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②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

"회계개혁, 금융위원회 의지가 중요"

2017-12-15 10:12:21 게재

'감사인 지정제 확대' 핵심 … "몸 아프면 명의 찾는데, 명감사는 꺼려"

"회계제도개혁의 핵심은 '감사인 지정제 확대'다.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극약처방인데, 지정제를 무력화시키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15일 전규안 숭실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금융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회계개혁 TF의 외부감사법 시행령 작업을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2011년 회계서비스산업 선진화위원회가 회계제도 개혁안을 마련했고 2012년과 2013년에 외부감사법 개정을 논의했지만 '감사인 지정제 도입'은 빠져 있었다.

전 교수는 "선진화위원회에서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며 "감사인 지정제는 애당초 안될 것으로 보고 논의조차 안했지만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이 터진 이후 더 이상 감사인 지정제를 빼놓고 회계개혁을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 회계개혁 TF에서 감사인 지정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지정제 예외'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그는 "제외되는 회사의 범위를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회계개혁 TF에 재계 단체들이 많이 참여해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주주와 채권자 대표 등을 참여하는 게 필요하지만 결국은 금융위원회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어떤 입장을 견지하면 누구도 강하게 반대하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지정제 회피 조항, 만들지 말아야" = 외부감사법에서 정한 지정대상 예외 범위는 △과거 6년 이내에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의 감리를 받은 회사로 감리결과 문제가 없는 기업 △회계처리의 신뢰성이 양호한 경우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회사 등 2가지다.

'회계처리의 신뢰성이 양호한 경우'를 시행령에서 어떻게 정할지가 기업과 회계업계의 최대 관심이다.

전 교수는 "증선위 감리를 받고 이상이 없는 기업을 회계처리의 신뢰성이 양호한 경우로 볼 수 있다"며 "시행령에 위임했다고 반드시 시행령 조항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정제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는 '회계처리의 신뢰성이 양호한 경우'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증선위 감리와 관련해서도 '감리'의 범위를 정밀감리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리는 정밀감리와 심사감리, 테마감리로 나뉜다. 심사감리는 공시된 자료를 중심으로 업종내 비교, 추세분석, 비율분석 등을 통해 적출된 특이사항을 점검하는 것이고 테마감리도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감리가 아니라 특정한 회계이슈에 한해서만 심사감리를 벌이는 것을 말한다.

전 교수는 "기초 증비자료 검토와 문답, 현장조사 등을 통해 이뤄지는 정밀감리(정밀조사)만을 외부감사법에서 말하는 감리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상을 심사감리까지 확대하면 많은 기업들이 감사인 지정제에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지정 신청, 1회 거부권만" =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이 재지정을 신청하면 현재 1회에 한해서만 거부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회계개혁 TF에서 재지정 신청횟수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전 교수는 "신청횟수를 여러 차례로 늘리면 결국 기업이 원하는 회계법인을 찾을 때까지 계속 거부를 할 수 있다"며 "1회 거부권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상장예정기업에 한해 허용하고 있는 복수지정제(회계법인 2곳 지정, 기업이 최종선택)의 경우도 감시인 지정제의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에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수지정과 재지정 논의는 '감사인으로 지정받은 회계법인이 감사보수를 너무 많이 요구하거나 갑질을 할 수 있다'며 기업에 협상권이 필요하다는 재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전 교수는 "시간당 감사보수를 공시해 갑질을 한 감사인은 자유수임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며 "감사인으로 지정되면 회계법인의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감사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고 그만큼 감사보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법인들은 감사시간이 늘어나는 게 불가피한데 감사보수는 그만큼 늘리지 못해 오히려 현재보다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인의 평균 시간당 감사보수는 2006년 9만7000원에서 2015년 8만원으로 17.5% 감소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시간당 감사보수는 12만1056원이 돼야 하는데 오히려 감사보수는 더 하락한 것이다.

전 교수는 "몸이 아프면 명의를 찾듯이 감사인을 선정할 때 명감사를 찾는 감사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은 명감사로 소문나면 회계법인 문을 닫아야 한다. 기업들이 꺼리고 찾아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감사위원, 아무나 할 수 없게 해야" = 그는 "선진국은 명감사를 찾아가는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면 감사인 지정제 등의 제도가 불필요해진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 같은 감사환경 조성을 위해 '감사위원의 역할 강화'를 제안했다. 기업의 회계부정이 드러났을 때 감사위원에게 법적 책임을 강하게 물으면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회계부정을 막기 위해 감사위원이 적극적으로 외부감사인의 감사시간과 감사보수를 늘리고 명감사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즉시 보고를 하라고 하는 등 감사의무를 다했다는 점을 기록으로 남겨야 문제가 생겨도 면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누가 감사위원을 맡으려고 하겠냐는 말도 나오겠지만 결국은 아무나 감사위원을 맡을 수 없게 해야한다"며 "전문성을 갖추고 시간을 충분히 투입할 수 있는 인사가 기업의 감사위원을 맡아야 회계투명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공인회계사로 감사현장에서 일했으며 각종 회계제도 개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지난해부터 '조세정의를 위한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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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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