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⑤ 박찬대 국회의원

"친분으로 감사계약, 독립적 감사 어렵다"

2018-01-02 10:58:50 게재

"감사인 지정제, 예외 두지 말아야" … 자유수임제 '회계사의 전문가적 의구심' 약화

"감사계약을 맺을 때부터 친분과 인연이 작용하면 추정이 필요한 회계의 특성상 감사인이 기업에 유리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독립적인 감사인이면 본인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불편함이 상당할 것이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연수갑)은 회계제도개혁의 핵심인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전면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개정 외감법의 핵심은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독립성 향상에 있다. 금융당국이 상장기업의 감사인을 정해주는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한 것이다. 6년간 자유수임을 한 기업은 3년간 지정 감사를 받는 '주기적 지정제'를 말한다. 박 의원은 매년 감사인 지정제를 실시하는 방식의 전면 지정제 도입을 주장했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주기적 지정제'에 합의했다.

박 의원은 "감사인 지정제 전면도입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주기적 지정제'의 합의도 가능했다"며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감사인 지정제' 확대에 동의했지만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를 놓고는 의견 차이가 컸다"고 말했다.

◆금융위에 "예외조항 확대말라" 경고 = 회계개혁안을 담은 외감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감사인 지정제'에서 빠질 수 있는 '예외 기업'을 정하는 문제는 시행령에 위임됐다. 박 의원은 "외감법 논의가 길어지면 법안 통과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시행령에 위임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일부 의원들은 시행령이 법 취지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행령을 만드는 금융위원회에 '예외 사항을 확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며 "금융위도 시행령을 통해 감사인 지정제에서 빠지게 된 기업이 분식회계를 저지를 경우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인 지정제' 적용을 받지 않는 기업이 시행령을 통해 늘어나면 회계개혁을 위한 법개정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

금융위는 또 유한회사의 감사와 공시 범위에 대해서도 시행령을 마련 중이다. 유한회사도 외부감사 대상에 들어왔지만 시행령을 통해 감사 대상과 공시범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초 국회 정무위는 시행령에서 제한할 수 없도록 못 박았는데 법사위에서 가능하도록 수정을 했다.

박 의원은 '감사인 지정제'를 상장기업뿐만 아니라 비상장기업인 재벌기업의 계열사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한회사의 감사와 공시 범위를 제한하면 재벌 계열사들은 회사형태를 유한회사로 전환한 뒤 빠져나갈 수 있다. 금융위의 시행령 작업은 회계투명성 강화 문제와 직결된다.

박 의원은 "회계제도를 바꾸는 일은 기업의 힘이 상당히 작용하는 일이라서 굉장히 어렵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외감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신기한 일"이라고 말했다.

◆"후배에게 원망 섞인 말도 들어" = 박 의원은 "외감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공인회계사 후배에게 원망 섞인 말을 들었다"며 "상장법인 감사업무를 많이 맡고 있는 회계사들은 감사인 지정제가 되면 개인에게 일감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법인에 맡기기 때문에 일감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한테 '정말 감사를 잘해서 감사계약을 많이 한 것이냐, 아니면 친분과 관행·인연으로 한 것이냐'를 물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독립적인 외부감사인의 입장을 견지할 수 없고 (회계부정이 터지면) 평생 쌓아놓은 경력을 한방에 날릴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계약유지와 관련해 손실이 발생해도, 건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오래갈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는 "(회계사와 기업간) 친분이 생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봐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감사에 있어 관대하게 되는 게 문제"라며 "회계사는 기업의 주장을 그대로 들으면 안되고 객관적 방법으로 계속 검증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면 '거짓말을 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더 이상 기업과 감사인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자유수임제는 회계사의 전문가적 의구심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회계법인 수입 중 외부감사 30%에 그쳐 = 박 의원은 외부감사에 투입되는 인원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회계법인 수입 중 외부감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에 불과할만큼 열악하다"며 "감사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도록 감사전문법인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대기업 거래의 경우 복잡한 부분이 많은데, 중간과 기말감사라는 짧은 기간에 내용을 파악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이런 현실을 방치해놓고 문제가 터지면 회계사들의 잘못만 추궁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회계사들이 대기업에 파견을 나가는 형식으로 연중 거래 전체를 파악하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그는 "기업의 감사결과는 투자자 등 외부에서 기업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초자료라는 점에서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기업이 늘 감사비용 부담을 주장하는데 상장기업의 경우 회계감사 비용을 증권거래세 등과 같이 별도로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회계정보를 바탕으로 투자하는 정보이용자들에게 물리는 일종의 부담금 성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번도 다른 곳에서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행했던 실험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외부감사인의 독립성 향상을 위해 (별도의 비용조성 등은) 생각해볼 수 있는 사안이지만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어서 두려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본 금융감독당국인 금융청을 방문했다. 고위 당국자와의 면담에서 양국의 회계제도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일본도 대형 회계부정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하는 기업은 시가총액 기준 1/4에 불과하다.

박 의원은 "우리나라가 '감사인 지정제'를 시행한다는 얘기에 일본 고위 당국자가 깜짝 놀라서 입을 닫고 더 이상 얘기를 하지 못했다"며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국민적 바람과 사회적 합의는 한국이 더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인하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와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금융감독원 재직 후 한미회계법인 부대표로 활동했다.

['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연재기사]
①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 "기업회계감사 40점 넘으면 '적정의견' 이 현실"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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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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