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도서정가제를 위협하다│① 전자책 대여

전자책 수백권이 단돈 몇만원에

2016-06-22 11:30:01 게재

10년·50년 대여 "사실상 구매" … "대여제, 판매방식의 하나"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라 정가제를 3년마다 폐지 또는 완화, 유지하게 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 반환점을 돈 셈이다.

'보다 건전한 출판 생태계를 만들어내자'는 의지로 탄생시킨 제도인 만큼 각 주체들이 정가제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필수다. 그러나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정가제를 피해가는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편집자주>

 

리디북스가 '10년 대여'를 홍보하는 화면.

 

개정 도서정가제 적용을 피해가려는 대표적인 시도 중 하나는 전자책 대여다. 전자책도 정가제 적용 대상인 가운데 전자책 유통사들은 구매가 아닌 대여의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전자책을 권하고 있다.

대여의 경우 구매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기간이 최대 50년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 구매인 셈이다.

구매 안 하고 대여로 할인받기 = 전자책 대여는 말 그대로 전자책을 빌려보는 개념으로 독자들은 정가에 비해 50~90%까지 할인해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대여 기간이 10~50년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10년 대여, 50년 대여 등에 이르면 이는 사실상 구매나 다를 바 없다.

전자책을 다운받은 단말기에서 10년 동안, 혹은 50년 동안 해당 전자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독자들은 굳이 책을 구매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대여 방식을 도입, 사실상 정가제를 피해가려는 시도는 정도에 따라 다르되 대부분의 주요 전자책 유통사들이 활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예컨대 21일 리디북스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다양한 '대여' 이벤트들이 올라와 있다. '리디 단독 아작 반값 대여전 최신간 포함! 리뷰 쓰면 캐시까지' '세종서적 95권 파격 특가 대여 다시 보기 힘든 호쾌한 할인!' '반값 10년 대여 상반기 결산전! 다시 돌아온 그때 그 반값' '추천 대여도서 3년 대여 70% 할인 특별가' 등이다.

예스24의 경우 'ebook' 카테고리에 '10년대여'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이를 클릭하면 '좋은 책을 좋은 가격에 드립니다! 10년 대여 e북 모아보기'라는 화면이 나타난다. 교보문고의 경우에도 'eBook' 카테고리에서 '기다렸어요! 쌤앤파커스 10년 대여 단독'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리디북스의 경우 2015년에 50년 대여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명작소설 114권 91% ↓, 역사이야기 66권 90% ↓, 필수고전 197권 94% ↓ '등의 문구로 홍보했다. 예를 들어 '살면서 꼭 읽어야 하는 고전 197권'의 경우 전자책 정가 97만3000원을 5만5000원에 제공했다. 전자책 대여는 앱에서도 가능하다. 전자책 앱 '원북스'의 경우 일부 전자책에 대해 365일 대여를 해 주는 방식으로 30~50%까지 할인을 하고 있다.

전자책 대여제 관련, 전자책 유통사들은 전자책의 특수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여제는 전자책의 다양한 판매 방식, 혹은 이용 방식의 하나라는 것. 리디북스 관계자는 "전자책의 정의도 확립돼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전자책을 판매할지 미리 정하는 것은 문화 콘텐츠로서 전자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 "대여제는 여러 판매 방식 및 이용 방식의 하나이며 이 외에도 전자책 판매에 있어서는 종이책 판매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엔 대여권 명시 안 돼 = 출판 전문가들은 전자책 대여가 개정 도서정가제를 피해 가려는 '편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여는 저작권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법이 규정하지 않은 탓에 사실상 정가제의 취지에 반하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때 법에 대여권을 명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90~2000년대 도서대여점이 전국에 1만5000개까지 늘어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대여권 개념을 출판법에 명시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던 것. 이에 공청회까지 열린 바 있으나 도서대여점 업주 등의 반발로 대여권 개념을 출판법에 명시하지는 못했다.

상업적 대여용 책은 보다 비싼 가격을 매기고 시중에 판매하는 것보다 일정 기간 늦춰 대여를 시작하는 등의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당시의 주된 논의 사안이었다. 이제 도서대여점은 거의 사라졌지만 전자책 대여를 통해 대여 개념은 여전히 살아남은 셈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전자책 분야에서 정가제와 관련해 예민하게 살펴봐야 할 것은 리디북스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여제"라면서 "대여권은 저작권법에는 없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전자책도 정가제의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에 50년 대여 등은 실질적으로 도서정가제 위반인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면서 "전자책과 종이책이 적극적, 소극적의 차이는 있어도 상호간섭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전자책 마케팅은 종이책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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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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