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사 과대평가에 동원된 회계법인

2019-12-19 10:49:15 게재

'무자본 M&A 위법' 적발

법적 제재 수단없는 '허점'

회계법인이 기업사냥꾼들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는 '비상장회사 가치 부풀리기'에 관여했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18일 무자본 인수합병(M&A) 합동점검 결과 24사의 위법행위 적발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상장회사의 외부평가를 맡았던 A회계법인을 한국공인회계사회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A회계법인은 기업사냥꾼들이 B(상장회사)사를 무자본으로 인수한 뒤에 C(비상장회사)사의 주식을 고가로 취득하는 과정에서 C사 주식을 과대평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기업사냥꾼들은 C사 주식에 대한 외부평가를 A회계법인에 맡겼다. 비상장회사의 주식을 사기 위해서는 적정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신용평가회사나 증권사, 회계법인 등의 외부평가 과정을 거친다. A회계법인은 B사가 매입할 C사의 지분 25%를 50억원으로 평가했다. 순자산지분 해당액이 5억원에 불과했지만 10배로 부풀린 것이다.

기업사냥꾼들은 C사 주식을 고가에 취득하는 방법으로 B사의 자금을 유용해 B사 인수를 위해 사채업자에게서 빌린 차입금을 상환했다. 이후 이들은 B사에 대한 주가조작 등으로 주가를 부양한 후 주식을 처분해 부당이득을 챙겼다.

회계법인이 이 같은 위법적인 거래에 이용된 것은 추후에 문제가 발생해도 제도적으로 처벌이 어렵다는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사냥꾼들은 금융감독당국의 검사와 감독을 받는 신용평가회사 또는 증권회사에 외부평가를 맡기면 본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비상장기업의 가치평가를 받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영세한 회계법인에 평가를 맡기는 것이다.

비상장회사의 주식을 과대평가해도 현행법상 회계법인을 처벌할 근거가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장주식은 시장가격으로 공정성이 담보되지만 비상장주식은 당사자 간 합의에 가치평가도 작은 회계법인을 활용해 이뤄지고 있어 왜곡이 많다"며 "비상장주식은 감리과정에서 제대로 된 외부평가가 됐는지를 판단하고 제재할 권한이 금감원에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해당 사안을 한국공인회계사회에 통보하는 것은 공인회계사법을 근거로 회계사회 차원에서 제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법 15조는 회계사의 '공정·성실의무 등'을 명시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는 공정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며, 그 직무를 행할 때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공인회계사는 직무를 행할 때 고의로 진실을 감추거나 허위보고를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공정·성실 의무' 위반이라서 실제로 중징계가 이뤄지는 경우는 없고 대부분 경징계로 마무리됐다.

윤경식 한국공인회계사회 감리위원장은 "비상장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게 어렵고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고의를 밝혀내지 못하면 중징계를 할수가 없다"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이날 무자본 M&A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67곳을 상대로 기획조사를 벌여서 상장사 24곳의 위법행위를 적발했다.

위법 행위를 보면 회계분식 14곳, 공시위반 11곳, 부정거래 5곳 등이다. 금감원은 이들 기업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통보하고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를 진행하고 있다. 장준경 금감원 부원장보는 "고발 대상자는 20명 정도이고 부정거래 5곳의 부당이득은 1300억원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며 "아직 조사·감리가 진행 중인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