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동네친구 예술로 잇는 '마을창작소'

2018-04-25 12:13:50 게재

'문화 공감'으로 사회적 관계망 넓히고 동반성장

개인 취미생활 넘어 지역문제 고민·해법모색도

"4년 전인가 직장을 잠깐 쉬던 때였어요. 영어모임이나 해볼까 싶어서 자주 가는 동네 빵집에 홍보전단을 붙였어요. 전단을 봤다고 연락이 와서 5명 정도 함께 하게 됐죠."

이윤형(36)씨가 발을 들여놓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 '공간 릴라'는 단순한 성인 동아리가 아니었다. 기타를 치고 만다라를 그리고 바느질에 시낭송까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씨 역시 평소 관심을 두던 음악과 그림을 다시 가까이 하게 됐고 작은 공연 전시에도 참여했다.

그는 "노래·연주를 잘해서 주목받는 게 아니라 보는 분들이 '우리동네 사람'이라고 관심을 가져줬다"며 "관객들 코앞에서 공연을 하고 끝나면 함께 차도 마시면서 '관계'가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 전역서 31개 공동체 꿈틀 = '관계' 확장은 이윤형씨에 그치지 않았다. 요가 선생님인 친구가 기타모임에 왔다가 요가모임을 꾸렸고 이씨와 직장 동료, 지인이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도 생겼다. 결혼을 해 성산동으로 이사한 뒤에도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청년활동가로 공간과 주민을 잇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이윤형씨는 "일에만 치여 살던 중에 회사가 아닌 내 속도로 살았던 공간"이라며 "내 속도로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마술같은 일상을 지원한다. 골목 가까운 마을예술창작소에서는 주민 누구나 무엇이든 예술과 결합해 즐긴다. 사진 서울시 제공


공간 릴라는 서울시가 생활 속 예술활동을 통해 문화적 삶을 누리고 공동체를 가꿔가도록 지원하는 마을예술창작소(마술소) 가운데 하나다. 2013년 문화예술분야 마을공동체사업으로 공간 운영자금을 지원하면서 출발했다. '시민과 가장 가까운 생활예술 거점공간'이라는 기치를 내걸 만큼 '슬리퍼를 끌고 갈 정도로 가까운 골목에서' 이웃과 함께 만드는 공간이다.

시민들 관심사만큼 마술소를 채우는 형태는 다양하다.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장르별 예술모임, 손뜨개 봉재 목동 도예 등 손작업 공방, 주민 소통을 위한 사랑방, 마을행사와 문화예술 현장을 만드는 기획 등이다.

서울시 사업이지만 역할은 신규 지정과 연장, 운영자 능력 향상을 위한 지원, 운영진단과 자문 정도로 제한적이다. 각 마술소 운영진이 운영위원회를 꾸려 서울시 문화정책과와 협력, 발전방향을 모색한다. 가장 중요한 운영원칙은 '자율성'. 마술소를 특정 기관이나 개인에 위탁하는 형태가 아니라 주민 스스로 공간을 마련해 지정을 받고 운영위원회 등 자율 조직을 만들어 꾸려간다. 문화활동을 매개로 하면서 마을공동체 회복에 목적을 두는 '마을성', 개인이 아닌 마을 공영공간으로 운영한다는 '공공성' 등 운영원칙도 남다르다.

2013년 18곳에서 시작해 2015년 32곳, 지난해 30곳에 이어 올해 31곳이 서울 곳곳에서 문화예술과 동네주민 마을을 엮어가고 있다. 여타 지원사업과 달리 한번 선정되면 2~3년간 지속 지원을 받는 형태는 아니다. 공간 지원은 2년, 이후 3년간은 프로그램 지원이라는 원칙에 따라 매년 운영평가를 진행한다. 이상민 시 문화정책과 주무관은 "목표에 맞게끔 진행을 잘 해온 곳은 연장하지만 조건이 맞지 않는 곳은 소수정예 동아리나 사회적기업 등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만 5년간 지원을 받은 마술소는 '졸업'한다.

무엇이든, 예술로 함께 풀어낸다 =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일부 공간을 활용해 마술소 지정을 받은 곳이 있는데 재선정 과정이 너무 까다롭다며 중단하겠대요. 며칠 뒤에 다시 해보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상민 주무관은 "문을 닫는다고 아쉬워하는 주민들을 보고 '공간이 더이상 내것만은 아니더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마술소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서울시민은 해마다 느는 추세다. 첫해 764명에서 이듬해 3898명, 지난해 4818명으로 확대됐다. 마술소 지정 숫자에 따라 등락은 있지만 회원 규모는 연간 5000명 내외로 안정적이다. 마술소를 개척·운영해온 주민들은 단순한 취미생활 동아리를 넘어 공동체를 고민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종로구 창신동 봉제를 이용한 마술소는 마을·예술가와 시장을 연결하는 마을기업으로 독립했고 요리 꽃꽂이 도자 등으로 뭉친 40~50대 여성들은 마을공동체사업을 거쳐 학교 연계사업까지 영역을 넓혔다. 지역아동센터에 둥지를 틀고 주민 동아리활동을 지원했더니 그곳에서 성장한 청년이 운영자로 돌아왔는가 하면 어린이·청소년 공간과 성인 문화예술강좌를 운영하던 마술소는 지역 내 각종 생활·동아리활동을 아우르는 중심이 됐다.

허선희 마술소 운영위원은 "차 한잔 하면서 무엇이든 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하고 돌아보는 공간"이라며 "다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문화예술 활동으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성낙경 운영위원장은 "방과후학교 역할부터 청소년 돌봄, 부모들 공동부엌까지 지역과 접점이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취미를 나누고 배우는 학원이나 아카데미가 아니라 주민과 함께 지역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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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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