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4)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

"기업 감사위원에 회계전문가 반드시 포함"

2017-12-26 10:24:57 게재

감사위원 업무시간 10일 미만, 미국은 2개월 이상 … 경영진 견제 제역할 못해

"기업의 감사위원은 기본적으로 회사의 재무제표를 해석하고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회계전문가나 감사전문가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그런데 현재 감사위원들은 본인들이 뭘 해야 하는지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일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회계제도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은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지배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독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능은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의 역할로 이어진다.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따르면 감사위원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의 중요한 내부통제시스템인 감사위원의 독립성은 회계의 투명성과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 위원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회계제도개혁의 지향점은 같다"며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투자자 등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 기업가치 제고라는 공동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일부 감사위원은 높은 보수만 받고, 책임 안져" = 현행 상법은 감사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위원 중 1명 이상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일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로 정해놨기 때문에 반드시 회계 전문가를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 대규모 분식회계가 발생한 대우조선해양 감사위원회에 회계분야 전문가는 한명도 없었다. 10년간 대우조선해양을 거쳐 간 사외 이사 중에서도 회계전문가는 없다.

정 위원은 "미국 기업에서 감사위원회의 역할은 회계감사에 방점이 찍혀있어 감사위원들이 회계·감사전문가들로 포진해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재무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감사위원회 역할은 업무감사와 회계감사가 혼재돼 있지만 미국은 전적으로 회계감사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 기업의 감사위원은 최소한 2~3개월 정도는 매일 7~8시간씩 감사업무에 매진할 수 있는 인사가 맡는다"며 "감사 의지와 투입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내 기업은 감사위원의 최대 업무 기간이 10일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1년에 6~7번 회의를 한다고 가정하면 준비기간 등을 포함해도 10일 미만으로 예상된다.

정 위원은 "책임지고 일하겠다는 분들에게 감사위원 자리를 열어놔야 하고 최소 1개월 이상 시간을 투입하기 어려운 분들은 맡지 말아야 한다"며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은 좋아하면서 그에 걸맞는 책임과 역할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적극적 검토 필요" = 지배주주가 선임한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감사위원 분리선출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재는 사외이사 전체를 선임한 뒤 그 중에서 감사위원을 임명하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사외이사 선임부터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원하는 인사들이 임명된다.

현행 상법은 3%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그 초과분에 대해 감사위원 선임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다.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선임된 사외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구조는 이 같은 법취지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

정 위원은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면 지배주주가 선임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인사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기업가치 측면보다는 '일감몰아주기, 기업승계, 사적 이익편취 등'이 어렵게 되는 지배주주의 불편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사위원의 독립성이 높아지면 외부감사인(회계법인)과의 의사소통도 활발해지고 회계의 투명성이 향상될 수 있다. 정 위원은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 (감사위원은) 외부감사인에게 문제가 있는 부분을 다시 보라고 할 수 있고 외부감사인이 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 경영진에게 최대한의 협조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선, 반기업 아닌 친기업" = 정 위원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다보면 주변에서 '반기업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지배구조 개선은 기업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서 반기업이 아닌 친기업적인 얘기"라며 "지배구조 개선은 지배주주들이 불편해하는데, 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친기업이 아니라 친지배주주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은 "지배주주가 역할을 못하면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다"며 "적대적 M&A는 회사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기업 가치 측면에서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자와 지배주주의 인식 수준이 지배구조 개선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배구조와 관련해 이사회·감사위원회·주주총회 등 시스템 개선을 얘기하지만 역설적으로 지배주주의 인식 수준에 좌우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선이 회사를 어렵게 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관투자자 주주권 행사, 관치 논란에 막혀선 안돼" = 금융위원회는 상장회사의 감사인 지정과 관련해 스튜어드십 코드 등을 도입한 기관투자자에게 신청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상장회사의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가 경영권에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정 위원은 "그동안 국민연금이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우려와 의구심"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치 논란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이 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관치를 막을 수 있도록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게 시급하다"며 "투자의사결정을 투명하게 하고 매년 전문가와 시민단체, 언론 등이 참여해 점검·평가를 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위원은 2002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설립 때부터 일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다. 대한민국사랑받는기업 실무평가위원(통산산업자원부), KRX 준법감시협의회 준법감시제도발전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정 위원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연재기사]
①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 "기업회계감사 40점 넘으면 '적정의견' 이 현실" 2017-12-12
②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 "회계개혁, 금융위원회 의지가 중요"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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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 "기업 감사위원에 회계전문가 반드시 포함"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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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외부감사와 살충제 계란 문제는 사실상 동일"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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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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