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커피, 주먹밥 나눔 … 눈발도 녹인 촛불집회의 '정'

2016-11-26 18:16:55 게재

"학생들 밥 못 먹을까봐 주먹밥 준비했죠"

통인동 커피공방, 시위객 쉼터로 개방

눈발 날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 시작된 5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정'으로 서로서로를 따뜻하게 덥혔다. 핫팩은 물론 뜨끈한 커피, 정성스런 주먹밥, 익살스러운 '그만'두유 나눔이 등장하는가 하면 하루 장사를 포기하고 시위참여자들의 개방쉼터로 공개하는 상점도 눈에 띄었다.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다양한 나눔족들이 등장해 쌀쌀한 날씨 속에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바리스타 박종성 씨는 일일이 손으로 내린 '하야커피'를 500잔 준비했다. 박씨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지난 주 집회 때 400잔 준비했고, 이번에는 500잔을 들고 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주말 집회가 열리는 한 계속해서 나올 작정"이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길게 줄 선 시위객들을 위해 바쁘게 커피를 내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82쿡(cook)도 '82(빨리) 하야하라, 5천잔의 커피'를 준비해서 추위에 떠는 시위객들에게 공짜 커피를, 어린이들에게는 코코아를 제공했다.

우호창(47·경기도 가평)씨는 주먹밥 230개와 석류맛 음료수를 준비해서 광화문 광장으로 가지고 왔다. 우 씨는 "지난 주에 집회 때 보니까 학생들이 많이 왔던데 혹시 돈이 없어 밥을 못 먹을까 걱정되더라"면서 "뭐라도 가져와서 나눠줘야겠다 생각했다"고 주먹밥 나눔을 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우 씨에게 주먹밥을 받아 가지고 간 한 중학생은 "밥을 못 먹은 것은 아닌데 저녁까지 있으면서 배 고플까봐 하나 받았다"면서 "어린 세대를 생각해주는 어른의 마음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어김없이 '박근혜 그만두유'가 등장했다. 촛불집회 때마다 '그만두유'를 제공해 온 '봄꽃밥차'는 이날 5000개의 두유를 들고 왔다. 봄꽃밥차는 카페봄봄, 서울노동광장, 봄꽃장학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밥차로 한 달에 한 번 외로운 곳, 투쟁하는 곳을 찾아가 밥을 제공하는 밥차다.  

하루 장사를 포기하고 추위에 지친 시위객들에게 공간을 내놓은 상점도 등장했다. 경복궁역의 '통인동 커피공방'은 '오늘 공방은 개방쉼터입니다. 별도의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걸어놓고 시위객들을 맞았다. 이 커피숍의 점장은 "여기에서 장사를 한 지 9년째인데 여기까지 시위객들이 온 적이 없었다"면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익살스러운 풍자는 여전했다. 서울환경연합 회원은 방독면을 쓴 채 '미세먼지보다 독한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팻말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100만 이상의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퇴진을 외치는데도 꿈쩍 않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몸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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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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