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
최근 미국을 다녀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 만에 출장을 간 탓에 오랜만에 미국정부 인사들과 한국전문가들을 만나 생생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논의의 중심은 단연 종전선언이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 '한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선언했고, 이면 합의의 하나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군사훈련 취소와 함께 종전선언을 약속했다. 이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흔들렸고, 종전선언 역시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2007년 10.4선언과 2018년 판문점선언 실천으로서의 종전선언을 포기하지 않았고 최근 UN 연설에서 다시 언급하며,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현 정부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시작의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제안의 핵심이다. 평화체제의 완성이 아니라 입구라는 것이다.
한국정부의 종전선언 재시동에 대해 중국은 지지하고 북한은 조건부 지지를 내세우는데, 미국은 꾸준히 난색을 보였다. 이유는 종전선언이 정전체제를 약화시키고, 북한은 종전선언을 빌미로 미군철수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실질 효과가 없는 정치적 선언을 구태여 이 시점에 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반응해왔다.
한국의 종전선언 제안이 못마땅한 미국
최근 문재인정부의 끈질긴 설득에 미국정부는 태도 변화를 보였다. 워싱턴에서 만난 국무부 고위관료들은 입을 맞춘 것처럼 한국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제안을 미국은 수용한다는 기조였다. 바이든정부의 핵심 대외정책이 동맹을 중시하고 동맹국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라고 해놓은 상태에서 한국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한미 양국 정부는 종전선언에 들어갈 문안 조율의 막바지 단계이며, 조만간 북한에 모종의 제안을 할 예정인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이 전반적으로 한국의 의견을 존중해 종전선언에 진전이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미국의 속내는 여전히 한국발 종전선언 제안이 못마땅하다. 게다가 종전선언 문구가 합의되더라도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미국의 태도가 이중적인 것은 한국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수용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종전선언이 무산되는 상황을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아가 종전선언의 문안이 막바지임에도 한미 간 이견을 흘리거나,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낼 만한 어떤 의미 있는 내용도 담지 않아 결과적으로 무산시키려는 의도가 읽힌다.
미국정부의 한 인사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거절하도록 다른 방식으로 자극할 가능성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바이든정부는 트럼프가 망쳐버린 동맹을 회복하고, 동맹국들을 존중한다고 일관되게 천명해왔기에 현재 한국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종전선언뿐 아니라 북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여전히 미약하고, 선제적으로 양보하거나 행동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북한 역시 종전선언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남측 정부의 정치적 제스처로 판단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종전선언 문안에 합의하더라도 한국이 미국을 확실하게 설득한 결과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미국의 이중적 태도는 어렵게 이룬 한미공조의 결과물을 낭비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 영속될 수 없어
바이든정부가 대북정책을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로 잡고, 한미정상회담에서 판문점회담과 싱가포르 선언을 추인했던 긍정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는 바이든정부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대북 대치라는 현상유지 기조를 지속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한반도 및 동북아 국제정치 역학에서 현상유지가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에 달려있다. 작금의 현상유지를 위태롭게 유지하는 핵심인 '핵실험-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 중단'을 북한이 반대급부 없이 영원히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