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달러 국민축산, 2030이 연다 ② | 'TPP' 격랑에 선 일본 보며 한국낙농 진로 고민

일본 농수산성 "내년부터 원유(우유 유제품 원료)도 입찰제 시범실시"

2015-10-29 11:00:05 게재

낙농·유업계에 시장원리 도입 … 한국으로 수출도 희망

한국과 일본의 낙농·유가공업이 변화의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한국의 낙농가와 유가공업체는 우유소비가 줄어들면서 원유가 남아돌아 홍역을 치르고 있다. '원유'는 우유나 유가공품 등의 원료가 되는 '젖소의 젖'을 말한다. 유럽연합에 이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낙농강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도 타결돼 유명 해외유제품과 경쟁도 더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도 낙농후계자 감소와 원유생산량 감소에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로 낙농가와 유업체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자국 시장을 보호해 온 일본의 우유가격도 한국과 비슷하다. 내일신문은 낙농가·유가공단체 등과 함께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도쿄 농림수산성과 낙농 중심지인 홋카이도를 방문, 일본 낙농·유업계에 일고 있는 변화와 대응을 취재했다. 두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지난 16일 입찰제도 시범실시 등을 담은 '원유거래에 대한 검토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낙농·유가공업계와 7월부터 다섯 차례 검토한 결과다.

보고서는 △원유가격에 대한 협상기한 설정 △정부의 우유생산비통계 제공 방법 △원유가격 협상 결과를 생산자에게 알리는 방법 △소비자요구를 반영한 '특색있는 우유'(프리미엄제품) 거래 확대 △입찰제도 도입 등 5개 항목을 담고 있다. 내년부터 진행할 원유거래에 대한 방침이다.

 

24일부터 26일까지 홋카이도에서 제14회 일본 홀스타인공진회(젖소 경연대회)가 열렸다. 10년만에 열린 이번 대회는 경제성이 높은 젖소로 개량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고등학생들도 참여했다. 사진은 새끼를 아직 낳지 않은 '미경산우' 부문 경연 모습. 홋카이도 = 정연근 기자

 


'시장가격 반영한 거래제도 도입' 시도 = 보고서에는 최근 타결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낙농후계자 감소, 수입유제품 시장점유율 확대 등으로 인한 일본 낙농가와 유업체의 위기감이 담겼다.

일본 낙농가는 2000년 3만3600호에서 2014년 1만8600호로 50% 줄었다. 젖소 사육마릿수도 같은 기간 176만4000마리에서 139만5000마리로 감소했고, 원유생산량은 850만톤에서 733만톤으로 줄었다.

원유생산자(낙농가)와 원유를 가공해 우유나 유제품을 만드는 유가공업체는 특히 '입찰제도 도입'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유가공기업 '유키지루시 메그밀크'의 고위 관계자는 23일 일본을 방문한 한국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들에게 "입찰제도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유키지로시 메그밀크가 생산한 유제품들. 흰우유는 많이 팔리지만 이익이 적게 난다. 이곳은 버터 치즈 등 유가공품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홋카이도 = 정연근 기자

유키지루시 메그밀크는 홋카이도(북해도) 낙농민들이 만든 '홋카이도낙농제품판매조합'이 모태다.

일본은 지금까지 낙농가가 소속된 '지정단체'와 유가공업체가 협상하는 방식으로 원유를 거래했다. 지정단체는 홋카이도(북해도) 낙농가들이 소속된 '호쿠렌농업협동조합연합회' 등 전국 9개 대형 농협이다. 일본 낙농가들은 생산한 원유의 97%를 지정단체를 통해 위탁판매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계도 식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유와 유가공품 시장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하고 있다.

일본 최대 경제신문인 니흔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16일자 기사에서 "(지금까지) 대부분 원유거래는 대형농협과 유업체가 매년 1회 정하는 고정가격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공유제품 소비자가격이 올라도 농가수입은 올라가지 않았다"며 "가격결정 과정도 공개되지 않고 불투명했다"고 지적했다. 입찰제가 도입되면 원유가격은 시장가격에 따라 변하게 된다. 가격결정 과정도 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와 낙농·유업계는 새로운 제도를 신중하게 운영하기로 했다. 입찰제도 대상은 버터와 생크림 등 가공유제품에 사용되는 원유만 해당되고, 마시는 우유에 사용하는 원유는 일부 고가상품만 포함했다. 입찰물량은 유업체와 농협이 협의한다. 농협은 '최저 낙찰가격'을 정해 예정가격보다 낮은 낙찰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 낙찰수량 상한제도 당분간 설정할 수 있다. 농림수산성은 "정부는 입찰물량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원유거래개혁 검토는 집권 자민당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아베정권은 쌀 감산정책 폐지, 농협중앙회 해체에 이어 낙농정책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낙농유업협회(J-MILK) 마에다 전무는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는 원유가격이 경직되는 단점이 있었다"며 "낙농가와 소비자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시장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입찰제도는 지정단체 밖에서 진행돼 왔다. 농협에 속하지 않는 낙농가들을 조직한 유업체 '엠엠제이'(MMJ)는 2008년부터 입찰을 도입했다. 니흔게이자이에 따르면 전국에서 이 회사와 거래하려는 낙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제도 변화를 부담스러워 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마에다 전무는 "젖소는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시장의 요구에 맞춰 원유를 생산할 수 없고, 시장의 수요는 여름과 겨울에 심하게 변동한다"며 "시장원리를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년간 시범사업'이라는 조건을 붙여 합의한 배경이다. 농협이 가격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도 남겨 놓았다는 평이다.

"우유와 유제품 수출 늘리는 게 일본 낙농 살 길" = 일본 정부와 낙농·유업계, 학계 등은 TPP로 인한 시장개방에 따라 수출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홋카이도대학교 글로벌전략연구소는 24일 'TPP와 홋카이도 농업'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야마시타 글로벌전략연구소 연구주간은 일본 인구감소로 내수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시장개방까지 겹쳐 해외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면 농업을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야채와 과일, 우유와 유제품을 수출해나가는 게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홋카이도대학은 1876년 농업대학으로 시작, 일본에 근대 낙농을 전파한 곳이다. 도쿄대학교 농업대학보다 1년 빠르다. 메이지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식량기지로 개척하던 일본은 미국 매사추세츠 농과대 학장으로 있던 윌리엄 클라크를 홋카이도대학(당시 삿포로농학교) 초대 학장으로 초빙했다. 클라크는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며 근대화를 촉진했다.

일본 농림수산성과 'J-밀크', 지정단체 관계자들도 21일 한국으로 낙농제품 수출을 희망하는 속내를 비췄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이 TPP나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으면 홋카이도에서 생산한 우유를 한국에 수출할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 제품을 사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3만달러 국민축산, 2030이 연다' 연재기사]
- ① "질병·악취·수입개방에 축산기반 무너진다" 2015-09-30
- ② 'TPP' 격랑에 선 일본 보며 한국낙농 진로 고민│일본 농수산성 "내년부터 원유(우유 유제품 원료)도 입찰제 시범실시" 2015-10-29
- ③ 'TPP' 격랑에 휩싸인 일본 보며 한국낙농 진로 고민 일본│낙농·유업계, '시장과 계획' 양 날개로 공생 2015-10-30
- ④ 네덜란드·덴마크 축산인들│ 네덜란드, 동물복지 규정과 자동화설비로 닭·젖소 길러 2015-11-27
- ⑤ 네덜란드·덴마크 축산인들 - 농기계산업│ 네덜란드 '렐리' 로봇착유기, 60개국 낙농가 정보수집 2015-11-30
- ⑥ 네덜란드·덴마크 농업인 교육│ "농업교육 안 받으면 은행대출 못 받아" 2015-12-28
- ⑦ 2015년 축산계, '찾아오는 축산운동' 시동| "후계농이 '안티 축산' 극복 앞장" 2015-12-29
- ⑧ '청년 축산' 정책 시급│ "한우 100마리 키우는데 11억원 들어" 2015-12-30
- ⑨ 후계농업인이 이어가는 낙농업│ "우유 소비감소·수입제품 범람 위기 극복" 2016-01-01
- ⑩ 가축분뇨로 에너지·비료 생산│ "우리 마을 축산분뇨자원화시설 늘려달라" 2016-01-25
- ⑪ 김태환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대표 인터뷰│ "젊은 축산인 신규창업 적극 지원" 2016-01-27
- ⑫ 사료산업경쟁력 강화│ 농협, 네덜란드연구소와 협력 2016-01-28
- ⑬ 악취제거│"축산농가 분뇨저장조 빨리 비워라" 2016-02-23

도쿄 홋카이도=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정연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