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③ 이기화 다산회계법인 대표

"감사인 지정제 반대, 깊이 있는 감사 무서워서 "

2017-12-19 10:36:50 게재

"복수지정제와 재지정제, 회계개혁 취지 무력화"

"기업들은 감사인 지정제 시행으로 감사보수 증가 등 부담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정작 무서워하는 것은 깊이 있는 감사다. 감사 강화로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것이 회계개혁의 취지라면 금융당국은 그 목표를 보고 달려가야 한다."

19일 이기화 다산회계법인 대표는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감사인 지정제 예외 대상을 확대하면 "회계개혁은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대표는 "깊이 있는 감사를 싫어하는 기업의 본질적인 목소리를 금융당국이 알아채야 한다"며 "금융당국이 감사의 본질적인 기능에 중심을 두고 감사인 지정제를 집행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감사인 지정제는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실무에서는 그마저도 제도의 실효성이 퇴색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장예정회사는 감사인 지정제 대상이다. 회계가 투명하지 못한 회사가 상장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을 지정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복수지정제를 운영하고 있다.

두 곳의 회계법인이 견적서를 내면 기업이 결정하는 방식이다. 감사보수가 낮은 회계법인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고 감사보수가 낮으면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회계업계의 '빅4'인 대형회계법인은 수익성이 맞지 않는데도 중소회계법인보다 낮은 보수를 제안해 일감을 따내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중소 회계법인들이 감사투입시간 등을 고려해 견적서를 작성해도 장래의 감사계약을 보고 들어오는 회계법인들은 낮은 감사보수를 적어낸다"며 "빅4 회계법인이 감사보수까지 낮으니까 기업들이 중소 회계법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상장예정기업을 상대로 한 복수지정제를 보면 감사인 지정제가 전면 시행 되더라도 제도의 취지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제도개혁을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회계개혁TF가 최근 '복수지정제와 재지정제'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자유수임제 기업, 자료 안주고 버티기" = 이 대표는 자유수임제에서 기업들의 대표적인 갑질을 '자료 안주고 버티기'라고 표현했다. 회계사들은 주어진 감사시간 내에서 감사를 끝내야 하는데 기업들이 자료를 안주면 일을 진행할 수 없다.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을 회계사들 사이에서 'Idle Time'(유휴시간) 이라고 한다. 자료 접근이 불가능할 경우 감사인이 '범위제한으로 인한 한정의견'을 내게 되는데 그러면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회사의 경우 상장폐지사유가 된다. 부실한 자료제출에 대한 조치는 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감사인이 한정 의견을 내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대표는 "젊은 회계사들이 대기업 감사에서 느끼는 가장 큰 애로가 자료를 제 때 받지 못했을 때이고 벽에 부딪힌 것처럼 큰 충격을 받는다"며 "자료를 요청할때마다 '그게 왜 필요하냐'는 식의 답변을 들으면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깊이 있는 자료를 요구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예민한 분야에 들어가려고 하면 바리케이트가 쳐진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감사인 지정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일단 수임부담에서 자유로운 만큼 기업의 내부 자료 요청을 강하게 할 수 있다. 자유수임제에서는 감사 강도가 세지면 감사계약을 은근히 내비치는 경우가 많다. 감사인 지정제로 선정된 회계법인은 지정제가 풀린 이후 당분간 해당 기업의 감사수임을 못한다. 수임을 허용하면 지정제 때 '느슨한 감사'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인 지정제에서는 감사인력과 시간이 증가하고 책임도 커지는 만큼 회계사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 대표는 "지정제 전면 시행으로 감사 강도가 세지면 과거 작성된 재무제표의 잘못도 드러나게 된다"며 "현재 감사현장에서는 '지정제 시행 이후 잘못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제가 갖는 의미는 크다"고 말했다.

"감사시간 늘면 회계사 더 필요" =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되면 회계사들의 책임도 커지는 만큼 감사시간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자유수임제에서 기업감사에 투입하는 시간보다 최소 30~50%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깊이 있게 감사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사인 지정제 시행에 따른 중소회계법인의 고민은 인력 부족이다. 현행 감사관행으로는 회계인력의 충원이 불가피하다. 상장사의 경우 사업보고서가 나온 이후 일정 기간 내에 감사를 끝내야 한다. 대부분 감사시즌이 몰려있어 정해진 기간 내에 감사시간을 늘리려면 회계사들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의 감사관행은 기말감사에 집중돼 있다"며 "미국처럼 분기별 감사가 이뤄지도록 3개월씩 끊어서 미리 살펴볼 수 있어야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회계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대형회계법인인 '빅4'에서 신규 회계사들을 싹쓸이 하고 있어 중소 회계법인의 고민이 깊다.

그는 "지금처럼 한해 1000여명을 뽑아서는 부족하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며 "대형회계법인들이 감사인 지정제 등 회계개혁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빅4에서 수요를 줄여야 중소형 회계법인에도 회계사들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회계업계는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연결 재무제표가 중요시되면서 중소형 회계법인의 일감까지 '빅4' 회계법인으로 몰렸다. 하지만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되면 기업들은 기존 회계법인과의 감사계약을 끊어야 하는 만큼 중소형 회계법인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기업 회계실무자도 처벌해야 = 이 대표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등으로 회계사들이 처벌을 받은 것과 관련 "투자자들이 속지 않도록 할 의무가 감사인에게 있기 때문에 기업에 속았다고 회계사들이 억울해하거나 책임이 없다고 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회계실무자들도 처벌'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로 회계사들을 구속됐지만 회사의 실무담당자는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고 처벌을 받지 않았다"며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실무자와 내부 감사인도 강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기업이 제품 검사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큰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투자자들이 입을 피해를 생각하면 재무제표라는 품질의 표시과정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계명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 서울시립대에서 세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삼일회계법인 등에서 일했다. 2002년 한국여성공인회계사회 회장을 지냈으며 한국공인회계사회 첫 여성 감사를 역임했다. 현재 다산회계법인 대표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장을 맡고 있다.

['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연재기사]
①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 "기업회계감사 40점 넘으면 '적정의견' 이 현실"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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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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