.

키코는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장외파생금융상품이지만 일방의 이익이 상대방의 손실이 되는 베팅 구조를 갖고 있다. 환율이 일정 구간 이하로 내려가면 계약은 무효가 되는 반면 특정 환율 이상으로 한번이라도 올라가면 계약금액 이상을 은행에 매도해야 한다. 은행의 위험은 제한적인 반면 상품에 가입한 고객(기업)의 위험은 무한대가 될 수 있는 구조다.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파생금융상품이 위험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발달하고 있다고 하지만 점차 투자자가 알기 어려운 방식으로 위험을 숨기고 있다"며 "금융상품이 위험을 통제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허황된 가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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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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