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와 탄소국경조정제

시장 왜곡 줄이려면 '탄소배출권 할당' 바꾸어야

2022-12-19 11:24:33 게재

'유상할당 확대' 앞당기고 숨은 온실가스 비용 반영하는 구조로 … "전력시장 개편 등 제도 개선 시급"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국내에도 비상이 걸렸다. 새로운 무역 장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소 가격이 중요해지는 만큼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 개선 속도를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6일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통 시장 구조를 잘 짜도 발행 시장 쪽에 문제가 있으면 시장은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할당 부분을 제대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파리협정 체제에 맞춰서 할당 시장 계획을 전면적으로 다시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기 제도 안착 등을 이유로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주던 배출권을 유상할당으로 전환하는 속도를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야만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원래 목표를 달성하는 건 물론 해외 수출 시장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CBAM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하는 경우 해당 제품의 연계된 탄소 배출량 추정치를 EU-ETS와 연동, 가격을 부과해 징수하는 제도다.

◆EU, 탄소 배출 과다 수입품에 관세 = EU는 13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CBAM 도입을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르면 2023년 10월 1일부터 전환 기간(준비 기간)에 들어가 3~4년 뒤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적용 대상 품목은 △철 및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력 및 수소 등이다. 잠정합의란 △CBAM과 연계된 EU-ETS 법안 확정 △EU각료이사회와 유럽의회의 승인 등을 거쳐야 최종 합의가 되는 단계를 말한다.

14일 환경부 관계자는 "CBAM 시행을 위한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방법론 등이 아직 확정이 안 됐고 해당 부분은 내년에 만들기로 한 상황"이라며 "세부 지침 논의 내용에 따라 대응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EU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ETS를 도입했고 이러한 노력이 최대한 인정받도록 해서 기업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BAM의 기본적인 구조는 큰 틀에서 다음과 같다. EU의 수입업자는 CBAM 기구에 사업자 등록 뒤 해당 품목의 탄소배출량을 매년 신고한다. 이 배출량에 근거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이때 지불하는 CBAM 인증서 가격은 EU-ETS 경매가격과 연동되는 구조다.

ETS의 위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EU는 18일(현지시간) 산업계 탄소배출 규제를 더 강화하는 ETS 개편에 합의했다. ETS 적용 분야의 탄소 배출 감축량은 2005년 대비 2030년까지 62%로 종전 목표치 43%보다 크게 상향했다. 배출권 무료 할당제도 폐지하고 수송과 건축부문도 ETS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15일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숨어있는 탄소비용이 반영되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EU가 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을 계속 늘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배출권 비용이 전력 생산 원가에 들어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ETS 도입 초기 제도 안착을 위해서 배출권 전량을 무상으로 기업들에게 줬다. 이후 단계별로 기업에 할당된 배출권을 정부가 경매방식을 통해 판매하는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고 있지만 10%에 불과한 수준이다. 국제 협력 포럼인 ICAP(International Carbon Action Partnership)의 보고서에 따르면 EU의 유상할당 비중은 57%다. 영국은 53%, 독일 100%, 뉴질랜드 56% 등이다.

게다가 EU는 최적가용기술(BAT) 기반 벤치마크 할당(BM) 계수 적용을 서두르고 있다. BAT 기반 방식은 1등부터 10등까지 실적을 평균 내 BM계수를 만든다. 그만큼 더 깐깐하게 배출권할당을 준다는 의미다.

◆계속 되는 '간접배출' 논란, 해결책은? = 이번 EU의 CBAM 잠정 합의로 또다시 논란이 되는 부분이 '간접배출'(Indirect Emission)이다. EU의 탄소배출량 보고범위는 원칙적으로 직접배출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간접배출도 포함한다. 간접배출이란 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전기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말한다. EU-ETS는 간접배출을 포함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은 간접 배출 규제 방식을 취한다.

우리나라가 EU와 달리 ETS에 간접배출을 포함시킨 이유 중 하나는 전력 시장 구조가 다르다는 점이다. EU 주요국은 도소매를 비롯한 에너지 및 전력 시장이 전면 개방됐지만 우리나라는 전력사업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다. 탄소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전력가격 때문에 한국은 ETS에 간접배출을 포함시킨 측면이 있다. 간접배출을 ETS에서 제외하면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현 전력 시장 구조에서는 온실가스 저감 유인이 저하된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CBAM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숨어있는 탄소비용까지 체계적으로 엮어내서 기업들이 EU 등 수출국에 제시할 수 있는 구조를 정부가 만들어 줘야 한다"며 "간접배출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력 시장에 탄소 비용이 반영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고 기업들의 이중 부담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EU와 시장 상황이 다른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간접배출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국환경연구원의 '탄소중립 시대 한국 배출권거래제의 과제 및 정책 방향' 보고서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한 전기화 추세가 둔화되거나 RE100 등 재생에너지 확산 정책에 저해되지 않도록 간접배출을 ETS 제도에서 관리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만약 간접배출을 제외한다면 △전력 요금 중 ETS 비용 부담이 소비 감축을 유도하거나 △전기화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이 발생하는 국가전력배출계수 개선 등 적정한 시점의 기준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일정을 사전에 공표하는 건 물론이다.

16일 환경부 관계자는 "간접배출 부분이 ETS에 포함된다고 해서 CBAM과 큰 연관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간접배출을 제외하려면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탄소발자국 산정 방법 고도화도 필요 = EU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CBAM 도입 움직임이 있다. 코트라의 미국경제통상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의회 상원과 하원에서는 CBAM 도입을 위해 유사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청정경쟁법'(S.4355 Clean Competition Act) '공정한 전환과 경쟁법'(H.R.4534 FAIR Transition and Competition Act) 등이다.

이들 법안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탄소 가격 중요도가 전세계 수출 시장에서 점점 커지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탄소 배출량 측정 및 데이터 검증 시스템 구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EU CBAM의 경우 제품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방법은 스코프(scope) 1, 2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스코프 3의 중요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코프 1은 온실가스 직접 배출, 스코프 2는 간접 배출을 의미한다. 스코프 3은 제품 생산에서 운송 처분 사용까지 밸류 체인에 따라 생산되는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환경부 등 우리나라 정부가 '환경영향물질 국가표준 자료'(LCI DB) 품질 개선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단계별 국제 탄소 규제 대응 전략 LCI DB 개발 계획을 수립해 2030년까지 120개 제품군에 대한 탄소발자국 산정 방법을 개발할 방침이다.

15일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모든 산업 군에서 사용되는 에너지 석유화학 수송 등 기반산업 부분에 대한 LCI DB 150개를 개발해 글래드(GLAD·Global LCA Data Access Network)에 등록을 요청한 상황"이라며 "기반 산업 부분과 수출규제 제품 품목의 원료 중심의 LCI DB을 2030년까지 1000여개를 구축해 GLAD에 등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GLAD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운영 중인 LCI DB 국제 공유 플랫폼이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 온실가스 배출자가 배출량에 비례하여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발행하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서 정부에 제출한다. 기업(할당업체)마다 감축 목표량이 있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징금을 문다. 반대로 목표량을 초과하면 그만큼 배출권을 내다 팔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비용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면 탄소집약적 물품의 생산비용과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소비자들은 비싼 탄소집약적 물품 소비를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도 감소하게 된다. 나아가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시장의 가격기구에 반영되지 못해 효율적으로 자원이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도 해결할 수 있다.

■배출권 할당 방식 = 배출권 할당 방식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배출효율(BM·Benchmark) 또는 과거 배출량(GF·Grand-Fathering)에 기반을 둔 방식 등이다. GF는 과거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이다. 적용이 쉽지만 배출 시설의 감축 효율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다배출 기업이 더 많은 할당을 받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BM 방식은 동일 업종 내의 배출시설의 배출원단위를 기준으로 배출권을 할당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업체가 상대적으로 많은 배출권 할당을 받을 수 있어 기술 진보를 유도할 수 있다.

■LCI DB = 제품에 대한 환경성적을 산정하는 데 필요한 기초 데이터다. 기업들이 전과정평가(LCA)시 기초 자료로 활용한다. LCA는 제품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뿐 아니라 유통·사용·폐기·재활용 등 제품의 전 생애주기를 통틀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기법이다.

한 예로 종이컵을 생산할 때 원부자재로 종이와 코팅용 PE필름 등이, 에너지는 주로 전기가 사용된다. PE필름 생산은 원유채취→나프타 생산→PE칩 생산 등의 공정 단계를 밟는다. 이런 흐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일이 LCA고, 이를 위한 기초 자료가 LCI DB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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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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