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달러 국민축산, 2030이 연다 ①

"질병·악취·수입개방에 축산기반 무너진다"

2015-09-30 11:07:07 게재

축산농가 80% 후계자 없어 … 후계농 없는 농가 50% 폐업 계획

축산농가가 반복되는 가축전염병, 가축분뇨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인한 주변 민원,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인한 시장개방과 수급불안정으로 신음하고 있다. 축산농가는 2000년 55만8000호에서 올 6월 현재 11만4000호로 약 80%가 줄었다. 축산업 생산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우의 경우, 암소를 키우는 소규모 농가들이 급속히 줄어들더니 최근엔 전업농 규모인 100마리 이상 사육농가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부모는 "고생한 보람이 없다"며 자식에게 축산업을 물려주지 않으려 하고, 젊은층은 농촌에서 가축을 기르는 것보다 힘들어도 도시생활을 선호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지난해 한우, 낙농, 양돈, 육계(고기용 닭), 산란계(달걀), 오리 등 6대 축종의 축사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축산농가의 79.7%는 후계자를 확보하지 못했다. 65세 이상 축산농가가 44.3%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축산 후계농의 부재는 '인구절벽'으로 인한 축산업의 급격한 붕괴 위험까지 이를 수 있다.

지난 3~5월 축산농가를 상대로 한 농협중앙회 설문조사에서 후계자가 없는 한우농가의 56.2%, 낙농가의 48.2%, 양돈농가의 22.8%는 향후 축산업을 그만두겠다고 답했다.

추석 앞두고 또 AI = 추석을 앞둔 지난 15일 전남 강진과 나주의 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6월 이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방역당국이 AI발생 및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살피는 예찰과정에서 발견했지만 당국과 농가들은 긴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전남도는 지난 18일 AI 확진 농장 인근 10km 이내 가금류 농장에 대해 이동제한 조치를 내렸다. 또 발생지역 인근에 방역대를 설치해 이동차량에 대한 소독작업을 했다.

나주 노안에서 기르던 오리 8000여 마리를 모두 도살 처분한 후 김 모씨는 "텅 빈 농장에서 혼자 추석을 보내니 정말 죽을 맛"이라고 한숨 쉬었다.


AI는 국내에서 2003~2004년 첫 발생 이후 2006~2007년, 2008년, 2010~2011년, 2014~2015년 등 1~2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해 발생한 AI의 종식 선언도 못한 상태에서 발생했다. 사실상 상시 발생국이 된 것이다.

소 돼지 등 큰 동물에 생기는 구제역 피해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구제역은 지난 2000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2002년, 2010년, 2014년 발생했다. 특히 2010년 경북 안동에서 발생해 2011년까지 이어져 전국으로 확산된 구제역은 국내 축산업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3748농가에서 발생해 6241농가의 소 돼지 등 348만마리를 죽여서 땅에 묻었다. 정부는 방역비로 2조7000억원을 투입했다. 안동 등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으로 관광객 등이 줄어들면서 해당지역 경제도 침체했다.

구제역을 막겠다며 예방백신을 놓았지만 지난해 12월 충북 진천에서 발생한 구제역도 7개 시·도 33개 시·군의 185개 농장으로 확산되면서 축산농가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백신을 놓은 상태였지만 5개월 동안 17만 마리의 돼지와 소를 살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백신의 효능을 둘러싸고 '물백신' 논란이 일면서 농가와 방역당국간 불신이 높아지기도 했다. 구제역은 4월 28일 충남 홍성·천안에서 마지막으로 발생한 이후 잠복돼 있는 상태다.

정부는 전염병이 발생한 후 대응하는 방식에서 바이러스가 늘 존재한다고 보고 방역대책을 세우는 '상시방역체계'로 전환했다. 구제역도 농가 주변에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악취로 축사 설 자리 줄어 = 가축분뉴로 인한 악취는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축산업을 혐오산업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조례를 통해 가축사육 제한거리를 두고 축사 신축이나 증축을 막고 있다. 환경부도 가축사육 제한지역을 확대하고 분뇨를 정화해서 방류할 때 기준을 강화하는 등 환경규제를 계속하고 있다. 충북 괴산군의 경우 가축사육을 제한한 지역이 전체 면적의 81.5%에 이를 정도다.

최근엔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악취문제가 지역사회의 갈등요소로 불거지고 있다. 나주, 전주 등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 및 가족들도 축산단지에서 나는 악취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개방으로 인해 국내 축산업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외국축산물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보수적인 국책연구기관들도 한·미 FTA와 한·EU FTA 발효 이후 15년간 국내 축산업 피해 규모를 각각 12조2253억원, 2조1719억원으로 추정했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 이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전통적 축산강국과 FTA도 체결해 축산농가의 위기의식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농가들은 수입축산물이 국내 축산물 수급을 더 불안정하게 하고, 가격과 소득 불안정으로 이어진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수입축산물은 소, 돼지, 육계, 우유 등의 생산비가 국내보다 20~50% 낮은데다 냉장 유통이 확산되면서 품질경쟁력도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10년이 '골든타임' = 농식품부는 동시다발적 FTA로 인한 위기가 향후 10년 이내에 모두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관세가 없어지기 전까지 축산업 체질을 개선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축산업에 위기의 징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표로 나타난 축산업은 성장산업이다. 축산업 생산액은 2014년 18조8000억원으로 농림업 전체의 40%에 이른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연평균 성장률도 5.7%로 국민경제 성장률보다 높다. 최근 3년 평균성장률은 7.9%, 지난해는 15.7%로 갈수록 성장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의 육류소비량은 45.1kg으로 독일 88.1kg, 덴마크 95.2kg, 미국 120.2kg 등에 비해 절반 수준이어서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한우와 돼지고기 등 주요 축산물 가격도 최근 좋아지고 있어 농가 경영도 안정화되는 추세다. 국제 옥수수 가격도 2013년 톤당 282달러로 고점을 찍은 후 지난해 12월 158달러로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축산인들도 이런 기회를 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1일 친환경축산협회와 농식품부는 충남 홍성 돼지농장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악취의 주범으로 인식돼 기피시설이던 양돈장에서 음악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양돈농가도 지역 및 환경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다짐이었다.

농협중앙회는 국내 축산업을 이어가기 위해 향후 10년간 51개 축산 브랜드마다 100명씩, 모두 5100명의 '축산 후계인력'을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내년부터 '젊은이가 찾아오는 축산운동'을 본격 시행하기로 했다. 8월에는 '축산후계농종합지원센터'를 설립, 축산후계농 지원사업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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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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