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전쟁은 안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하자│⑧인터뷰-이정우 국제통상전략연구원 부원장

"남북관계 물꼬 터 '전쟁 안된다' 국제여론 북돋워야"

2017-11-27 10:10:31 게재

미국이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을 재지정하면서 북미간 대화 가능성은 사그라들고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아직은 제한된 반발에 그치고 있으나,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신년 벽두부터 올해 안에 미 본토 공격 능력을 갖춘 핵무력 완성을 이루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북한의 도발 징후가 역력해지고 미국이 무력 시위 수준을 더 끌어올리면 또다시 한반도 위기설, 전쟁 가능성 우려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정우 국제통상전략연구원 부원장은 "한반도 전쟁은 남북의 파멸을 뜻한다는 점에서 남과 북 누구도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면서 "패권경쟁을 벌이는 미·중 갈등과 핵 문제로 인한 북미갈등이 뒤얽히는 제3의 외부요인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진단했다.

이 부원장은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동맹 차원의 남한 군사력 증강에 주력하기보다는 외교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정세가 다시 거칠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위기설이 또 번질 수 있지 않을까.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승패와 관계없이 남북이 공멸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작은 사례 하나로도 짐작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의 기흥 반도체공장이 정전으로 30초만 멈춰도 천문학적 손해가 날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다.

북한 미사일 한발이 여기에 떨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반도체 기술이 세계적으로 3개월가량 앞서 있는 1위인데, 이게 무너진다. 복구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1위 자리를 되찾기는 어려울 거라 봐야 한다. 또 이 경우 한미가 가만히 있겠나. 대량응징보복에 나서고 전면전으로 번질 텐데, 한반도가 어떻게 되겠나. 남북한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결과적으로 이긴다 해도 얻을 게 없다는 게 분명한 듯하다.

지금 시대의 전쟁은 6.25 전쟁과는 개념 자체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겨울 전쟁은 한파로 말할 것도 없고, 봄여름에 나면 당장 수돗물, 생수 공급이 끊겨 보름여만 지나면 한강물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수인성 전염병이 뒤따른다.

우리는 공동주택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시스템이다. 지하에 비상사태에 대비할 방공호 시설도 갖추지 않고 있다. 각종 물자공급 부족은 사회를 대혼란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최근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을 지원하는 데도 국가가 상당한 능력을 투여해야 한다. 전쟁이 터지면 당장 중부 위쪽 3000만명 정도가 극한의 지경으로 내몰린다. 국가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는다.

전쟁이 승리로 끝난다 해도 경제는 파탄난다. 이긴다 해도 얻을 이익이 전혀 없다는 거다. 남북한 모두 마찬가지다. 기대효용이론으로 볼 때, 이론적으로 한반도의 전쟁은 남도 북도 먼저 시작할 수 없는 선택이다.

북이 먼저 나서는 전쟁은 일어날 수 없는 구조란 것인가.

국제정치학의 '세력균형이론'(balance of power theory)에 따르면, 전쟁은 힘이 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공격해 일어난다. 약한 나라는 전쟁을 막기 위해 힘을 키워 균형을 맞춰야 한다. 스스로 군비증강이 힘들 경우, 동맹을 만들어 균형을 이루는데 이것이 1953년 한국전쟁 종전 이후 한미동맹이 형성된 조건이다. 냉전체제가 시작될 때 만든 한미동맹이 65년째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서 '힘'은 국력(national power)인데 군사력, 경제력, 영토 규모, 국민 사기 등을 아우른 개념이고 결국은 경제력에 수렴된다. 우리의 경제력은 북한의 40배가 넘는다.

1951년부터 남북의 군사비와 경제생산량을 계량화해 북한의 전쟁위협도를 측정해봤다. 1970년을 전후한 시점이 전쟁위협도가 가장 높았는데 이를 100으로 놓으면 지금은 10이 채 안된다. 세력균형이론으로 볼 때, 전쟁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과거와 달리 북한의 핵·미사일이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

'세력전이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이 있다. 힘이 약한 나라가 경쟁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관점이다. 힘이 센 나라가 만들어놓은 질서를 약소국이 지키고 싶지 않을 때가 필요조건이고, 전쟁을 일으켰을 때 얻을 이익이 현재의 이익보다 크다는 확신이 설 때가 충분조건이다. 두가지가 맞아떨어지면 약소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 비춰 봐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전쟁 발발이 어렵다.

그런데, 이 이론을 돌려서 생각해보면, 북한이 처한 상황이 안 좋아질수록 김정은이 승리 여부에 관계없이 전쟁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으로 북한의 고립이 극대화될 경우가 위험하다는 것인가.

테러지원국 재지정, 경제압박 등의 대북 제재에 한계가 정해지지 않고 북한이 수용 불가능한 지경까지 갈 경우가 문제다. 북한이 미국의 생각대로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도 있지만, '가만히 앉아 있다 죽을 바에는 전쟁이 낫다'는 정반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제재·압박이 북핵 문제의 외교적 타결을 위한 수단이라지만 여기에만 치중하면 북한이 극한의 선택을 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공언하면서도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이 위험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건가.

미국과 북한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다 자칫 돌발사건 하나가 전쟁을 터뜨릴 수 있다는 걸 우려가 있지 않나. 이처럼 외부의 구조적 요인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가장 키우는 조건이다. G2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대리전쟁 성격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아무리 첨단무기 체제를 구축하더라도 전쟁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군사옵션 선택을 피하기 위해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면서 대북 압박·제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달리 움직일 공간이 있을까.

미국이 유엔 안보리를 통해 대북제재 결의안을 추진하고 독자제재를 확대하는 것과 달리, 유럽연합(EU)과 중국은 대북제재에 나서면서도 태도는 수동적이다. EU와 중국, 러시아는 우리가 북과 물밑접촉을 통해 대화를 복원하고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면 이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러시아와는 처지가 다르지 않나. 문재인정부 출범을 전후로 대북 정책을 놓고 한미간 견해차가 있다는 관측이 나와 시끄러웠을 정도다.

북미가 날카롭게 대치할 때, 우리가 오히려 북한의 숨통이 트일 조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절의 남북교류협력이 그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단절된 가운데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이 계속 강화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전쟁 가능성이 더 높아진 조건이다.

한미동맹을 중시한다는 게 모든 문제에서 미국과 똑같은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그런 스탠스를 취하면 심리적 안도감은 느낄 수 있어도 외교적인 대북협상의 공간은 열리지 않는다.

북미관계가 먼저 풀리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주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

한미동맹으로 인해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중간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한반도 전쟁을 막는 방법은 우리의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외교적 차원의 문제해결 추구다. 미·중간 갈등이 커지더라도 한반도 자체의 갈등을 키우면 안된다. 문재인정부가 남북관계 해빙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아는데, 현재의 분위기를 개선해 교류협력의 물꼬를 틀 묘안을 찾아야 한다.

수면 아래에서 남북간 긴장을 낮추는 접촉이 필요하고, 특사 활용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미지근하더라도 남북이 서로 수용할 수 있고 이익이 되는 부분을 찾아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호 신뢰와 이익이 커진다면 북한 입장에서도 현상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전쟁에 따른 위험이 더 커 보일 것이다.

남북교류가 재개되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협력사업이 돌아가면 국제사회에서 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지지 않겠나. 이것이 우리 정부가 전쟁방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울러 북핵 문제는 우선 현 단계에서 동결시키는 게 중요하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를 위한 협상으로 가려면 온화한 개입(benign engagement)으로 수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내적으로 전쟁방지와 평화적 문제 해결에 대한 정책합의가 필요한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정우 부원장은

이정우 부원장은 통일문제와 남북관계를 줄곧 국제관계론적 시각에서 연구해 온 학자다. 이 부원장이 주목하는 지점은 국가의 힘(national power), 국력의 변동에 따른 국제체제의 변화 과정과 그 속에서 유발되는 갈등과 분쟁에 대한 것이다.

그는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시절, 개별국가의 주권을 강조하는 세력균형론(balance of power)에서, 힘의 크기와 변동에 따른 국제체제의 위계성을 중시하는 세력우위론(power preponderance)으로 인식의 전환을 했다고 말한다. 기존 국제질서의 안정성보다는 체제변화의 역동성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후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 박사과정을 거쳐 성균관대에서 국제정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생활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학문적 영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카데믹한 생활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90년대 초반 북한·통일 문제를 다루는 평화문제연구소에서 연구위원·편집장 등으로 일한 것이 학문적 시각과 현실적 여건에 적잖은 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이 당시 북한과 통일문제에 관련된 다양한 국내외 학자들과 만나고 여러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북한 과학백과출판사와 공동으로 '조선향토대백과'(전20권)를 발간하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이 부원장은 저술 활동도 꾸준히 펼쳤다. 직접 쓴 '이론으로 보는 남북관계와 통일문제'(통일부, 2005)와 찰스 암스트롱의 '북조선 탄생'(서해문집, 2006)과 조셉 나이 등 하버드대 연구팀의 '미국의 핵정책과 새로운 핵보유국들'(한울, 1997)을 번역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북핵 협상의 공간이론적 해석과 한국의 선택'(국방연구, 2008)과 '북한의 국력과 군사력에 대한 평가'(현대북한연구, 2012) 등의 논문은 아직까지 유사 연구가 후속되지 않는 논문으로서 여전히 가치가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조교수를 거쳐 현재 사단법인 국제통상전략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위원 및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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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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