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①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

"기업회계감사 40점 넘으면 '적정의견' 이 현실"

2017-12-12 10:24:51 게재

대우조선 사태 이후 외부에선 80점 이상 요구 … "법과 현실 괴리, 실무 모르는 개혁"

"기업 외부감사 환경은 회계사들에게 '평소 40점만 넘으면 적정의견을 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터지면서 이제 외부에서는 80점 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2일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은 기업의 외부감사 실상을 '과락만 아니면 된다'고 표현했다. 외부감사가 진행되는 현장에서는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말이다.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외부감사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금융당국이 시행령 마련을 위한 회계개혁TF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회장이 기대보다 우려를 하는 이유다.

이 회장은 "외부감사결과 80점 이상 기업에게만 적정의견을 줄 경우 70~80% 가량의 기업은 의견거절을 받을 것"이라며 "기업들한테 80점 이상을 요구하면 '다 망하라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40점 이상에 적정의견을 주면 '감사를 대충했다'는 비난과 함께 나중에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니 회계사들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회계개혁TF에 이 같은 감사현장의 현실을 강도 높게 주장할 실무가들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회계개혁TF에 기업측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실무가나 채권자, 소액투자자 등 회계정보를 이용하는 이해관계자는 없다"며 "대우조선해양 판결을 보면 원칙대로 하지 않은 감사인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금융당국에서 기업의 현실이 이러니까 따라가라고 하면 감사를 하다가 쇠고랑을 차든지, 감사를 하지 말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핵심감사제 전면시행을 발표했지만 '회계사들의 업무현실을 전혀 모르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핵심감사제는 지난해 수주산업에 한해 도입됐다. 회계처리가 복잡한 △공사진행률의 적정성 △미청구공사금액 회수가능성 평가 등 5개 핵심항목에 대하여 수행한 감사업무 내용을 감사보고서 앞면에 기술하는 것이다.

핵심감사제 전면시행, 감사 현실과 동떨어져 = 금융위는 핵심감사제 전면 도입을 발표하면서 '감사인의 역할이 왜곡된 재무제표의 정정에 그치지 않고 기업 전반의 경영리스크를 평가·공시하는 데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잘만 하면 충분히 좋은 제도지만 현재 감사환경에서 회계사들이 핵심감사제를 할만한 역량이 안된다"며 "회사에 대한 감사 시간을 충분히 주고 회사와 회계법인의 갑을관계 해소 등 여러 문제가 해결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한된 정보제공과 부족한 감사시간이 현실인데 기업 전반의 경영리스크를 평가하는 게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은 "지정감사제 확대를 전면 실시하고도 핵심감사제가 제대로 될까 말까인데, 핵심감사제를 먼저 시행하면 유명무실하다는 식의 비판 여론만 형성되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감사현실을 외면한 채 생색내기 좋은 정책만 우선 발표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재무제표도 제대로 작성 못해" = 이 회장은 삼정·삼일 등 대형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실무 현장에서 경험한 기업의 회계 현실은 참담했다. 기업의 회계를 감시해야 할 감사인이 재무제표를 작성해주는 대리작성이 만연해 있다고 했다.

그는 "중소기업의 경우 회계프로그램으로 작성이 어려운 현금흐름표 등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다"며 "원칙적으로 이런 경우 전부 '의견거절' 사유에 해당하지만 그렇게 못하고 어느 정도 해오면 봐주겠다고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대리작성을 막기 위해 '감사 전 재무제표 제출의무'를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회사에 부과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자산이 1000억원 미만 기업에 대해서는 재무제표 작성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1000억원 이상 기업은 준수율이 높아지겠지만 1000억원 이하는 대리작성 관행이 전혀 개선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인의 준법의식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현실 때문인데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감사인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우리끼리 얘기하다가 '대리작성 문제를 검찰에 자수하면 검찰이 어떻게 할지 두고 볼 필요가 있다'는 말까지 한다"고 허탈해했다.

이 회장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없애려면 기업들이 회계에 투자를 해야 한다"며 "그런데 금융위가 재계의 부담완화를 얘기하니까 기가 막힌다"며 "감사 기준을 80점 이상으로 높이면 중소기업들은 적정의견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지정감사 예외는 최소화해야" = 이같은 기업 중심의 회계환경을 바꾸기 위해 지정감사제 전면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외부감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금융당국이 외부감사인을 정해주는 지정감사제는 보다 강도 높은 감사를 가능케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지정감사제 예외기준 확대를 검토하고 있어, 자칫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는 "지정감사제를 상장기업 전체로 확대하는 법안이 통과된 만큼 지정 예외사유는 최소화해야 한다"며 "지정감사제 도입을 통해 감사환경이 바뀌면 핵심감사제 역시 제 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우수한 기업들을 제외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는데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도입 등 자발적으로 변화하는 기업들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상태를 평가해서 지배구조가 우수하다는 이유로 예외를 둔다면 지정감사제 도입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은 지정감사의 경우 감사인의 주의의무를 더 강하게 보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되면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어 (감사보수가 상승하더라도) 회계사들에게 꼭 좋은 제도는 아니다"면서도 "그 점이 회사를 압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97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이후 문제가 터질때마다 제도개혁 논의가 있었지만 개선이 안되고 있는 것은 대책이 핵심을 찌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외부감사법 개정은 회계제도 개혁을 위한 중요한 기회인데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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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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