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난항'

2023-12-08 11:04:06 게재

여성경력단절·저출산 대책으로 추진 … "월 200만원 실효성 의문" 지적도

여성 경력 단절과 저출산 문제 대책의 하나로 추진돼 온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정책은 시범사업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가사근로자를 들여올 필리핀 당국과의 협상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탓이다.

현재 가사근로자 고용은 내국인과 중국동포로 제한돼 있다. 이를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으로 확대해 가사와 돌봄 비용 부담을 줄이자는 게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의 골자다. 이를 통해 여성 경력 단절을 막고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고용부에 따르면 내국인 가사근로자의 임금은 통근형의 경우 시간당 1만5000원, 입주형은 월 350만~450만원에 달한다. 중국 동포는 월 250만~350만원 수준이다. 맞벌이 부부라 해도 부담하기 버거운 액수다.

내국인 가사·육아 인력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도 외국인력 활용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내국인 가사·육아인력 취업자 수는 2019년 15만6000명에서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가사·육아인력 취업자의 92.3%가 50대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도 심각하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은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해 말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공식화했고, 고용부는 올해 7월 시범사업 계획안을 내놨다.

계획안에 따르면 시범사업은 서울지역 전체 자치구를 대상으로 100여명 규모로 진행된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동남아 현지에서 육아·가사 관련 경력과 지식, 어학능력 평가, 범죄 이력 등 신원검증, 마약류 검사 등 각종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이들은 비전문 취업 비자(E-9) 체류 자격으로 입국하게 된다. E-9 비자는 고용허가제 인력으로 정해진 사업장에서만 일할 수 있고, 원칙적으로 3년간 체류가 가능하다.

이들은 선정된 관리업체를 통해 각 가정에 연결돼 6개월 동안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된다. 이용자는 직장경력을 유지하며 육아 부담을 지고 있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부모 가정, 임산부 가정 등이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출퇴근 방식으로 일하며 가사·육아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 운영을 관리할 민간업체까지 선정한 상태다.

하지만 외국인 가사근로자 주요 송출국인 필리핀과의 협상이 꼬이면서 지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가사와 육아를 모두 담당할 인력을 원하지만 가사도우미와 아이돌보미가 구분돼 있는 필리핀 정부는 육아만 담당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 협상이 조금씩 진전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연내 도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당장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 협약 위반 등을 고려해 내국인과 동일하게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할 경우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받는 월급은 약 월 200만원이다. 국내 가사도우미 시급에 비해선 저렴하지만 여전히 개별 가정이 부담하기에는 높은 수준이다.

서울시가 예산을 들여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숙소비와 교통비 등을 지원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역차별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국내 가사·돌봄 인력 취업자가 감소한 것은 단순히 일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연결되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며 "미스매칭 문제를 해소하고 가사도우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 내국인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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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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