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전쟁은 안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하자 ⑥ - 인터뷰│데이비드 바인 아메리칸대학교 교수

"평화협정이나 합의도출하려면 한반도 주한미군 철수해야"

2017-11-13 12:01:56 게재

데이비드 바인 아메리칸대학교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서 '기지국가'에서 패권국가 미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바인 교수의 문제의식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5년이 지났고, 냉전시대가 종식된 지도 20년이 넘었지만 미국은 왜 전 세계 70여개 국에 800개 가까운 미군 기지를 운용하고 있을까'라는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의 호기심은 결국 현장을 찾게 만들었고, 6년 동안 전세계 미군기지 60여곳을 직접 방문하고 기록했다.

바인 교수는 미국이 해외기지를 포기하지 않는 근원적 이유를 미국의 전진전략(forward strategy)에서 찾는다. 수많은 기지와 수십만명의 병력을 해외에 상주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가안보정책에서 종교적 신념과 다름없다는 게 바인 교수의 분석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런 기지들이 겉으로 평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긴장을 키우고 위험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바인 교수는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인들도 이제는 미국의 낡은 냉전시대 전략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평화협정이나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주둔해 있는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법으로는 역시 대화를 통한 협상과 설득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바인 교수의 조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독자들을 위해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워싱턴 D.C.에 있는 아메리칸대학교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최근에 '기지 국가 :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는 어떻게 미국과 세계에 해를 끼치는 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 이전에는 '수치의 섬 : 디에고가르시아 미군 기지의 비밀스러운 역사'(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 2009)를 출간한 바 있다. '수치의 섬'은 인도양의 디에고가르시아섬에 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살던 섬에서 쫓겨나게 된 차고스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마더존스', '톰디스패치닷컴' 등에 기고를 하고 있으며, 내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두 개의 웹사이트(www.basenation.us 와 www.davidvine.net)에서는 해외 군사기지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내 글을 읽을 수 있다. 특히 www.basenation.us에는 '기지 국가' 책에 나오는 지도, 해외 기지에 관한 자료,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에 관한 데이터를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인류학자인데 미국의 군사 문제에 대해 천착하게 된 이유는.

차고스인들이 사는 섬들 가운데 가장 큰 섬인 디에고가르시아에 미국이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고향에서 쫓겨나게 된 차고스인들의 사연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차고스인들을 돕던 변호사들이 나에게 강제 추방이 차고스인들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나는 우리 정부가 차고스인들에게 저지른 만행, 즉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섬을 점령하고 재정착을 위한 아무런 지원도 없이 차고스인들을 추방해 그들을 빈곤한 삶에 빠뜨린 그 만행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다. 그 연구를 시작하면서 나는 디에고가르시아에서 한국에 이르는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 전반에 대해 그리고 미국이 지구를 에워쌀 정도로 많은 군사기지를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지국가'에는 미국의 전략과 이데올로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취재 과정에 어려움도 적지 않았을 텐데.

가장 큰 어려움은 미군의 비밀주의와 투명성 결여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점들 때문에 연구 진행이 매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미국이 해외에 유지하고 있는 군사기지의 수를 집계하는 것부터 매우 어려웠다. 그 이유는 비밀주의와 투명성 결여 때문이기도 했고, 실제로 미군이 신뢰할 만한 공식 집계 자체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군 기지를 방문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많은 경우 방문을 거절당하거나, 시설을 둘러보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도 엄격한 제한을 받았다.

한국내 미군기지를 직접 방문한 소감을 소개한다면.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감정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정말 훌륭한 활동을 펼치고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활동가들을 만났던 일은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었다. 또 주한 미군 기지들의 거대한 규모, 그리고 그러한 미군 기지와 기지가 형성하고 있는 기지촌이 지역 사회의 풍경을 지배하고 있는 모습에 정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상적이고 효율적인 서울의 지하철은 그것이 미국의 지하철에 비해 얼마나 우수한지를 깨닫게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미국 지도자들이 2차 대전 이후 미군에 쏟아 부었던 수조 달러의 천문한적인 돈을 교통과 기반시설, 교육, 의료, 아동보호 등과 같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투자했다면, 또 지금도 투자하고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중요한 생각을 하게 됐다.

책 출간과 맞물려 얼마 전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미군의 해외기지 등 19%가 불필요하다"면서 의회에 군 기지 폐쇄 등 군용재산 축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수년간 미군은 불필요한 군사 기지가 존재한다고 인정해왔다. 매티스 장관의 이번 발언은 미국 해외 군사기지 체계에 낭비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과 불필요한 기지를 가능한 한 빨리 폐쇄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발언이다.

한국 내에는 주한미군 주둔이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는 신념이 상당하다. 기지 폐쇄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 이념적으로 공격받는 일도 많다. 이런 한국적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과 한국에서 현재의 군사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군사 체제가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이고 미국 국민,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별로 이로운 점이 되지 못한 지 이미 꽤 오래됐다. 한국과 미국 국민들은 전 세계 미군기지 주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 통념'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미군 기지와 관련해 한국 전쟁과 한반도의 심각하고 위험한 긴장 국면의 영속화를 부추기는 진부한 냉전 시대의 전략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강대강으로 대결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현재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나.

매우 두렵게 느껴질 만한 상황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공개적 언쟁을 벌이는 이유의 밑바탕에는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달성하려는 그리고 자신들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양측 정부 주장과는 달리 군사옵션으로는 한반도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외교적 협상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진심 어린 노력만이 현재의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북핵이 이제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통한 해결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미국이 북한에 대해 보복하고자 하면 북한 전역을 끔찍하게 파괴할 전쟁을 벌일 능력이 있다. 그런 전쟁에서 북한과 남한의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 그보다는 적겠지만 미군에도 사상자가 생길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북한은 미국에 어떠한 중대한 위협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 지도자들은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작은 나라를 심각한 위협의 대상으로 둔갑시켜버리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미국과 북한의 엄청난 국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군사옵션은 갈등을 해소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군사적 공격은 단지 북한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과 주한미군에도 상상할 수 없는 파괴와 살상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전술핵무기 재도입이나 핵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 역시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관련국들은 군사력을 증강하는데 몰두할 게 아니라 긴장을 낮추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북핵 문제 관련 미중간 전격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한반도에 긴장 상태와 전쟁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미국과 중국 두 나라 모두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왔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그렇지만 두 강대국에게는 전격 합의를 도출해낼 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평화협정이나 합의를 도출해내려면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한 상태에서 한국이 통일되고, 그래서 미군이 중국 국경에 가까이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면 중국 지도자들로서는 미국의 군대를 국경 코앞에 두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현재의 상태가 지속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 지도자들 역시 만약에 중국 군대와 기지가 미국 국경 근처에 주둔하는 상황이 된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거라 생각한다. (냉전 시절 소련이 미국 국경에서 90마일 떨어진 쿠바에 핵미사일 시설을 세우려 했을 때 미국은 이미 그렇게 반응한 바 있으며, 그 사건은 냉전 시대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자 전 세계가 핵전쟁에 휘말릴 뻔한 순간이기도 했다.)

책 서문에서 평화협정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 다른 해결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창간기획 - 전쟁은 안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하자' 연재기사]
①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인터뷰│ "평화협정 논의, 비핵화·군사적 긴장완화 촉진할 것" 2017-10-10
②신성원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장 인터뷰│ "3천년 전쟁사의 교훈, 평화 원한다면 전쟁을 이해하라" 2017-10-16
③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외교 국방 통일의 삼위일체로 교집합 최대로 늘려야" 2017-10-23
④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NSC 선임보좌관 │ "트럼프 행정부, 북한 예방타격 준비 정황없다" 2017-10-30
⑤인터뷰│김준형 한동대 교수│ "평화는 현상관리가 아니라 적극 만들어가는 것" 2017-11-06
⑥인터뷰│데이비드 바인 아메리칸대학교 교수│ "평화협정이나 합의도출하려면 한반도 주한미군 철수해야 2017-11-13
⑦인터뷰-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 "경제로 남북관계 풀며 북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해야" 2017-11-20
⑧인터뷰-이정우 국제통상전략연구원 부원장│ "남북관계 물꼬 터 '전쟁 안된다' 국제여론 북돋워야" 2017-11-27
⑨진징이 중국 북경대 교수│ "북한 변화시키려면 시장경제 바다에 빠뜨려라"2017-12-04
최종회 - 전문가 좌담│ 전쟁불가론 공식화, 남북교류 물꼬터야 2017-12-11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