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 ⑨ 최종만 신한회계법인 대표회계사

"국내 회계법인, 시스템 안 바꾸면 무너져"

2018-02-26 10:50:07 게재

'기득권 회계사 중심 구조' 개혁 강조

감사인지정제 앞두고 미래회계법인과 합병

"우리나라 감사시장은 그동안 연고 중심으로 수임이 이뤄졌다. 나이 많은 회계사들이 기업과의 친분을 이용해 외부감사업무를 수임하는 구조다. 감사인지정제가 도입되면 상장법인의 90% 이상은 연고와 상관없는 회계법인이 감사업무를 맡게 된다. 기득권을 가진 회계사들의 영향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22일 내일신문과 만난 최종만 신한회계법인 대표회계사는 기존의 운영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회계법인이 존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 대표는 "감사인지정제 도입 등 회계제도 개혁에 대해 회계법인들이 자구책을 세워야 한다"며 "잘못하면 국내 회계법인들이 붕괴하고 완벽히 글로벌 회계법인 중심의 '빅4 시스템'으로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빅4'는 글로벌 회계·컨설팅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삼일PwC, 삼정KPMG, 딜로이트안진, EY한영 등 4곳의 회계법인을 말한다.

최 대표는 중견회계법인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2~3개월에 한번씩 열리는 회의에서 회계법인들이 합병 등으로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최 대표가 이끌고 있는 신한회계법인은 최근 미래회계법인과의 합병을 발표했다. 합병으로 법인의 회계사수는 210명으로 늘었다. 빅4를 제외한 중견회계법인 중 회계사가 300명이 넘는 곳은 대주와 삼덕 2곳뿐이다. 신한회계법인도 300명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형화 없이 생존 어려워져 = 최 대표는 "(회계개혁을 위해 개정된) 외부감사법의 시행령이 어떻게 정해질지 모르지만 감사인지정제를 도입하면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은 빅4한테만 맡기자는 의견이 시행령 논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며 "시장이 빅4 중심으로 더 집중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빅4 중심의 시장 개편은 국내 회계법인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감사시장이 제대로 형성될 수 없게 만든다. 최 대표는 "중국의 경우 자국의 회계법인들의 대형화를 유도하고 상당수 국영기업들의 외부감사는 자국 회계법인에 맡기고 있다"며 "회계법인은 정보를 다루는 곳이고 기업의 정보가 특정 회계법인에 집중되는 것은 문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상장예정기업의 경우 복수지정제를 하고 있는데 두 곳의 회계법인이 올라가면 기업들은 책임문제로 큰 곳을 선택하는데 빅4를 제외한 회계법인들이 들러리를 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회계법인의 대형화와 함께 공통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국내 회계법인들은 일감을 가져온 회계사가 수익의 30~40%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업무수행 회계사들이 나눠 갖는 구조다. 주로 업무를 수행하는 젊은 회계사들의 불만이 크고 이들이 회계업계를 떠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회계사 2만명 중 8000여명은 회계법인을 떠나 다른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최 대표는 "일감을 가져온 회계사는 품질관리 받는 것을 싫어한다. 자기 일거리를 자기가 관리하는 구조라서 품질관리체제를 제대로 만들 수가 없다"며 "법인이 받는 일감을 공통업무로 해서 품질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의 대형화와 전산화로 전산시스템에 대한 감사가 회계감사에서 비중이 점차 증대되고 있지만 대다수 국내 회계법인은 전산분야 투자가 미미한 실정이다. 전산분야에 대한 회계법인의 투자확대를 위해서도 공통업무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그는 "품질관리 등 내부시스템이 잘 갖춰진 회계법인의 경우 회계사수가 100명 정도 되면 대부분 회사의 감사를 맡을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기업 감사, 수사하듯이 해야" = 최 대표는 회계사들의 외부감사 관행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장회사의 97%가 12월 결산법인이라서 외부감사 역시 이 기간에 집중돼 있다. 회계사들이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는 "감사인지정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감사시간 부족으로 회계부정을 완전히 막기 어려울 것"이라며 "감사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감사방법은 표본 추출을 통한 샘플링 중심의 감사다. 최 대표는 "회사가 정형화된 전산시스템을 갗준 분야에 대해서는 한 두건만 검사해보고 문제가 없으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라 더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며 "시스템적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부분에 감사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의 감사 이론은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모든 방법을 결정했는데, 앞으로는 회사가 부정한 자료를 제출한다는 전제하는 방식으로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수사하듯이 문제가 있을만한 부분만 뽑아서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계개혁, 시행령에서 후퇴 우려 = 최 대표는 지난해 외부감사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재 금융위에서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 회계개혁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대표는 "당초 금융위가 추진했던 법개정이 아닌 형태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금융위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 때 법취지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서 법개정 취지와 달리 시행령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를 금융위에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TF 구성원들을 놓고 봐도 회계업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위 회계개혁TF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감원 전문심의위원, 민간전문가 4명(교수 3명, 회계사1명), 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상공회의소, 공인회계사회 부회장 등 10명이다. 기업을 대변하는 단체가 3곳인 반면 회계업계는 1곳이다.

그는 "시행령을 정할 때 상장기업들이 거의 예외없이 지정제 대상에 들어가도록 하고 합리적으로 회계법인을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일부 기업에 한해서만 이뤄지는 지정제의 경우 삼성전자와 같은 초대형 기업을 맡은 회계법인과 자산 1000억원 회사를 맡은 회계법인 모두 회사를 1개 지정받은 것으로 계산한다. 숫자는 같지만 감사보수는 수십배 이상 차이가 난다.

최 대표는 "상장회사가 얼마 되지 않던 시절에 큰 회계법인에게 유리하게 적용했던 원칙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는 현재의 기득권을 깨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시행령을 정하는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며 "감사인지정제가 영원히 갈 수는 없는 제도라고 해도 안착이 되면 기업문화를 바뀌고 기업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최 대표는 1983년 산업은행에 들어가 3년간 근무하다 삼일회계법인으로 자리를 옮겨 국제조세분야에서 일했다. 2005년 40대 후반의 나이에 대표회계사가 됐으며 10년 넘게 회계법인을 이끌고 있다. 1995년부터 동국대에 이어 연세대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88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는 재벌재무분석 책자는 발행 초기 기업의 재무분석과 관련한 거의 유일한 자료라서 경제·금융분야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연재기사]
①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 "기업회계감사 40점 넘으면 '적정의견' 이 현실" 2017-12-12
②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 "회계개혁, 금융위원회 의지가 중요" 2017-12-15
③ 이기화 다산회계법인 대표│ "감사인 지정제 반대, 깊이 있는 감사 무서워서 " 2017-12-19
④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 "기업 감사위원에 회계전문가 반드시 포함"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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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정권 상관없이 대규모 분식회계 이어져"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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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외부감사와 살충제 계란 문제는 사실상 동일" 2018-02-09
⑨ 최종만 신한회계법인 대표회계사| "국내 회계법인, 시스템 안 바꾸면 무너져" 2018-02-26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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