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7
2026
“낡은 것은 사라지지 않았고, 새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활개를 친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한 1920년대 모국 이탈리아의 위기를 경고했던 말이다. 꼭 한세기 후 오늘의 세계와 한국을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국제정치적으로 미국의 패권은 퇴조하고 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국내정치적으로는 반공 극우 세력들이 평화와 민주주의의 안착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지난 정권의 폭정과 내란에 책임있는 인사들이 선거를 통해 국회와 지방정부에 진출한 것 역시 이런 병증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입김이 갈수록 완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을 중국을 겨누는 ‘단도’로 표현하며 한국을 미중갈등의 최전선으로 몰아가고 있다. 북방에서의 변화도 심상치 않다. 북러 관계가 밀착되고 있는 가운데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06.16
대한민국은 지금 지방소멸이라는 가혹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인구감소와 청년층 유출은 지방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의 권한 일부를 16개 시·도 광역지방자치단체에 넘기는 ‘노동행정 분권화’ 논의가 제도화 단계에 들어선 것은 의미가 크다. 과거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 노동행정으로는 지역마다 다른 고용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지역마다 주력산업도 다르고 고용불안의 양상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독점해 온 노동감독과 고용지원 기능을 지자체에 이양해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는 이제 피하기 어려운 흐름이 됐다. 실제 변화도 시작됐다. 지난 3월 노동부와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중앙지방정책협의회 결과에 따라 정부는 중앙과 지방이 함께하는 ‘노동감독 원팀’ 체계 가동에 착수했다. 지방고용노동청이 전담하던 임금체불 예방, 근로계약서 미작성 단속, 최저임금 위반 점검 등 현장 밀착형 근로감독 기능과 일부 사법경찰권을
조선 말기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의학은 개인별 건강 특성과 질병 양상의 차이에 주목한 독창적인 의학체계였다. 사람의 체질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에 맞춰 질병을 예방·치료하려 한 선조들의 통찰은 인간을 고유한 개체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오늘날 정밀의료 및 예방의학이 지향하는 철학적 본질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현대 정밀의료가 유전체와 환경, 생활습관 등 검증가능한 생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면, 사상의학은 오랜 경험적 직관의 산물이다. 이제 우리는 경험 영역에 머물렀던 사상의학의 통찰을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 기반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다. 한국인 고유의 유전체 정보와 세계적 수준의 건강검진 데이터와 임상기록을 스마트 기기의 라이프로그와 융합하는 지식체계를 통해서다. 한국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강력한 바이오헬스 데이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오뱅크의 유전체 등 정보는 생명과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고, 높은 수검률을 자랑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주
06.15
기립박수는 42초 동안 계속됐다. 미국 시카고 필드박물관 인근의 대형전시장.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6 행사장에서 췌장암 종양의학자 수백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수도 모자라 환호가 터졌고, 휘파람이 이어졌다. 단상 뒤 화면에는 췌장암 환자의 사망 위험을 기존 치료보다 60% 낮췄다는 그래프가 떠 있었다. 의사들을 일어서게 한 약물 이름은 ‘다락손라십’. ASCO 연례행사는 매년 5월 말쯤 열린다. 세계의 종양학자 수만명이 몰려든다. 암은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이는 질병. 그래서 ASCO는 여느 학회가 아니다. 암 연구와 치료의 최전선을 확인하려는 의학자들의 열기가 폭발하는 곳이다. 한국에서도 서울대병원 종양 의사 등 많은 사람이 거의 매년 찾는다. 올해 ASCO의 주인공은 췌장암 신약 다락손라십이었다.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한 연구책임자는 하버드대학교 브라이언 월핀 교수. 그는 ‘게임 체인저’ ‘패러다임 전환’과 같은 단어를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췌장암은
06.11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다. tvN이 2012년부터 방영한 드라마이다. ‘응답하라 1997’이 시작이다. 이어 1994, 1988로 바통을 넘긴다. 줄여서 ‘응칠’ ‘응사’ ‘응팔’로 불렀다.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다. 숫자가 상상력을 자극했다. 1997년은 IMF외환위기로 기억되는 시대 아닌가. 1994년은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해다. 이듬해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됐고. ‘응팔’은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다. 그야말로 희비 곡절의 시대가 배경이다. 하지만 시대적 특수성은 그저 무대였을 뿐이다. 연출자 신원호PD는 단지 재미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연도가 주는 시대적 기억을 공유하며 열광했다. 만일 ‘응칠’이 1987이었다면 어땠을까. 박종철에 이어 이한열까지 아스팔트 위 열사의 시대가 아니던가. 군사독재에서 민주화의 물꼬를 튼 역사의 변곡점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06.10
2026년 6월,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열린다. 4년을 기다린 선수와 축구팬의 가슴이 설레는 순간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지난 4월 플레이오프 토너먼트 연장전 끝에 승리해 5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정말 힘든 과정으로 본선에 진출한 이 팀의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전지훈련의 일환으로 스페인 남부의 한 도시에서 6월 9일 열릴 예정이었던 칠레와의 평가전 경기가 취소되었다. 그 이유는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지카 바이러스 등이 큰 걱정거리였다. 모두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고 모든 것에 인간이 문제다. 해결도 인간의 몫이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의 치명률은 아주 높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익숙해진 우리는 높은 치명률이 낮은 전파율을 의미함을 알고 있고, 에볼라 바이러스 문제는 국지적으로 끝날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달리 에볼라 바이러스는 직접 접촉으로만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06.09
지방선거가 끝났다. 새로 선출된 광역·기초단체장들은 이제 냉엄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 현실의 이름은 ‘인구감소’다. 청년은 떠나고, 아이는 태어나지 않으며, 지역은 늙어간다. 많은 단체장들이 인구 늘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지만 인구감소시대에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2023년 경상북도의 의뢰를 받아 제자들과 함께 인구감소 대응 전략을 연구했다. 1년간의 연구 끝에 우리가 제안한 핵심은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이 아닌 관점의 전환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더 중요하고, 그 출발점은 세 가지 관점의 전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첫째, ‘인구’에서 ‘인재’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지방정부는 여전히 인구 숫자에 집착하지만 대한민국의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우리 지역만 인구를 늘리겠다는 목표는 현실성이 낮다. 이제는 인구가 아닌 인재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06.08
병자호란 때 청나라 역관(譯官) 정명수(鄭命壽)는 만감이 교차하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평안도 은산 출신 노비였다. 정묘호란 때 출정했다가 후금(훗날 청나라)의 포로가 된 뒤 역관으로 탈바꿈했다. 그곳에서 만주어를 배우고 조선 사정을 고해바쳐 황제의 신임을 얻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장수 용골대·마부대의 통역으로 들어와 모국 침공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그 뒤 청나라의 뒷배로 조선의 정1품 관직인 영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청으로 귀화한 그는 굴마훈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청나라를 등에 업은 정명수는 권력을 유감없이 휘둘렀다. 소현세자가 청으로 끌려가다 걸음을 멈추자 정명수는 채찍을 휘두르며 모욕적인 말로 재촉했다. 이를 보고 경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자기가 총애하던 기생을 꾸짖었다는 이유로 병조좌랑 변호길을 몽둥이로 폭행했다. 조선 조정은 그냥 보기만 했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자기 친척들에게 벼슬을 내려달라고 강요하는 등 온갖 횡포를 부렸다. 조선
06.04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성과급 요구에 뒤이어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중심으로 한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면서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삼성전자 노사의 합의 자체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노조가 영업이익의 일정비율 만큼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일은 해마다 있어 왔고, 2021년에 SK하이닉스 노사가 10년간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한 전례가 있다. 당시에는 올해와 같은 막대한 규모로 영업이익이 쏠릴 것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기에 별다른 사회적 주목을 끌지도 않았다. 이번 사태는 의도와 무관하게 한국경제를 인공지능(AI) 기반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가야 할 사회적 과제를 공론화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AI전환의 과실은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동시에 이 질문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회피해 온 보다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성장의 성과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06.02
19세기 말 세계는 제국주의의 광풍 속에 있었다. 국제사회는 힘이 곧 질서였고, 약한 나라는 살아남기 어려웠다. 일본은 이런 시대 흐름 속에서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제국주의 열강의 일원이 되었다. 승리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그 배경에는 1902년 체결된 영일동맹이라는 중요한 외교적 연결이 자리하고 있다. 영일동맹 체제 아래에서 러시아 함대는 수에즈 운하 이용과 보급에 여러 제약을 받았고, 러시아 함대는 멀리 희망봉을 돌아 극심한 피로 속에 쓰시마 해협에 도착해야 했다. 결국 일본은 승리했고 국제정치에서 ‘연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계에 보여주었다. 100년이 지난 오늘의 국제질서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냉전 종식 이후 우리는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왔다. 국경은 낮아지고 하나의 시장을 지향하는 자유로운 경쟁의 시대였다. 국제법과 국제기구가 갈등을 조정하고,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점점 더 커져왔다. 실제로 세계화는 많은 나라에 번영을
06.01
요즘 취업준비생들이 거쳐야 하는 시험무대 중 하나가 인공지능(AI) 역량검사다. AI 역량검사, 용어만 보면 AI라는 도구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 그 역량을 테스트하는 것 같지만실제 그렇게 생각한다면 십중팔구 50대 이상 고령층이다. 취준생들 사이에 ‘AI 역검’이라 불리는 이 시험은 ‘AI에 대한’ 검사가 아니라 ‘AI가 하는’ 검사다. AI가 수험생의 인·적성을 검사하고 역량을 측정하는 것이다. 수험생은 컴퓨터 앞에서 AI가 제시하는 설문에 답하거나 게임을 수행하고, 영상 면접을 치른다. AI는 수험생의 답변 내용과 태도 표정 행동패턴을 종합적으로 측정해 평가점수를 내고, 기업에선 이를 참고해 채용여부를 결정한다. 최종 결정은 사람이 한다지만 그 결정의 근저에 AI 평가가 있으니 사실상 결정 주체는 AI인 셈이다. AI 역검을 앞둔 취준생들은 시험 전 자신의 AI 앞에서 모의 역검을 치르는 게 보통이어서 AI 대 AI 대결 같은 느낌도 든다. 기술 발달 측면에서 보
05.28
인공지능(AI)은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에 스며들어 오고 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AI는 인간의 수작업 영역을 자동화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산업혁명 이후 가장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으로 평가한다. 아폴로 11호 달 착륙에 이은 제3의 창세기에 비견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관심이 클수록 질문은 더 냉정해야 한다. AI는 과연 혁신의 본질인가, 아니면 기존 기술체계 위에 세워진 하나의 첨탑에 불과한가. 어디까지를 가능성 영역으로 봐야 합당할까. 컴퓨터기술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에 대한 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컴퓨터는 흔히 ‘양파구조’에 비유된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컴퓨터 분야만 갖는 고유한 특징이다. 맨밑에 하드웨어(HW)가 있다. 메모리반도체와 계산반도체 이 둘이 HW를 이룬다. 그 위에 소프트웨어(SW)인 운영체제(OS)가 자리한다. OS는 HW를 지휘 통제하는 육법전서다. 메모리반도체와 계산반도체 각각의 활용도를 최대화하기 위
05.27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그날 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데이’ 이벤트를 진행했다. 텀블러 제품명이 ‘탱크’였고, 홍보문구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까지 담았다. 탱크는 광주시민을 진압한 정치군부의 상징이고, ‘책상에 탁’은 1987년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덮으려는 당시 경찰의 거짓말에서 따 왔다. 회사측은 “우연”이라 했지만 누구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아니다.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정 회장은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도 더 높이겠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나아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왜 그럴까? 문제는 내부시스템도 관리체계도 아니다. 정용진 회장이다. 정 회장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맥락으로 각인되어 있느냐이다. 정 회장은 2022년에는 SNS에 ‘멸공(滅共)’ 즉 공산당을 없애자는 단어를 반복
05.26
중동전쟁이 휴전을 앞두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나이브하게 전쟁을 시작해 본전도 건지지 못했고, 이란으로서는 국력의 약화와 정권의 강화라는 이중적 결과를 안게 되었다. 미국과 이란 둘 다 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역량 제거와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했으나, 막대한 전쟁지출에도 불구하고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였으며, 국제유가만 올라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제는 전쟁을 계속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으므로 전쟁을 계속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란은 원유수출을 못해 경제적 붕괴를 앞두고 있어, 미국이 계속 공격하면 결사항전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이번 전쟁의 핵심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이스라엘은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었다. 안보위협이 단기적으로 줄어들었으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커졌기 때문이다. 전술적으로는 이득이 있었으나 전략적으로는 패배다. 왜 그런가.
05.21
“전쟁은 외교의 실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외교의 실패는 전쟁보다 가혹한 결과를 낳는다. 역사가 증명한다.” 현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딱 그렇다. 전쟁 중에도 미중 정상회담은 열렸다. 외교 테이블은 마치 포커판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폭탄으로 블러핑하면 중국 시진핑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응수한다. 결국 중국은 보잉을 찔끔 사주고, 미국은 대만과 동맹을 ‘협상 칩’으로 던졌다. 본디 외교에는 ‘노(No)’가 없다고 한다. ‘예스(Yes)’는 ‘아마도(Maybe)’를, ‘아마도’는 ‘아니오’를 뜻한다고 할까. 외교전에 승패도 모호하다. 그저 절반의 실패를 절반의 성공으로 포장할 뿐이다. 협상 결과가 이현령비현령으로 어정쩡한 이유이다. 시진핑은 트럼프가 떠나자마자 20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불러들였다. 그도 전쟁의 수렁에서 헤매는 중이다. 목하 중-미 중-러의 밀당 외교전이 뜨겁다. 그 한복판에서 한일 셔틀외교가 19일 안동에서 열렸다. 이번
05.20
2026년 2월 말 발발한 이란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유가폭등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지표인 JKM은 한달 만에 MMBtu당 10달러에서 20달러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그런데 이 위기가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시장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블룸버그NEF 등 주요 기관들은 2025년 4억1000만톤 수준이던 LNG 공급량이 2026년 4억8000만톤까지 늘어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OIES)도 2030년에는 LNG 공급 설비가 수요를 6~13% 초과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미국과 카타르의 대규모 증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LNG 쓰나미’를 경고했다. 불과 몇달 사이에 ‘공급과잉’이 ‘공급위기’로 뒤집힌 셈이다. 이 역설은 에너지 안보가 얼마나 복합적인 문제인지 보여준다. 공급의 확대가 곧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에너지는 여전히 지정학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전략자산이기 때문
05.19
지난 5월 13일 새벽 술을 마시고 자율주행 모드(FSD) 상태의 테슬라를 타고 가던 운전자가 상식을 흔들었다. 그는 경기도 수원에서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 지금은 음주운전 단속 대상이 분명하다. 하지만 앞으로 자율주행 수준이 높아지면 그때도 단속 대상일까. 이 뉴스를 접한 적지 않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다.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은 레벨 0부터 5까지 나뉜다. 미국의 민간 자동차 전문가 단체인 SAE 인터내셔널이 2014년 만든 분류인데, 미국 교통부와 UN이 공식 채택하면서 사실상의 국제 기준이 됐다. 레벨 2까지는 사람이 운전의 주체다. 레벨 4부터는 비상상황도 차가 스스로 처리한다. 레벨 5는 핸들도 페달도 없이 차가 완전히 혼자 달린다. 테슬라는 자사의 FSD(Full Self-Driving의 줄임말)를 레벨 2로 공식 분류하고 있다. 이는 기술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레벨 3부터는 책임 구조가 복잡해지고, 레벨4부터는 제조사가
05.18
로컬 브랜드하면 흔히 대전 성심당이나 군산 이성당을 떠올릴 것이다. 이들 빵지순례 코스 말고도 역사와 문화, 특유의 제조 기법을 자랑할 만한 브랜드들이 많다. 지식재산처가 5월 발명의 달과 제61회 발명의 날(5월 19일)을 맞아 지역 브랜드 가치 재발견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캠페인을 전개하며 손잡은 주류기업들이 그런 경우다. 이번 협업에 대선주조(부산) 금복주(대구·경북) 보해양조(광주·전남) 선양소주(대전·세종·충남) 무학(울산·경남) 충북소주(충북) 한라산(제주) 등 지역을 대표하는 7개사가 참여했다. 소주병 라벨에 ‘지식재산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문구를 넣었다. QR 코드를 찍으면 전국에서 운영하는 지역지식재산센터(RIPC)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RIPC는 지역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지식재산권 관련 업무 지원, 예비창업자 아이디어 상담, 유관기관 사업 연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6.3 지방선거에 나선 자치단체장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인공지능(AI)·반도체공
05.14
과거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첫 기억은 만화적 상상력이었다. 일본의 마징가Z에 맞선 한국의 태권V는 기계 영웅의 이미지였고, “국가위기 시 KIST 본관 옆 연못이 열리고, 태권V가 출격한다”는 설화 같은 유머는 기술이 곧 국력이라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이제 그 시절의 막연한 동경과 상상은 ‘피지컬 AI(Physical AI)’란 실체적 기술이 되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2025년 CES에서 젠슨 황이 선언했듯 생성형 AI 이후는 현실세계에서 작동하는 로봇의 시대다. 당시 무대에 등장했던 휴머노이드 14대 중 6대가 중국산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2024년 이후 소개된 휴머노이드의 70%가 중국산일 정도로 로봇기술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년 베이징 하프 마라톤에 처음 출전했던 로봇들이 불과 1년 후 인간의 기록을 추월하고, 춘절 행사에서 어린이들과 정교한 대련을 하는 모습은 기술발전의 가속도를 증명한다. 중국의 로봇산업은 이제 거리
05.13
대한민국의 ‘광장 민주주의’의 수준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가 오면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권력을 견제하며 역사를 바꿔왔다. 그러나 시선을 우리들의 삶터인 도시와 지역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자치 민주주의’는 뒤처져있다. 시민이 주인인 ‘민국’이 아니라 거대정당이 지배하는 ‘당국’에 가까운 현실이다. 선진국들은 오랜 시간 경제와 민주주의를 함께 발전시켜며 시민 자치의 경험을 축적해왔다. 반면 우리는 국가와 엘리트가 주도한 압축성장의 길을 빠르게 달려왔다. 경제발전에는 성공했지만 자치 민주주의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방선거는 여전히 정당공천과 인기경쟁, 그리고 개발공약 중심의 선거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왜 좋은 시장을 뽑지 못하는가. 사람을 몰라서가 아니다. 판별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후보의 말솜씨나 이미지, ‘무엇을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에 끌리지만 그 공약이 도시를 어디로 이끌지는 따져 묻지 않는다. 선거는 사람을 고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