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⑧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외부감사와 살충제 계란 문제는 사실상 동일"

2018-02-09 10:35:57 게재

외부에서 잘 모르고 '인증' 신뢰성 낮아 … "경영진 견제 역할 사외이사, 정신적 독립성 갖춰야"

"외부감사와 살충제 계란의 문제는 사실상 동일하다. 기업과 농장주가 거짓말을 해도 외부에서 알 수가 없다. 외부의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불리한 것은 숨기려는 경향이 강하고, 인증을 받아야 하는 기업이나 농장주가 인증해주는 곳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8일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회계학) 교수는 기업의 외부감사 구조를 살충제 계란 문제에 비유했다. 그만큼 제도적으로 취약하고 회계부정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선임하지 않고 금융당국이 정해주는 감사인지정제 도입의 불가피성도 언급했다.

곽 교수는 "자유수임제에 의한 감사시장은 실패했다"며 "기업은 외부감사인 선임에 있어서 가격이 싸고 품질이 낮은 곳을 선택하니까 높은 품질의 회계감사를 존재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외부감사의 결과물인 감사보고서 이용자는 기업이 아닌, 외부 투자자와 대출 등을 해준 이해관계자들이다. 외부에서는 감사를 철저히 하라고 요구하지만, 감사보수를 지급하는 곳은 기업이다.

곽 교수는 "감사보수를 낸 기업이 감사서비스를 받는 게 아니라 제3자가 받는 구조"라며 "국내 기업들은 단기 업적주의가 강해서 자기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만들려고 하지만 외국은 장기적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게 기업의 가치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자유수임제 방식의 틀'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가 감사인지정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감사인지정제 도입만으로 해결 안돼 = 하지만 곽 교수는 감사인지정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회계투명성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에는 고개를 저었다.

기업 내부에서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들이 바뀌지 않고는 외부감사만으로 기업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사외이사 또는 감사위원회 위원들은 대주주를 위해 일하라고 선출된 게 아니라 공익 역할을 위한 것"이라며 "대주주 등 특정인에게 회사의 이익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외부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결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기업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 주가가 올라가고 그만큼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외이사의 중요한 역할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고 대주주를 견제해야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실상은 대주주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막아줄 수 있는 검찰이나 국세청 등 정부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로 구성된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사외이사의 외관상 독립성 보다는 정신적 독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전문성과 독립성 뿐만 아니라 외부감사인과 내부 감사조직을 '내편'으로 만들지 못하면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가 외국계 은행 사외이사를 맡았을 때 은행에서는 '감사실장이 내부 감독감사를 담당하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을 잘 활용하라'고 했다. 하지만 감사실장에 대한 임면권을 은행장이 행사하는 구조에서 은행장에 대한 감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곽 교수의 말이다.

"상장회사는 사회와 파트너십 맺은 것" = 곽 교수는 "자산 1조원 이상 기업의 경우 감사위원회를 의무화하고 그 이하 기업은 상근감사나 비상근 감사를 두도록 했지만 감사위원회가 상근감사보다 감사를 잘할 것이라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라며 "매일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도 (기업이) 부정한 행위를 할 수 있는데 한달에 한번 정도 회사에 나오는 감사위원회가 뭘 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감사위원회가 내부감사기구를 통제하더라도 충분한 시간 투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감사위원에게 책임을 더 부가해서 소송이 걸리면 전 재산을 잃고 교도소에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감사위원 역할에 대한 일종의 모범규준을 만들어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나중에 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면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곽 교수는 보다 근본적으로 회계 투명성의 문제를 분석했다. 상장한 주식회사는 외부 투자자들의 자금을 받아서 회사를 키우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과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를 공개해서 외부 투자를 받은 것은 사회와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고 파트너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며 "대주주의 지분이 20~40% 정도면 나머지는 남의 돈이고 회사는 투자자들의 돈을 빼먹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투자자들과 시민들이 '세상을 속인 기업은 다시는 못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며 "지배구조연구원 등에서 기업이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는 지에 대한 진정성을 평가해서 점수를 매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주요 국가들의 본질적인 차이를 '계약사회의 완성도'로 정의했다. 계약은 약속이고, 약속한 것을 지켰는지 확인이 가능한 사회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완성도가 낮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약속 이행을 확인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후진적인 사회"라며 "약속을 이행하는 계약사회 문화를 빠르게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국제회계기준재단(IFRS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다른 국가에서 우리나라의 감사인지정제 도입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지정제 도입은 문화를 바꾸려는 것인데 그동안 우리는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자유수임제라는 옷을 입고 있었다"며 "계약사회가 발달된 나라에서 만든 제도라서 우리 몸에 맞지 않은 것인데, 몸을 제대로 만들면 그 때 다시 옷을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계약사회가 정착되면 자유수임제를 다시 도입해도 된다는 말이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감사인지정제를 선진사례로 얘기하지 않는다"며 "시장주의에 의한 자율 조정이 가장 좋은데 우리나라는 그게 안되니까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제도 개혁 이룰 중요한 시기" = 지난해 회계개혁안을 담은 외부감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현재 금융위원회는 시행령 마련을 위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곽 교수는 "회계제도 개혁은 지금까지 별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시비 걸릴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감사인지정제 적용을 받지 않으려고 시행령을 통해 예외조항 확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행령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하는데 감사품질을 높이는 데 중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기업의 규모에 따라 감사인력이 투입되는 게 아니라 위험성이 높은 곳은 작은 기업이라도 인력을 많이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그동안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판단할 때 규모 등 수치만으로 판단하는 후진적 행태가 이어져 왔다"며 "큰 기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품질이 높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정 외부감사법이 태어났는데, 성장을 잘한 청년으로 키울 것인지 지체부자유의 상태에서 살다가 사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시행령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77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 한국회계학회 부회장, 금감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위원장, 금융정보분석원(FIU) 자금세탁방지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회계기준재단(IFRS재단) 이사회 이사를 맡고 있다.

['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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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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