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 전쟁은 안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하자│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인터뷰

"평화협정 논의, 비핵화·군사적 긴장완화 촉진할 것"

2017-10-10 12:07:39 게재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부와 통일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핵심정책을 토의할 때 첫 주제는 한반도 평화체제였다. 토론자는 "지금 정세는 엄중하지만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는 믿음으로 평화체제 논의를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토론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도 "한반도 평화는 우리가 지킨다는 자세와 철저한 주인 의식과 국익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전쟁상태 종식에서 출발해 평화 회복, 관계정상화로 마무리 된다. 이 중 핵심 내용인 평화협정은 비핵화가 완성이 되고 재래식 군축이 이루어지는 등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 체결한다. 이른바 '선 비핵화-후 평화협정'으로 미국과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공식 입장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반도 비핵화와 냉전구조 해체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먼저 추진하는 '예외적 조기실현 경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성렬 박사와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와 실현과 경로, 그리고 과제에 대해 들어 보았다.

■ 한반도 문제 해결의 방향과 단계별 과제에 대해 소개해 달라.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전쟁 재발을 막고 전쟁 원인을 제거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 문재인정부의 최대 과제이다. 한반도는 1953년 7월 27일 유엔과 북-중간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으로 일시적인 휴전(Ceasefire) 상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전쟁상태 종식에서 출발해 평화 회복, 관계정상화로 마무리 된다.

전쟁상태 종식은 전쟁 당사자의 종전선언에 이어 평화 회복을 이루어야 한다. 평화 회복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평화협정이다. 평화협정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도 같다. 평화협정 당사자, 평화보장관리기구, 유엔사령부 해체, 해상경계선 획정, 상호 군비통제 등 동반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관계정상화는 북미, 북일 수교로 수많은 장벽을 넘어야 가능하다.

■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비핵화라는 중대한 변수가 있다.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보나.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는 출발점이 다른 문제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국전쟁 종식을 위한 과제이지만 한반도 비핵화는 핵무기비확산체제(NPT) 유지를 위한 과제이다. 북한이 평화체제와 비핵화 연계를 처음 주장한 것은 2005년 7월이다. 당시 북한 외무성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없어지는 것이며, 자연히 비핵화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해 9.19공동성명에서 평화체제와 비핵화 연계에 첫 합의를 도출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 포기와 남·북·미·중 4자간 평화협정, 북미 및 북일 수교 등과 교환, 즉 북한의 핵과 대북 안전보장을 교환하는 연성균형(Soft balancing)이 이루어졌다. 최근 북한은 핵무력이 큰 진전을 이루면서 평화체제와 비핵화 연계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이 태도 변화를 보인 이유는.

2010년 1월 11일 북한 외무성의 평화협정 주장 이후 자신들의 핵과 대북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연성균형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다가 2015년 10월 1일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연설 때부터 북한의 핵과 미국의 핵위협을 맞바꾸자는 경성균형(Hard balancing)을 추구하게 된다. 2016년 7월 6일 공화국 정부성명을 통해 '조선반도 비핵화 5대조건'을 제시하는데 첫째는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둘째는 남한내 핵무기 및 핵기지 철폐·검증, 셋째는 핵타격수단의 한반도 불반입 담보, 넷째는 대북 핵무기 위협 및 사용 금지, 다섯째는 핵사용권 쥔 미군의 철수선포이다. 북한의 이런 주장은 핵과 미사일 고도화에 상응해서 요구 수준을 높인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대가였던 평화협정을 이제는 대북 적대시정책 폐기의 징표로서 북미 핵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높아진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가능한가.

이명박정부의 '비핵 개방 3000 구상'이나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북한의 비핵화를 출발점으로 하는 '입구론'이다.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비핵화는 성과가 없이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기존 접근법으로 더 이상 풀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을 때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를 앞세우는 입구론이 아니라 포괄적 합의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선행하는 '출구론'이 필요한 때이다. 한반도 비핵화 촉진과 전쟁위기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먼저 추진하는 '예외적 조기실현 경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월 3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 평화협정 논의는 어떤 효과가 있나.

북한은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한 후 몰락한 사례에서 교훈을 얻었다. 핵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에게 생명과도 같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선군론'이었다면 김정은은 '선핵론'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은 핵개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외교적 해법으로 핵포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면 오히려 평화협정을 빨리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 정권이 태도를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북한 내부가 변화해야 한다. 개혁의 물적 토대와 인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평화협정은 '트로이 목마'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핵물리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지만 시장을 통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평화협정과 북미수교 등을 통해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비핵화의 기회를 앞당기자는 것이다.

■ 평화협정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평화협정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은 현재 군사정전체제가 사실상 평화체제이며, 주한미군 철수 유도를 위한 북한 노림수에 말려드는 것이고, 평화협정이라는 문서보다 힘에 의한 억제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고 유엔사령부 해체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주한미군 지위, 한미동맹의 재조정 등 복잡한 과제들이 동반된다. 미국에도 불량국가 북한과 수교를 맺는데 대한 강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이후 북미 수교는 양국 정부당국 합의와 서명뿐만 아니라 의회의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미 의회 우려사항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동안 평화협정 논의가 복잡하니까 덮어두고 피해갔다. 북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로 장기적 숙제로 여겨졌던 한반도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평화협정 논의를 과감히 꺼낼 때가 되었다.

■ 한반도 평화의 단계적 추진과 병행론을 주장해 왔다. 어떤 내용인가.

평화프로세스의 단계적 추진은 전쟁상태 종식, 평화 회복, 관계정상화를 말한다. 평화협정 이전에 전쟁상태 종식을 위한 종전선언을 하고 필요하다면 이를 문서화한 '잠정평화협정'이나 이를 포괄하는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다.

1978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대통령 휴양소인 캠프데이비드에 초청했다.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0년째 전쟁 중이었다. 무려 13일간의 협상 끝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상호인정을 토대로 평화적 관계를 맺는 역사적 협정에 도달하였다. 캠프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은 중동 평화의 포괄적 틀과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철군, 국교 정상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잠정협정으로 평화협정으로 가기 전단계의 조치였다. 1979년 3월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이 체결 되었는데 그 내용에는 평화관리기구, 평화지대 설정, 대사관 교환 설치 등을 담고 있다. 선 전쟁상태 종식과 후 평화회복을 단계적으로 실현한 사례이다.

병행론은 이러한 평화프로세스가 북한 비핵화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잠정평화협정 단계에서 북한 핵이 동결되고, 정식 평화협정 단계에 핵 폐기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는 어떤 단계를 밟아 추진되는가.

포괄적 평화 프로세스는 남북관계를 복원해 남북포괄합의서를 체결한 뒤 남북 잠정평화협정 내용이 담긴 남북기본협정 체결, 한반도평화협정 및 남북연합조약을 맺는 단계이다. 비핵화 프로세스는 이에 상응하게 유예, 동결, 폐기의 단계를 밟는다. 구체적으로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한 핵프로그램을 유예하고, 검증가능한 동결을 통해 핵시설을 불능화한 뒤, 제한적 핵폐기에서 전면적 핵폐기로 나가는 것이다. 핵 동결과 남북기본협정으로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교환하고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대사급 북미 수교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나.

지난 9월 24일 리용호 북한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국가 핵무력의 최종 목표는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밝힌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힘의 균형을 양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경성균형에 의한 안보 대 안보를 교환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실제로 미국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면 국가핵무력 수준이 90~95% 완성도를 보일 때가 협상력 극대화시점이므로 스스로 국면전환을 도모하는 것이 유리하다. 미국도 미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완성 및 실전배치 이전에 현 수준에서 동결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북미간 대화의 접점이 없지 않다. 지난 5월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철회 △대북제재 해제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을 북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 중단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8월 △핵 실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동북아안정 저해언행 중단 등 3대 조건의 선행을 대화조건으로 제시했다.

■ 향후 대화국면이 열릴 가능성이 있나?

대화국면 전환의 3대 계기와 배경이 있다. 첫째는 10월 말로 북한이 일정 궤도에 오른 핵무력을 바탕으로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10월 18일 중국 제19차 당 대회가 있고, 10월 말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내년 키리졸브 군사연습 규모가 결정되며, 11월 초 트럼프의 한·중·일 방문과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계기가 존재한다. 지난 4월 초 미중이 양국 현안을 봉합했던 것과 달리 1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남중국해, 무역역조 등 핵심현안에 대한 타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여 북한으로서는 상황 고착 이전에 국면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6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미중 100일 계획'(7월 16일 종료)을 통한 통상마찰 유예와 북핵 문제의 중국 아웃소싱에 따른 해결을 시도했지만 북한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만이 높아져 중국도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는 2018년 1월 초 김정은 신년사 내용 중 핵무력 완성에 기반을 둔 대화국면 전환을 밝힐 수 있다. 북한은 당초 시간표대로 2017년 말까지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뒤 우리측이 제안했던 남북대화를 뒤늦게 수용하고 쌍방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북미 직접대화를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는 2018년 3월 말 한미군사연습이 종료된 뒤 안보 분위기가 진정된 후이다. 내년 2월 9~25일 평창동계올림픽과 3월 초부터 한미 키리졸브 군사연습이 있으며 3월 중순 중국 양회에서 시진핑 2기 체제가 출범한다. 남북 및 북미관계에서 첨예한 갈등요소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중국도 시진핑 2기가 출범한 상태에서 핵무력 완성에 기반을 둔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 극한 대립 속에서 우리 역할은.

북한이 미국이 전략자산을 투입해 위협하지 않는다면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겠다고 나설 경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 특사단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는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는 중국의 중재안인 쌍방중지(핵 및 미사일 시험 중지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지)와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협상 동시 진행)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1단계로 북한이 추가 핵미사일 시험 중지를 선언하면 이를 받아 한미동맹도 군사훈련 조정을 약속하고 2단계로 남북, 북미 간에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며 3단계로 동북아지역 안보체제 수립을 위한 협상을 개시해 군비체제, 주한미군 등 복합적 이슈를 다루는 방안을 한반도 긴장완화 로드맵으로 제시했다.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 러시아를 통해서 북한을 설득하고, 대화 조건이 충족되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에 전략 자산 투입 자제를 요구할 수 있는 나라는 훈련 당사자인 한국뿐이다. 올해 안에 국면전환을 하지 못하면 내년부터는 한국이 감당 못할 상황이 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운전석'론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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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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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김상범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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