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전쟁은 안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하자 ③│인터뷰: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외교 국방 통일의 삼위일체로 교집합 최대로 늘려야"

2017-10-23 10:56:51 게재

국제관계나 국가간 협상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론 가운데 하나가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의 '양면게임이론(Two-Level Game Theory)'이다. 모든 협상은 테이블에 마주앉은 상대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밖에 있는 자국민과 보이지 않게 심리게임을 하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때론 최대치의 국익보다 양측 여론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협상타결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도 이런 양면성 때문이라고 한다.

여론이 수용할 수 있는 타협범위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승리의 틀'로 번역되는 윈셋(win-set)이 있는데 여기에 협상의 묘미가 있다. 흔히 국민들이 특정사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이를 반영한 협상단이 테이블에 앉으면 원하는 결론에 이를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국내 여론이 분열되고 여론수용범위가 좁아지면(윈셋이 좁아지면) 협상대표단이 일종의 배수진을 치고 협상에 임하게 되고 이로 인해 원하는 협상결과에 이르게 되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우리내부의 다양한 이견을 되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양면게임이론'을 언급했다.

사드를 둘러싼 논쟁이나 전술핵, 핵추진잠수함 등 예민한 사안에 대해 미국 눈치만 보거나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것만 우선시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나 전략은 없어지고 미국과 북한의 게임논리나 미중간 힘겨루기에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점증되고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지가 무엇이 돼야 할지 안보전문가인 김동엽 교수에게 들어봤다.

매주 반복되던 북한의 도발이 한달 넘게 잠잠하다. 북한의 침묵은 어떤 의미인가.

지금 북한이 도발 안하는 상황에서 보자면 지난 9월 15일 도발하고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이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일부에서는 '죽음의 백조'(미 공군 B-1B 전략폭격기)도 오고, 핵잠수함, 핵항공모함도 오니까 북한이 위축되고 속된 말로 쫄아서 도발을 안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전략자산에 겁먹은 것 아니냐는 것인데 그런 일 없다. 만약 북한이 그것 때문에 자신들의 계획이나 도발을 머뭇거린다면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할 것도 없고 할 마음도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단순히 총참모부나 이런 선에서 성명이 나온 정도라면 그럴 수 있지만 9월의 도발도 그렇고 지금까지 나온 것을 보면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이 직접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거기서 나온 이야기의 핵심이 뭘 생각해도 상상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태평양에서 수소탄 시험을 언급했다. 최고지도자 목소리이기 때문에 허풍일 수 없다. 인민에 대한 약속이고 지켜져야 한다. 최고지도자 목소리나 공식반응 가운데 지키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다만 뭔가의 이유 때문에 시기를 조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기술적 측면이고 두번째는 정치적 효과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최적의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지금 하는 것은 북한이 말하는 핵무력의 완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씀한 레드라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미 본토까지 가지 않더라도 '화성-14'에 지난 6차 핵실험 탄두를 실어서 7000킬로미터 정도 날린 뒤 태평양 상공에서 공중폭발시킨다면 그것이 핵무력의 완성이된다. 비록 핵물질이 없더라도 기폭장치만으로도 충분하다. 기폭장치에 핵물질만 넣으면 되는 데 굳이 핵물질까지 넣어서 국제사회의 반발을 살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만약 발사자체가 실패하거나 7000킬로미터 정도 날아갔는데 공중폭발이 안 되거나 바닷물에 낙탄됐다고 하면 여전히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력을 완성단계라고 평가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번에 다시 도발을 하게 된다면 ICBM 거리는 물론이고 대기권 재진입과 공중폭발까지 완벽하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기술적 측면에서 99.99% 성공을 위한 아주 면밀한 점검과 검증을 거치고 있는 듯하다.

두번째는 정치적 효과의 극대화다. 설령 북한이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해 핵무력 완성을 국제사회나 미국에 다 보여줬다고 치자. 그런데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회담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을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이고. 자신들이 필요한 국제사회의 제재도 없애면서 생존을 보장받아야 하는데 다 헝클어지게 된다. 미국의 내부사정으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준비가 안 돼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실험을 하고도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 때문에 미국이 협상테이블에 끌려나왔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정치적 효과 측면에서 극대화가 안 될 수 있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마지막 카드가 아닌 다른 카드를 살라미 전술로 나눠서 보여줄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어떤가.

북한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의 한 측면은 중국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한편에서는 중국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가는 측면도 있다. 그것은 2008년 김정일 시기부터 미중 관계의 변화가 있었고 북한의 핵에 대한 인식도 변화했다. 핵이 단순히 미국과의 협상용 카드나 딜이 아니라 미중 관계에서 정권생존의 목적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때부터 바뀌어 10년이 지났다. 그 시기 동안 우리는 보수정권에서 북한이 곧 망할 국가라는 이른바 '붕괴론'에 휩싸여 북한을 제대로 못 봤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대화론도 북한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를 단순히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변했다는 식이 아니라 미중간의 다양한 변화도 함께 봐야 한다. 한층 더 복잡해진 다차방정식이 된 것이다. 과거의 2, 3차 방정식이 아니라 4, 5차 방정식이 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인식전환은 문재인정부도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결국 우리의 미래를 위한 걸림돌이나 가장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은 북한, 북핵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쳐다봐야 하는데 북한이라는 변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중이라는 변수에 함몰돼 버렸다. 미중이라는 틀이 이 모든 걸 잡아먹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북한의 변화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해 보인다. 10년전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두번째는 미중이라는 대외요인, 외교적 변수를 지나치게 고려하고 있다. 너무 치중하면서 균형외교가 아니라 불균형적으로 가고 있다. 특히 미국이라는 변수에 대해 너무 치중하고 있다. 미국의 의도나 미국을 이해시키는 것이 북핵문제나 남북문제 개선의 시작점으로 보는 이른바 '한미관계(동맹) 입구론'이다. 대북정책이나 외교안보정책의 시작점에 한미관계 입구론을 두게 되면 기존 보수정부와 차별성을 갖기 어렵다. 여기에는 70년을 이어 온 한미동맹이라는 관성도 있지만 지나치게 외교적 변수만 고려하는 인적자원의 편중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이는 마치 박근혜정부 시절에 장군출신, 군인 출신들이 안보의 모든 것을 도맡았던 것처럼 지금 정부에서는 외교관 출신들에 치중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나라든 간에 안보라는 국가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날개와 국방의 날개가 좌우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에는 이런 두 가지 날개 외에도 남북관계(통일)라는 꼬리날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좌우 양날개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간과하면 안된다.

외교와 국방의 양날개에 더해 남북관계(통일)의 꼬리날개가 삼위일체가 되고 이 속에서 교집합이 되는 측면을 최대한 늘려가야 한다.

현정부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혹평을 하기도 한다

아직 단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 다만 이번 정부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는 길게는 수십년 뒤를 내다보고 해야 한다. 다음 정권이 어떻게 되든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느 정부로 가든 외교안보 남북통일은 단절성 없이 가야 하고, 이게 맞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결국 이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이것은 특정정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 정권재창출의 의미가 아니다. 외교안보 남북통일에 있어서 이번 정부가 성공해야 다음에 어떤 정부나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이번 정부에서 정한 남북관계나 외교안보 정책이 맞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직 박수를 쳐드릴 수 없다. 변화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아직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좀 더 과단성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을 보면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에서 내놓았던 것을 다시 예쁘게 포장해 내놓는 종합선물세트같은 느낌이다. 6.15나 10.4의 정신은 계승하되 답습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계승을 넘어선 과감한 정책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링위에 올라가야 한다. 지금 미국과 북한이 링 위에 있다. 우리는 선수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들이 원치 않더라도 글러브를 끼고 링위에 올라가야 하며, 미국이나 북한이 모두 관심을 끌만한 제안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맞을 수도 있고, 다운될 수도 있지만 절대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귀가 솔깃한 제안이 현실적으로 뭐가 있나

내 목소리에 처음부터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희망이다.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의 적자이기 때문에 내가 회담을 제안하면 북한이 호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자기 최면이다. 시작점이 잘못되다보니까 1라운드에서 세 번 이상 다운된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정비해야 한다. 맞는 것 두려워하지 말고, 꿋꿋이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종합선물세트는 안된다. 이런 목소리를 전달할 특사도 필요하다고 본다. 특사든 밀사든 결국 북한과의 채널 복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이 귀를 기울일만한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유연한 대응 등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자면 내년 초에 있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에는 도발중단을 제안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과 대화보다 전술핵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지금 변화나 환경에 대한 면밀한 고민할 때다. 일부에서는 2보전진을 위해 1보 후퇴라고 하고 가랑이 밑을 기어간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모든 것의 시작점을 한미동맹 입구론에 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카드조차 미국의 카드가 돼 버린다. 전작권 전환이든 사드든 마찬가지다. 우리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 전술핵이나 핵추진 잠수함도 마찬가지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건강한 다양성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양면게임이론'에 따르면 외국과 협상할 때 내부에서 분란이 클수록 협상이 잘 된다고 한다. 다양하고 건강한 내부 목소리를 모아내고 융합해 미국이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우리카드로 만들어야 한다.

당대회 이후 중국변수도 클 텐데.

북한도 이번 중국 당대회 결과와 그에 따른 향후 미중 관계 구도 변화에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 듯하다. 시진핑 집권시기 연장에 관련된 문제이고, 중국의 큰 미래와 결부된 문제다. 시진핑이 만약 10년을 더 보장받고 나면 지금의 미중관계보다 훨씬 더 당당하게 관계를 재정립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미중관계 뿐 아니라 북핵문제나 동아시아 등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큰 그림 속에서 오는 11월부터 내년 초까지 한미연합훈련이나 동계올림픽, 북핵문제 등을 세밀하게 검토하면서 어떻게 링위에 오를지를 준비해야 한다. 올해 초 중국에 갔을 때 중국에 있는 외국학자들과 만났는데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가 중국의 큰 변화를 제대로 봐야 북핵문제도 풀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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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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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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