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전 터진 감염증, 살얼음판 걷는 여야

2020-02-04 11:10:26 게재

민생경제 직접 영향 … 여론 불안정성 커져

"공천 잡음 등 '자살골', 심판 민심에 빌미"

21대 총선을 3개월 여 앞두고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터졌다.

사람이 감염의 매개체가 된다는 점에서 입국제한을 선택할 만큼 공포가 크다. 국내외의 관련 소식에 따라 여론이 바뀔 것이다. 위축된 민생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전국단위 선거를 앞두고 가뜩이나 민감해진 민심의 유동성이 커진다는 말이다.

방역대책 하나하나가 정부의 신뢰문제와 연결되고, 이에 대응하는 정치권의 태도와 자세를 평가대 위에 올릴 공산이 크다. 공천 과정 등에서 사소한 실수가 심판 정서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살얼음판 위에서 발걸음을 내딛는 형국이다.

국무회의 전 대화하는 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 전 정세균 국무총리, 이시종 충북도지사 등 국무위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메르스 부실대응, 박근혜정부 '휘청' = 최근 20년 동안 매 정권마다 국제적 감염증 피해를 겪었다.

발생 자체에 대해서는 불가항력이라고 하지만 감염증에 대한 대응이 정부의 신뢰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무현정부는 취임 첫 해인 2003년 3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맞닥뜨렸다.

이명박정부는 2년차인 2009년 4월 신종인플루엔자(H1N1)와, 박근혜정부는 2015년 5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와 대면했다.

노무현정부는 2003년 3월 16일 경보를 발령한 후 7월 7일까지 114일간 사스와 싸웠다. 국무총리를 컨트롤타워로 세우고, 국가안전보장회의내 위기관리센터를 출범시켰다. 2004년 질병관리본부를 출범시키는 등 체계적 대응을 선보였다.

국내 감염자 수는 3명, 사망자 0명으로 세계보건기구가 '사스 예방 모범국'으로 인정했다.

이명박정부도 2009년 4월 신종플루와 맞서 방역시스템을 가동했고, 비교적 잘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5월 박근혜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두고두고 입길에 올랐다. 5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9일 후에 중앙대책본부가 구성되는 등 정부차원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 받았다. 7개월 간 국내 감염자는 186명, 사망자는 39명에 달했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평가에서 손꼽히는 실책으로 불린다.

◆전국 선거 3달 앞두고 터진 사건 = 3번의 정권에서 감염증 창궐은 공교롭게도 전국단위 선거를 1년여 앞두고 터졌다.

사스가 터진 이듬해인 2004년 4월 17대 총선이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과 겹쳐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152석)을 차지했다.

이명박정부의 신종플루 대응 다음해인 2010년 6월에는 5회 동시지방선거가 열려 민주당이 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여당이던 한국당을 앞섰다.

메르스가 터진 이듬해인 2016년 4월에 열린 20대 총선에선 야당이던 민주당이 1당을 차지했다.

이같은 결과는 다양한 정치적 변수가 작동했지만 직전에 벌어진 감염증 창궐에 대한 정부의 대응 평가와도 묘하게 닮았다.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한 후 문재인정부는 중국 우한을 통한 외국인 국내입국을 차단하는 등 최고수준으로 격상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띄워 교민을 이송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의 방역태세를 두고 정치권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국당 등은 국민적 우려에 비해 정부 대응이 뒷북이거나 소극적이라고 각을 세우고 있고, 여당인 민주당은 정치권을 향해 정쟁 대신 대승적 관점에서 힘을 모을 것을 촉구한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있는 21대 총선이 3달 후에 열린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이전 정부의 방역대응을 놓고 1년여 가까운 시간에 걸쳐 비교적 차분하게 평가를 내렸던 것과는 다른 조건이다.

◆"여야 불문, 조급한 쪽이 불리" = 기본적으로 국제적인 감염증상을 정부 의지대로 통제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정부를 포함한 여권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위축된 민생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 정치분석실장은 "총선 직전에 벌어진 일이라 민심의 불안정성과 유동성이 더 클 것"이라며 "정부 여당의 마음이 조급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물론 이같은 조급증은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게도 해당된다. 공천을 위한 경선국면에서 적극지지층을 겨냥한 강성 발언이나 인기영합성 주장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우한 교민의 임시 수용시설을 놓고 충청권 일부 정치권이 보여준 대응태도가 그렇다. 충남 아산과 진천을 후보지로 정한 후 야당 의원 일부는 '핫바지론'을 들먹이며 반대여론을 부추기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주민 여론을 감안했다고 하지만 거꾸로 수용여론으로 바뀌면서 비판을 받았다.

윤태곤 실장은 "공천잡음이나 경선 부정, 막말 등의 정치권 내부의 부정적 흐름이 훨씬 크게 보일 수 있다"면서 "여야를 불문하고 사소한 실수가 정치권 심판 정서에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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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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