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4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아직도 세월호냐고요? 이제부터 시작이죠"

2016-04-12 11:20:48 게재

'아직도 세월호냐'라는 사람이 많지만 여전히 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세월호 참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의문점이 남아 있는 부분을 밝히려 노력하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점검하고 감시해 나가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다. 각자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잊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세월호 기록 펴낸 '진실의힘' 이사랑 간사
"온전한 진실 찾는 출발선 됐으면"


697페이지, 2281개의 각주와 미주, 3테라바이트에 달하는 15만장의 밑자료 …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 펴낸 책 '세월호, 그 날의 기록'은 지난 3월 출간되자마자 책과 관련된 숫자들 때문에 화제를 모았다. 학술서 못지 않은 세밀함으로 자료를 모으고 뒤지고 확인한 성실함을 보여주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8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외대학생들이 서울 이문동 외대 대학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왼쪽부터 김선정(19) 이영우(19) 박혜신(27) 한승주(22) 김현철(23) 학생. 사진 이의종


"이 책의 의미요? 출발선을 알려줬다고 할까요.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독자적인 조사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있는 기록과 자료를 정리한 것이지요. 기록에 따르면 그 날 이런 일이 일어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인데 더 알아야 할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라는 내용을 제시한 것이죠. 이 출발선에서 다시 시작했으면 합니다."

11일 서울 원서동 진실의 힘 사무실에서 만난 이사랑(30) 간사의 말이다. 이 간사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세월호 기록을 펴내는 태스크포스팀의 기획자 및 진행자로 일했다.

세월호 기록팀이 만들어진 계기는 참사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2학년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와의 만남이었다. 박군은 사고 당시 B-19 객실에 있었다. 그는 배가 침몰되는 와중에 15분에 달하는 긴 동영상을 남겼고 아들의 휴대폰에서 이 영상을 찾아낸 아버지는 수현이가 남겨준 숙제를 풀기 위해 새벽마다 세월호 기록에 파묻혀 지냈다.

이사랑 재단법인 진실의 힘 간사.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이 '진실의 힘'이다. 진실의 힘 재단은 독재정권 아래서 간첩으로 몰렸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람들이 만든 단체다. 진실의 힘 재단의 박동운 이사장은 1981년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1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박 이사장은 감옥에서 나온 순간부터 자신에 관한 모든 기록을 모았고 이를 토대로 재심을 청구해 2009년 27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기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진실의 힘 재단은 박군의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간사는 물론 재단 관계자, 자원봉사자 등 여러 명이 달려들었다.

작업을 하며 가장 힘든 부분은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방향을 정하고 주관을 걷어내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방향은 쉽게 결정된 편이다. 기록에 파묻혀 지내며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치는 동안 '보통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데 답을 하자'는 쪽으로 자연스레 정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책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나, 왜 못 구했나, 이 위험한 배가 어떻게 바다에 나갈 수 있었나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기술돼 있다.

그러나 감정을 걷어내는 일은 그보다 더 힘들었다.

"304명의 사망자를 낸 참사기록을 보면서 어떻게 화가 안 날 수 있겠어요. 아이들 카톡 내용을 정리할 때에는 정말 감정적으로 힘들었죠. 화가 날수록 기록을 두번세번 확인하고 다른 자료와 비교하고 사실만 적어내려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중에는 주관이 아닌 사실을 기록할 때 이야기가 오히려 살아나는 느낌을 받고 위로를 받았어요."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이 간사가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은 뭘까. 용기라고 했다.

"기록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세월호 참사가 어느 한 사람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기 자리에서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국가라는 시스템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런 세월호 참사의 민낯을 바로 보고 직면하려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외대학생들
"우리는 세월호 세대 … 그날 이후 진짜 세상 알았으니까요"


굵직한 세월호 관련 집회에는 꼭 얼굴이 보이는 학생들이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외대학생들(세기외)이 바로 그들이다. 참사 이후 대학생들이 모여 처음으로 띄운 '416 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원회'에도 어김없이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궁금했다. 다들 지겹다는 세월호 문제를 젊디 젊은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붙들고 고민하고 있는지. 8일 서울 이문동 한국외대 '왼쪽 날개' 동아리방에서 그들을 만났다.

"지난해 1주기 추모기획단을 총학생회 차원에서 운영했는데 그 때 만난 학생들, 그리고 당시 집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뭉쳐서 이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1주기만 기리고 말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제2의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뜻을 모으자는 게 모임의 목적입니다." 모임의 연락간사를 맡고 있는 박혜신(27) 씨 이야기다. 16학번 새내기부터 박씨까지 17명의 외대 학생들이 이 모임에서 활동하며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한다. 세월호 2주기 준비활동은 물론 대학내 유가족 간담회 개최, 집회 등 세월호 관련 각종 행사 참가 등이다.

박씨 다음으로 고참격에 드는 김현철(23)씨는 지난해 4월 18일 세월호 유가족이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집에 있다가 집회 현장으로 뛰쳐 나갔다가 이 모임에 합류했다. 모임 막내인 16학번 이영우(19)씨는 우연히 길에서 듣게 된 유가족의 연설 이후 그동안 세월호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자신을 되돌아봤고 이후 세기외 활동을 하고 있다.

스펙쌓기 경쟁이나 취업준비 때문에 20대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들의 생각은 의외로 쿨했다. 뭔가 거창한 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취업도 걱정되고 다 걱정되죠. 하지만 그렇다고 세월호를 무조건 지우려고 하는 정부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는 게 제 마음이고요. 각자의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에게 세월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잊혀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김현철)

참사 후 2년이 지나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긴 했지만 대학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참사 당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새내기들이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취업경쟁이 심하니까 다른 사회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세월호에 대해서만은 그래도 이것만은 관심을 가져야지 하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고요. 16학번들 중에선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아요. 2주기 추모단 모집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희생자들을 알고 있거나 개인적인 연이 있는 학생들도 많이 만날 수 있고요. 세월호 희생자인 고창석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었다는 학생을 만난 적도 있어요."(박혜신)

세기외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게 세월호 참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고 일컬을 만큼 말이다.

"대학에서도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진짜 사회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주고, 언론은 공정하고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세월호가 보여주지 않았나 싶고. 그 충격을 우리 젊은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박혜신)

"국가가 마지막 안전망이라고 배워왔고 믿어왔는데 세월호 이후 그 믿음이 부서졌죠. 재난이 닥쳤을 때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세상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갖게 됐다고 봐야죠. "(김현철)

[관련기사]
- 세월호 2주기, 관련 책 판매부수 대폭 증가
- 도서관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 "잊지 말아요 4·16" 세월호 2주기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김형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