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도서정가제를 위협하다│④ 인터뷰 성의현 출판유통심의위원장

"정가제 없으면 할인마케팅에 시장 좌우"

2016-06-29 11:25:24 게재

"사재기는 범죄 행위" … "현행 정가제 정착 후 궁극적으로 완전정가제 지향"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라 정가제를 3년마다 폐지 또는 완화, 유지하게 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 반환점을 돈 셈이다.
'보다 건전한 출판 생태계를 만들어내자'는 의지로 탄생시킨 제도인 만큼 각 주체들이 정가제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필수다. 그러나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정가제를 피해가는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편집자주>

"개정 도서정가제를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여러 부정적인 면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찾겠습니다." 27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출판사 미래의창에서 만난 성의현 출판유통심의위원회(심의위) 위원장(미래의창 대표)의 일성이다.

심의위는 정가제 위반 여부를 심의, 의결하는 기관으로 정가제가 올바로 뿌리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 내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신고센터)에 신고된 내용 등을 바탕으로 회의를 개최한다.

내일신문은 성 위원장을 만나 여전히 계속되는 정가제 무력화 행위에 심의위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출판계 인사로서 앞으로 정가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들었다.

■'사재기'가 계속되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범죄 행위로 호도하는 것이 사재기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신뢰를 떨어지게 하는 행위다.

2015년에 박홍근 의원이 발의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사재기는 범죄가 됐다. 이제 사재기가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아직까지 처벌받은 사례는 없으며 지난 4월 정가제 위반으로 의결된 출판사들의 경우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출판계 자율협약에 따라 사재기로 의결되면 해당 출판사 책은 각 서점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내려진다. 출판 단체에 소속돼 있으면 제명 처리된다.

■여러 노력들이 있는데도 사재기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사재기가 손쉬운 마케팅으로 전락됐다. 1000만원 들여 사재기를 하면 60~70%는 다시 출판사로 돌아오기 때문에 해당 출판사로선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심의위의 경우 해당 출판사에서 사재기 업자로 자금이 흘러들어갔는지 살필 수사권은 없다. 경찰도 수사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출판사들이 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사법당국이 제정된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사재기는 근절될 것으로 본다. 관련해 심의위 위상도 강화돼야 한다.

■심의위가 어떻게 강화돼야 하나.

심의위원의 경우 출판계, 서점계 인사들 위주로 구성되며 대부분 서울에 있다. 또 우리나라 출판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진흥원 내 신고센터는 전주에 위치해 있다. 물론 서울사무소에 임시직 직원이 2명 있기는 하지만.

심의위와 신고센터는 현장성이 굉장히 강하다. 신고센터 직원들이 전주에서 와서 출판사와 서점 현장을 조사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

■정가제 시행 이후, 온라인서점들은 중고서점을 계속 확장하는데.

유통사들은 헌 책을 팔면 팔수록 이익이지만 출판사들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 출판도 문화의 하나이고 문화는 새로움이 먹여 살린다. 새 책이 활발하게 출판되지 않으면 출판계, 서점계 등 모두 다 손해다.

■전자책 대여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기 대여의 경우 출판문화 발전에 대단히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대여제는 법에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심의위에서 관련 사안이 정가제 위반인지에 대해 논의 중이다.

또 이 경우 저작권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보통 출판사와 저자가 맺는 저작권은 3~5년이다. 이를 장기 대여한다면 저작권 다툼의 소지가 있다.

■앞으로 정가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각 주체들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막연하게 싸게 샀던 책을 비싸게 사야 한다는 불만이 있다. 출판사의 경우에도 정가제 이전이 편했던 곳들도 있다.

그렇지만 정가제 개정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자. 홈쇼핑은 가격 파괴를 하고 온라인서점은 가격 경쟁을 더 치열하게 할 것이다. 정가제가 없으면 할인 마케팅에 좌우된다.

한국출판인회의는 현행 도서정가제를 확립해 가면서 궁극적으로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지향한다. 이 경우 2017년에 법 개정을 해야 한다. 출판인회의에서 관련 문화체육관광부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정가제 이후 주된 현안이 공급률(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제공하는 정가 대비 비율) 조정이었다.

정가제 이후 할인이 사라지면서 할인 판매를 이유로 낮아졌던 공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였다. 책값의 거품을 빼고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가격으로 책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급률이 어느 정도 높아져야 가능하다는 것.

이는 각 출판사와 서점의 사적 계약으로 모두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조정이 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출판사가 서점과 합의가 안 될 경우 출판인회의로 신고를 하는데 건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출판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가제 정착 외 무엇이 필요한가.

독자들은 굉장히 똑똑하며 최근엔 책이 갖고 있는 정보 계승, 전달 기능의 상당 부분이 다른 매체들로 옮겨 갔다. 출판이 어려운 지점이다.

출판은 제도가 갖춰진다고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출판 생태계 각 주체들의 노력을 능가할 수는 없다.

예컨대 각 출판사들은 어떤 책을 기획할 것인지, 그 책이 독자들의 수준이나 현 상황에 적합한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저자 발굴도 중요하다. 대학 평가 등의 이유로 우리나라 교수들이 대중서를 많이 안 내는데 이 역시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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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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