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지자체 관광정책 체질을 바꾸자

지자체들 너도나도 관광시장 다변화, 효과는 '글쎄'

2017-04-05 10:17:39 게재

중국 대신 동남아 대만 일본 … 무슬림권 나라에도 눈 돌려

여전히 '숫자 채우기' 급급 … 과열경쟁 탓에 '질 저하' 우려

중국의 사드보복 이후 '중국 일변도'의 지자체 관광정책이 민낯을 드러냈다. '숫자가 곧 치적'처럼 포장하면서 중국을 통해 외국인관광객 숫자를 손쉽게 늘려온 지자체들이 부메랑을 맞았다.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탈 중국'을 선언하고 시장 다변화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대상만 중국에서 동남아·대만·일본 등으로 바뀌었을 뿐 본질적인 문제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중국 관 광객은 '숫자' = 중국 관광객을 이용한 숫자 놀음은 지자체들의 단골 자랑거리였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많았지만 선출직 자치단체장들의 요구와 맞물려 잦아들지 않았다. 이 같은 현상은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았다. 실제 무안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중국인 관광객들 대부분은 광주나 전남에서 하루만 묵는다. 항공료가 저렴하고 지자체에서 인센티브까지 주니 여행사들이 선택한 일정이다. 이렇게 무안공항을 통해 입국한 중국 관광객은 지난해 15만8000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은 광주·전남에 잠시 머물기만 할 뿐 대부분 일정은 볼거리가 있는 서울이나 제주에서 보낸다. 광주·전남은 숫자에 취해 아무런 이득도 없이 비용을 지불해온 셈이다.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중국 아오란그룹 임직원 5000여명이 인천 월미도 광장에서 치맥 파티를 열었다. 5월에는 중국 중마이그룹 임직원 8000여명이 두 차례로 나눠 한강에서 삼계탕을 먹었다. 숫자에 민감한 지자체들이 홍보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행사다. 비용도 지자체나 국내 기업이 부담했다. 중국 관광객의 단골 방문지인 제주도 역시 숫자에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제주의 관광객 숫자는 300만명. 지난해 제주를 찾은 중국 관광객 숫자다. 일본 관광객이 제주를 많이 찾던 전성기 최대 인원은 25만명 수준이었다. 이 숫자가 제주 관광을 망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지자체 관광 환경은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과거 얘기가 됐다. 중국 관광객 숫자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카드가 됐다. 지자체마다 시장 다변화에 나서는 이유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체질개선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중국인 없는 서울시티버스│ 4일 오후 서울의 인기 관광지와 쇼핑타운을 들르는 서울시티투어버스가 다소 한산한 모습이다.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싸고 한·중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15일부로 여행사를 통한 단체 여행객의 한국 관광을 금지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동남아 대만 넘어 무슬림까지 = 경기도는 최는 서울·인천과 공동으로 대만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이들 지자체 관광공사들은 지난달 24~25일 대만 타이페이시에서 현지 여행업계 관계자와 외국인자유여행객 등을 대상으로 '개별자유여행 홍보설명회'를 개최했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를 비롯해 수도권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고, 인기 관광상품에 대한 현장 할인판매행사도 진행했다. 사드보복 이후 줄어든 중국 관광객 대신 대만 관광객을 주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대구시도 줄어든 중국 관광객을 대체하기 위해 대만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대구-타이페이 정기 직항 노선을 활용하려는 시도다. 지난달 말 대만의 파워블로거 10명을 초청해 주요 관광지 팸투어를 진행했다. 다음달에는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국제관광박람회에도 참가한다.

이처럼 관광정책을 펴고 있는 전국 지자체 대부분이 시장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대상은 대만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 다양하다. 광주시·전남도는 일본·홍콩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을 대상으로 전세기 관광상품 개발에 나섰고 한·일 크루즈 유치도 계획하고 있다. 홍콩을 대상으로 남도의 먹을거리와 계절별 생태자원을 알리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경남도와 부산·울산시는 인도네시아에 공을 들이고 있다. 12일 인도네시아를 합동으로 방문해 현지 대형 여행사를 대상으로 동남권 관광지를 소개하는 공동마케팅을 펼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경남도 등은 무슬림친화(할랄) 음식점을 발굴하고 지역 기도실도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인천시는 인구 12억명인 인도 시장을 공략 대상으로 선정했다. 제주도와 강원도 등 다른 지자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조동암 인천시 정무부시장은 "이번 기회에 관광시장을 여러 곳으로 확대함으로써 지역 관광환경의 체질을 개선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광익 대구카톨릭대 관광학과 교수는 "지자체들이 중국 일변도에서 동남아 등 여러 나라로 관광시장을 다변화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이면서도 건강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관광객 안내할 통역도 없으면서" = 지자체들의 관광시장 다변화가 질적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아직까지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조광익 교수는 "지자체들이 외국인 관광객 숫자를 마치 관광정책의 성과지표인양 인식한 탓에 돈을 주고 중국 여행객을 사오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시장 다변화에 나선 지자체들이 대상만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바꾸었지 이 같은 잘못된 관행은 계속 이어가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외국인 관광객 1명당 1만원씩 여행사에 지원하는 것은 관행이 됐다.

수도권과 제주, 부산 정도를 제외하면 다변화 정책의 성과를 얻기도 쉽지 않다. 전남도 관계자는 "광주·전남의 경우 서울·부산·제주를 경유하는 관광상품에 겨우 하루를 포함시키는 상품이 대부분"이라며 "인지도가 낮은데다 직항 노선도 없는 지자체들은 시장 다변화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 다변화 이전에 인프라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희현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스포츠위원장은 제주도의 시장 다변화 정책에 대해 "도가 중국의 한국관광 금지에 대한 대책으로 동남아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나섰지만 언어적으로 관광 안내를 할 수 있는 인프라조차 마련하지 않아 말뿐인 정책이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지자체들이 시장 다변화 정책에서도 쉽게 성과가 나타나는 단기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지자체들의 과도한 경쟁이 지자체 관광의 질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문두현 지역관광디자인마케팅센터 소장은 "선출직 단체장들이 임기 내 실적에 집착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보다는 단기 효과만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시장 다변화 정책도 당장 줄어든 중국 관광객 숫자를 대체하기 위한 단편적 처방이 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여행사 대표는 "동남아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갑 신분이 돼 가격덤핑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숫자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가격덤핑 단속 등 강력한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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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택 방국진 곽태영 차염진 최세호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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