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불시대 국민축산, 2030이 연다│⑨ 후계농업인이 이어가는 낙농업

"우유 소비감소·수입제품 범람 위기 극복"

2015-12-31 10:38:14 게재

낙농육우협회·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가 앞장 … 후계자들 지도력에 관심 집중

한국 낙농업이 국내 소비부진과 개방확대로 인한 수입유제품 범람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산업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손정렬 전국낙농육우협회장.

손정렬(52) 한국낙농육우협회 회장과 신관우(58) 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 회장(충북낙농협동조합 조합장)은 2015년 7월 1일 세종정부청사 농림축산식품부 기자실에서 우유 원료인 '원유' 기본가격을 2년째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낙농가를 대표한 두 회장은 "통계청 조사에서 지난해엔 25원 더 올려야 적정 생산비라고 했는데 양보했고 올해도 이를 고려해 인상해야 하지만 시장상황이 좋지 않으니 또 양보했다"고 말했다.

유가공업체들도 화답했다. 정수용 한국유가공협회장은 "원유가 동결로 올해도 우유값은 올리지 않는다"며 "지금은 원유가를 올려도 우유값에 반영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원유공급 과잉 속에서 소비자 가격이 또 오를 것인지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생기기 않았다.

국내 낙농업은 우유소비 감소와 시장개방 확대로 인한 수입산 유제품 범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산비가 올라도 제품가격에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시장상황에서 낙농업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낙농가 입장만 주장하기도 어렵다. 유가공업체가 만든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낙농가도 계속 원유(유제품의 원료가 되는 소 젖)를 생산할 수 없다. 소비자들도 수입산에 대한 거부감이 갈 수록 줄어들고 있다. 유가공업체-소비자와 낙농가들이 함께 할 방안을 만드는 게 절박한 과제다.

신관우(왼쪽 세번째) 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장은 충북교육청와 업무협약을 맺고 학교급식에 국내산 치즈를 사용하기로 했다.

손 회장과 신 회장은 모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 낙농가들이 공동행동할 수 있는 '전국단위 쿼터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원유가 남으면 생산을 줄이고, 모자라면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하려면 전국 낙농가들이 하나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낙농후계농으로 출발한 이들은 후손들이 계속 낙농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위기극복방안을 마련하는 데 여념이 없다.

K-밀크 인증에 집중하는 손정렬 = 손정렬(53) 전국낙농육우협회 회장은 소비자들에게 '케이밀크(K-MILK) 인증사업'을 확산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K-밀크는 유제품에 사용하는 우유를 100% 국내산으로 사용하고, 제품용량 중 우유원료 함량이 50%가 넘을 때 인증마크를 부여한다.

낙농육우협회가 2014년부터 시작한 'K-밀크 인증사업'은 수입산 유제품에 맞서 국내산 유제품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시작했다. 현재 14개 업체 277개 품목으로 K-밀크 인증이 늘었다.

K-밀크 인증사업의 위력은 국내 시장에서 한국산 원유를 사용하는 외국업체들이 늘어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쓰는 우유는 모두 한국산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타벅스는 K-밀크 사업 첫 해부터 한국산 우유 사용을 시험했고, 이를 전체 사업장'제품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수입유제품이 독점하고 있던 아이스크림류 분야에도 K-밀크 인증사업에 참여하는 제품이 나타났다.

국내 유업체들도 국산 원유 사용을 늘리고 있다. 국내 최대 유업체인 서울우유협동조합에서 K-밀크로 인증된 품목은 2014년 9월부터 2015년까지 99개였지만 새해 101개로 늘어난다. 우유류는 25개, 가공우유류 28개, 발효유류 37개, 기타 11개 등이다. 특히 K-밀크 인증마크가 붙은 수출품도 15가지다.

손 회장은 "K-밀크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수입산 유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막아낼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밀크 인증사업은 시장에서 당당하게 수입산과 경쟁해 국내 낙농업이 살 길을 개척하겠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손 회장은 전통 낙농가에서 배출한 낙농후계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서울우유협동조합 창립 발기인 중 한 명으로 조합원번호가 5번이다. 할아버지-아버지를 이어 그는 1993년 자신의 이름으로 된 목장(계변삼대)을 경기도 가평에 열었다. 목장 이름에 있는 '삼대'는 삼대를 이어 낙농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붙인 것이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목장을 하겠다는 꿈을 키웠고, 축산명문인 건국대학교에서 낙농(학사)과 수의학(석사)을 전공했다.

손 회장은 자신의 느꼈던 기쁨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는 "현재 딸은 축산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은 군에 입대하면서 처음으로 목장을 하겠다고 말했다"며 "목장이름이 계변사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치즈 생산으로 시장확대하는 신관우 = 신관우(58) 충북낙농협동조합 조합장은 매일 아침 5시 기상벨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대외 활동이 많아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있는 날도 기상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목장을 돌면서 농가에서 짠 원유(유제품의 원료가 되는 소 젖)를 모아가는 '집유차'가 오기 전에 원유를 짜야 하기 때문이다.

신 조합장은 직접 집유(원유를 짜서 모으는 일)하는 조합장으로 유명하다. 농업인들이 조합장에 당선된 후에는 조합경영 때문에 농사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지만 신 조합장은 아침 집유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한다. 그는 "젖소는 다른 가축보다 예민해 돌보는 손이 바뀌면 좋은 원류를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조합장도 처음엔 목장일에서 손을 떼고 조합일에 집중했다. 2003년 충북낙협을 설립하고 신생 농협의 경영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력을 쏟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충복낙협은 신생 농협의 틀을 벗고 우수 농협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신 조합장이 운영하던 목장의 성적은 나빠졌다. 그는 부인과 함께 젖소 80두를 기른다. 외부에서 고용한 노동력은 없다. 전형적인 가족농이다.

그는 농업인으로서 기본에 집중하면서 지역 낙농가들의 염원이 담긴 조합경영도 소홀히 하면 안되는 처지였고, 매일 아침 집유는 직접 하기로 했다. 낙농가의 처지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신 조합장은 지역 낙농가에 신뢰를 줬고, 조합원들은 4회 연속 무투표 당선으로 응답했다. 그는 '2015년 전국 조합장 동시 선거'를 앞두고 지역 언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조합경영이 안정됐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낙농이 위기에 처해 있다며 그에게 출마를 요청했고, 그는 경쟁자 없이 당선됐다.

신 조합장은 국내 1호 낙농분야 농어민후계자다. 청원군(현 청주시)에서 2만9700㎡(9000평) 규모의 벼'담배농사를 하다 1981년 농어민후계자로 신청했다. 그는 "농어민후계자로 선정돼 당시 400만원의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낙농분야 후계자는 없어 경종으로 받았다"며 "하지만 낙농을 하고 싶어 정부에 '사업종목을 낙농으로 바꿔달라'고 건의서를 냈는데, 다행히 허가를 받았고, 대한민국 1호 낙농후계자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신 조합장이 젖소를 키우던 곳은 집유차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어서 원유를 짜서 조합(청주우유협동조합)으로 가져갔다. 원유를 조합까지 나르던 일은 3년 후 집유차가 들어올 때까지 계속됐다. 농업인에게 조합이 얼마나 중요한가 절감했던 시기였고, 청주우유협동조합이 문을 닫자 지역 농가를 모아 충북낙협을 만든 이유였다.

그는 자신의 목장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하지만 스스로 하겠다고 올 때까지 강권하지 않고 있다. 신 조합장은 "본인이 선택해야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며 "지금 아들은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 조합장은 자녀들이 계속 낙농업을 할 수 있도록 국내 유제품 시장을 확대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엔 충북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학교급식에 '농협 목우촌' 브랜드로 우유와 치즈를 공급하고 있다.

['3만달러 국민축산, 2030이 연다' 연재기사]
- ① "질병·악취·수입개방에 축산기반 무너진다" 2015-09-30
- ② 'TPP' 격랑에 선 일본 보며 한국낙농 진로 고민│일본 농수산성 "내년부터 원유(우유 유제품 원료)도 입찰제 시범실시" 2015-10-29
- ③ 'TPP' 격랑에 휩싸인 일본 보며 한국낙농 진로 고민 일본│낙농·유업계, '시장과 계획' 양 날개로 공생 2015-10-30
- ④ 네덜란드·덴마크 축산인들│ 네덜란드, 동물복지 규정과 자동화설비로 닭·젖소 길러 2015-11-27
- ⑤ 네덜란드·덴마크 축산인들 - 농기계산업│ 네덜란드 '렐리' 로봇착유기, 60개국 낙농가 정보수집 2015-11-30
- ⑥ 네덜란드·덴마크 농업인 교육│ "농업교육 안 받으면 은행대출 못 받아" 2015-12-28
- ⑦ 2015년 축산계, '찾아오는 축산운동' 시동| "후계농이 '안티 축산' 극복 앞장" 2015-12-29
- ⑧ '청년 축산' 정책 시급│ "한우 100마리 키우는데 11억원 들어" 2015-12-30
- ⑨ 후계농업인이 이어가는 낙농업│ "우유 소비감소·수입제품 범람 위기 극복" 2016-01-01
- ⑩ 가축분뇨로 에너지·비료 생산│ "우리 마을 축산분뇨자원화시설 늘려달라" 2016-01-25
- ⑪ 김태환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대표 인터뷰│ "젊은 축산인 신규창업 적극 지원" 2016-01-27
- ⑫ 사료산업경쟁력 강화│ 농협, 네덜란드연구소와 협력 2016-01-28
- ⑬ 악취제거│"축산농가 분뇨저장조 빨리 비워라" 2016-02-23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정연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