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달러 국민축산, 2030이 연다 ③ 'TPP' 격랑에 휩싸인 일본 보며 한국낙농 진로 고민

일본 낙농·유업계, '시장과 계획' 양 날개로 공생

2015-10-30 11:22:52 게재

가격·수량 결정엔 시장원리 작동 … 생산기반 관리는 계획 세워

일본의 낙농산업은 '시장'과 '계획'두 날개로 움직이고 있었다. 원유(우유·유제품의 원료) 생산량과 가격결정엔 시장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로 시장원리는 더 많은 분야에, 더 깊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낙농업과 유가공산업을 위한 제도도 강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시장가격과 적정가격 사이의 간격을 보조금으로 메꾸고 있다. TPP 타결은 일본 낙농산업에 거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들은 시장과 계획 양 날개를 이용해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시장원리 확대 = 일본에서 원유가격은 낙농가를 대표하는 9개 지정단체(거대 농협)와 210여개 유가공업체들의 협상으로 결정된다. 우유를 만들기 위한 원유, 치즈를 만들기 위한 원유 등 용도별로 가격은 다르다. 협상에 참여하는 지정단체·유가공업체 수와 용도별 가격까지 고려하면 가격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격이 결정되기 전 낙농가들이 생산할 원유량은 중앙낙농회의(지정단체들이 모두 소속된 전국 조직)에서 결정한다. 데라다 시게루 일본 중앙낙농회의 업무부장은 "우리가 생산계획을 세울 때는 다음해 원유수요량을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며 "수요예측을 할 때는 중앙낙농회의 뿐만 아니라 생산자단체와 유업체로 구성된 일본낙농유업협회(제이밀크)도 함께 한다"고 밝혔다.

중앙회의는 제이밀크가 예측한 수치를 바탕으로 목표량을 정한다. 이때 중앙회에 소속된 9개 지정단체가 모두 참여한다. 지정단체들은 또 소속 현단위 농협과 협의하고, 현단위 농협은 낙농가와 소통한다. 낙농가들이 생산한 원유의 97%를 지정단체에 팔아달라고 맡기는 것도 이런 과정에서 정착했다.

정수용 한국유가공협회장은 "일본이 한국과 다른 것은 가격을 정할 때 소비자가 참여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격을 정할 때 원유 수요자인 유가공업체가 지불할 수 있는 가격과 낙농가 생산비를 조사한다"며 "수요자와 공급자가 가격결정에 참여해 시장원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원유가격 결정 과정에 시장원리를 더욱 확대하는 추세다. 농림수산성은 지난 16일 '원유거래에 대한 검토회' 보고서를 발표하며 내년부터 버터용 원유 등은 입찰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원리는 시장에 참여한 주체들의 혁신노력으로 더 발전하고 있다. 낙농가들은 좋은 품질의 원유를 계속 생산하기 위해 젖소개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6일 막을 내린 제14회 전일본 홀스타인공진회에는 고등학생들도 참여해 기량을 겨뤘다. 사진 일본홀스타인등록협회 제공

한국의 종축개량협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일본 홀스타인(얼룩젖소)등록협회'는 5년마다 한번씩 '공진회'라는 이름의 경연대회를 연다. 심사기준은 대회 5년 전에 발표한다.

24일부터 26일까지 홋카이도에서 열린 제14회 전일본 홀스타인공진회는 젖소가 오래 살면서 원유를 계속 생산할 수 있는 '장명연장성'이 기준이었다.

일본농업신문에 따르면 올해 공진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아마노 히로카즈씨는 "보다 오래 젖을 짜야만 한다"며 "튼튼한 엉덩이와 다리, 유방 등 모든 측면에서 이를 고려해 사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래억 한국종축개량협회 부회장(홍천목장 대표)은 "일본은 5년에 한 번씩 여는 전국단위 공진회 외에도 기초단체인 '현' 단위에서 200여개 품평회를 자주 열고 있다"며 "일본은 품평회와 공진회가 많고, 목표를 정해서 좋은 방향으로 젖소를 개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부회장은 동료들과 함께 홋카이도 공진회를 살펴보고 왔다.

유업체도 소비확대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25년 홋카이도낙농가들의 판매조합에서 시작한 '유키지루시 메그밀크'는 창업초기부터 우유뿐만 아니라 치즈 버터 등 다양한 유가공제품을 생산했다. 유키지루시 메그밀크는 한해 매출액이 5조6000억원, 종업원 4951명의 기업으로 일본에서 두번째 규모다. 2000년, 2002년 잇따른 식품사고로 위기를 맞았지만 사고를 낸 계열사를 없애고, 사고원인 등을 회사 홈페이지 역사란에 그대로 실어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일본유업체들이 해외유제품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제품군에서 드러난다. 홋카이도 삿포로역 인근에 있는 대형마트 '이온' 매장에는 다양한 일본 유제품들이 가득하다. 남인식 농협중앙회 축산담당 상무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제품들이 있어서 부러웠다"며 "한살짜리 아이를 위한 치즈, 유제품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생산기반유지계획 포기 안 해 = 지난 21일 한국방문단을 맞은 세끼무라 시즈오 일본 농림수산성 축산기획과 조사관은 일본이 낙농생산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정부는 우선 전국 556곳의 축산클러스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농가세대수, 사육마릿수가 계속 줄어들면서 낙농기반이 약화되는 것에 대응해 기본이 튼튼한 고수익형 낙농가를 창출하는 게 목표다.

세끼무라 조사관은 "축산수익성 강화사업에 정부보조율을 33%에서 50%로 올렸다"며 "전에는 5개 이상 농가가 모일 때만 지원했는데 앞으로는 개인농가도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수입사료에 대한 의존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사료증산대책사업'을 진행하며 초지개량 보조금도 33%에서 50%로 늘렸다. 젖소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액도 더 높였다.

일본은 우유·유제품과를 두고 국내 유가공업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은 낙농담당 공무원이 2명에 불과하다. 가나사와 마사타카 우유·유제품과 과장보좌는 "일본에서는 어떻게든 원유생산량을 유지하는 게 정책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요에 맞게 생산하는 게 가장 좋고, 그래서 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은 '마시는 우유'에 사용하는 원유보다 치즈 버터 등 유제품에 사용하는 원유가격이 낮다. 수입유제품과 경쟁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하지만 버터용 원유를 생산하는 농가를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그 차이를 메우고 있다. 가나사와 보좌는 "가공원유 생산자의 경영안정을 위해 311억엔의 보조금을 사용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는 치즈용원유도 보조금 지급대상에 포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보조금 지급에 반대하는 여론이 없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일본은 낙농가와 유업체, 그리고 최종 소비자인 국민이 시장과 계획의 양 날개 아래 공생을 모색하고 있었다.

['3만달러 국민축산, 2030이 연다' 연재기사]
- ① "질병·악취·수입개방에 축산기반 무너진다" 2015-09-30
- ② 'TPP' 격랑에 선 일본 보며 한국낙농 진로 고민│일본 농수산성 "내년부터 원유(우유 유제품 원료)도 입찰제 시범실시" 2015-10-29
- ③ 'TPP' 격랑에 휩싸인 일본 보며 한국낙농 진로 고민 일본│낙농·유업계, '시장과 계획' 양 날개로 공생 201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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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홋카이도 =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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