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1
2025
서울에 사는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제주 고향집에 갔다. 장차 며느리가 될지도 모를 귀한 손님을 맞이한 해녀 어머니는 여친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 폭싹 속았져(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여친은 어리둥절했다. 표정과 태도는 환영하는 듯한데, ‘나를 보고 속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제주어 연구자인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속다’는 제주어에서 ‘고생하다’는 긍정의 뜻과 ‘속임을 당하다’는 부정의 뜻을 갖는 동음이의어다. 제주 사람에겐 정겨운 인사지만 외지인에겐 혼란을 주는 말이다. 요즘 화제가 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도 제목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제주를 고향으로 둔 필자는 처음엔 제목을 보고 코미디쯤으로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서울 친구들이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필자가 “제목 뜻은 아냐?”고 물었더니 한 친구가 “남의 말에 속아 고생했다는 뜻 아냐?”라고 답했다. 제목도 모르고
05.20
사형 아니면 무기형 혐의로 재판 중인 피고인이 개 산책을 즐기며 국민을 조롱하고 있다. 어느 역사에서도,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어려운 기괴한 일이다. 그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이제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해 달라며 대선에 끼어들었다. 그가 6.3대선의 각본을 짜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터라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국민의힘이 그를 쳐내지 않고 있는 것은 이 당이 ‘헌법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17일 내란 수괴 혐의의 윤석열이 탈당하고 친구 석동현 변호사도 선대위 사퇴를 선언했지만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들은 여전히 한마디 사과도 없이 12. 3 내란행위를 애국적 행위로 강변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 문제는 김 후보 자신이다. 그는 전광훈과 자유통일당을 같이 만들고 초대 대표를 지낸 경력이 있고, 지금도 이들 극우세력과 절연하겠다는 약속하지 않는다. 내란세력, 탄핵반대세력, 부정선거 음모론자 등 반헌법 세력을 모두 규
05.19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심판(The Trial)’은 인간의 실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불친절한 문체로 설파한다. 주인공 요세프 K처럼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판결을 받지만 집행의 시기를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잊고 살아간다. 이유도 모른 채 기소당하고 구금되지도 않고 일상 생활을 한다. 죄목과 변호할 방법도 모른다. 종국에는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당한다. 개별 인간의 집합체인 인류도 멸망하게 설계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까지의 구조와 방식으로 살아간다. 멸망의 순간에도 왜 그리고 누구 때문에 죽음을 맞는지 모른다. 다만 존재했기 때문에 사라질 뿐이다. 인류가 처한 환경위기, 특히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우리 시대에 대한 카프카의 예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얘기한다. “어떤 지점에 이르면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에 도달해야만 한다.” 모든 존재에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동시에
05.15
1990년만 하더라도 EU 27개국의 GDP 규모는 세계 1위로 미국을 앞질렀고 중국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했다. 하지만 2014년 미국에 추월당했고, 2020년에는 중국에 밀려 세계 3위로 내려앉았다. 그 이후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EU는 침체를 겪고 있다. 이에 폰데어라이엔 2기 EU 집행위원장은 유럽경쟁력의 현재 및 미래를 진단하고자 했다. 진단을 맡은 이는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로 2007년 유럽에 재정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규모 통화완화정책을 시행해 유럽경제를 살린 바 있기에, 유로존의 구원투수라 불리고 있다. 작년 9월 일명 드라기 보고서라 불리는 ‘유럽경쟁력의 미래’가 발간됐다. 이 보고서는 유럽경쟁력 약화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탈원전, 탈석탄을 의미하는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크게 높아진 에너지 비용이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실제 유럽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 및 중국의 2배, 산업용 천연가스 가격
05.14
양자컴퓨터는 기반 물질에 따라 초전도체 기반, 위상물질 기반, 원자 기반으로 나뉜다. 2024년 말 구글은 자체 제작한 초전도체 기반 양자컴퓨터 윌로우를 공개했다. 몇달 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위상물질 기반 마요라나1을, 아마존은 초전도체 기반의 오슬롯을 공개하면서 어느새 양자 컴퓨터 제작이 초거대 정보기업들의 실력을 다투는 각축장이 되었다. 마침 2025년은 양자역학이 만들어진 지 100년이다. 1925년 하이젠베르크가 만든 양자역학의 위대한 성취를 알리는 기념 행사가 필요없을 만큼 이미 세상은 빠르게 양자화되는 중이다. 계엄과 탄핵의 어지러움 때문에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았지만 한때 우리 국가 지도자가 즐겨 사용하던 단어도 ‘양자’였다. 양자기술 관련 정부 예산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에서 면제됐고, 올해부터 수천억원의 예산이 양자기술 개발에 쓰일 예정이다. 원자핵공학 반도체공학과 별도로 양자공학을 연구하고 박사 학위를 주는 국내 대학이 몇년 전부터 생겼다. 이 학생들이
05.13
6.3 대선은 ‘하나마나한 대선’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선후보 교체 파동이라는 전무후무한 친윤의 선상반란까지 일어났다가 당원들 반발로 진압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지사가 “보수는 우물 바닥까지 내려갔다. 우리를 꺼내줄 두레박은 없다. 거기서 장렬하게 죽겠다는 각오로 하자”고 토로할 정도로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보수지 ‘조선일보’도 후보교체 파동을 질타한 뒤 “이재명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 발언을 인용해 ‘상대방이 자빠져. 그럼 이기는 거야’라고 했다. 이번 대선이 그런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6.3 대선에 대한 관심은 이제 ‘이재명 민주당’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고 있다. 집권후 정치역학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는 관심 밖이다. 그보다는 ‘이재명 시대’에 어떤 정책이 펼져질지 특히 경제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는 물론 외국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그런 맥락에서 대선 공식운동이 시작된 12일 민주당이
05.12
국내 1위 이동통신사 SK텔레콤(SKT) 유영상 사장은 2021년 11월 취임하며 ‘고객·기술·서비스’를 3대 경영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러나 4월 18일 유심 해킹 사태 이후 SKT 어디에서도 고객·기술·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객만족 서비스는커녕 2500만 가입자들은 어떤 정보가 해커들 손에 넘어갔는지 몰라 불안해했다. 유심을 교체하기 위해 SKT 대리점과 공항 로밍센터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모든 고객의 유심을 무료로 교체해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유심 물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일부 기업이 답답했는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임원들 휴대폰 유심칩을 바꿔줬다. 해킹 사태 이후 30만명의 SKT 가입자들이 KT와 LG유플러스로 옮아갔다. 갈아타고 싶은데 위약금을 물어야 해서 망설이는 고객들이 많을 게다. 잘못은 기업이 저질렀는데, 피해는 고객이 보는 현실이다. 국내에서 이동통신 서비스가 본격 개시된 1988년 이후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05.08
통계청은 ‘2025년 2월 고용동향’에서 2월 중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이라고 답한 15~29세 청년인구가 50만4000명이라고 보고했다. 2003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 수치다. 1년 전 같은 기간에 44만3000명으로 집계되었으니 13.8% 증가했다. 코로나19 시대마저 훌쩍 넘어선다. 이 연령대의 고용률이 2021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44.3%이며, 실업률은 7.0%, 체감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은 17%대로 올라섰다. 이 데이터는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필자의 직업이 갖는 특성상 청년들과 만나는 시간이 많은 편이라 자기반성까지 하게 돼서 더욱 착잡했다. 비경제활동인구란 구직활동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또 그냥 ‘쉬었음’은 구직단념자를 포함해 수입이 있는 일에 종사할 능력은 있으나 구직활동도 가사노동도 하지 않으며,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텐데 통계청의
05.07
세상이 어지럽다. 나라를 떠받치는 권력 시스템이 뿌리까지 흔들리면서 많은 것들이 꼬이고 엉켜서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나라밖에선 무역 분쟁에 관세 전쟁까지 험난한 파고가 몰아치는데 나라 안의 세력과 집단은 대의(大義)를 외면하고 자기들 소리(小利)에 집착해 번번이 극한대결로 치닫는다. 연일 고조되는 혼란과 무질서에 현기증 느끼는 국민들은 참다못해 짜증섞인 비명을 지를 판이다. “국민하기 힘들다. 대체 우리 보고 어쩌라고?” 우리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정부에,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3권분립은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막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민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정치 구조다. 그런데 이 세 갈래 권력이 국민 앞에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힘 자랑이나 하면서 나라를 위기상황으로 내모는 것이다. 입법부는 국회 다수당의 눈 밖에 난 공직자들에 대해 걸핏하면 줄줄이 탄핵을 연발한다. 공직자 탄핵은 윤석열 사건을 제외하면 단 한건도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지 못
04.30
2시간짜리 계엄은 대통령 탄핵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탄핵소추 결론까지 4개월은 한편의 전쟁 드라마였다. 헌법재판소 결론은 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야당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게 핵심요지다. 말하자면 토론부재 정치에 대한 질타다. 물론 헌재는 야당 책임 부분을 대통령의 헌법정신 위배보다 상대적으로 무겁게 보진 않았다. 국정공백과 민생외면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민감국가 지정이 눈앞에 닥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남의 일처럼 무심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위헌·위법한 대통령을 방어하느라 급급했고 민주당은 여전히 다수의 완력을 무기로 밀어붙이기를 일삼았다. 그 사이에 사상 초유의 대형산불 재난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정치권 방심이 자초한 산불로 봐야 한다. 산림 및 소방 당국인들 제대로 돌아갔을 리가 있겠는가. 3류정치의 폐해는 참담하다. 이런 치졸한 정치의 원인은 정치의견 수렴과정에서 여과장치가 결여돼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절차가 무시된 결과 중심
04.29
트럼프의 비정상적 경제정책으로 세계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당분간 경기후퇴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경제상황이 나빠지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적 성장잠재력의 손상이다. 이는 혁신의 후퇴에서 온다. 트럼프 1기 때 시작돼 2기로 이어지고 있는 트럼프 현상의 원인은 양극화다. 양극화는 소외세력을 키워 정치적 변동을 유발한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혁명 직후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불안과 유사하다. 현대판 양극화의 뿌리는 세계화와 혁신이다. 세계화와 혁신은 산업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단기적으로는 양극화를 낳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저소득층의 지위가 향상되고 평등한 사회를 가져오게 된다. 물론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장기적 번영만을 바라보며 단기적으로 어느 계층이 희생되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세계화와 혁신은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어나 제동이 걸리게 된다. 트럼프의 정치와 정책으로 타격 받은 것은 세계화와
04.28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제기된 개헌논의가 대선 이후에 본격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즉시 개헌을 유보하고 있지만 다른 후보들은 개헌에 적극적이어서 대선 토론에서 후보들은 어떤 개헌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현재 제안된 개헌 방향은 권력체제 변화와 중임 대통령제 도입으로 정리된다. 전자의 주장은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과 측근의 권력비리와 탄핵 등 끊임없이 퇴행적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권력구조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참에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개헌 방안은 대통령제는 유지하되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중임제로 재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반응성이 높아져서 책임정치가 가능할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대선과 총선을 4년 주기로 맞추게 되면 두 선거를 동시선거에 치를 수 있어서 국민 갈등과 선거비용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다는 것이
04.24
대선이 달아오르고 있다. 각 당이 경선을 통해 후보를 압축하고 선정을 마쳤다. ‘1강2약’이라는 민주당은 27일 후보를 선출한다. ‘찬탄’과 ‘반탄’ 두 명씩 걸러낸 국민의힘은 내달 3일 최종 후보를 확정한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의원을 이미 선정했다. 변수(?)는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해외매체와 인터뷰에서 “노 코멘트”라고 하거나 “결정하지 않았다”며 출마설을 흘린다. 윤석열정권 3년 동안 국무총리로 재임하지 않았나. 게다가 위헌적 12.3비상계엄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어 보이는 상황인데 그의 출마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여하튼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또다시 국민 현혹이 시작됐다. 요란하게 북 치고 나팔 불며 장마당 서커스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갖는 시대적 역사적 의미를 형형색색 깃발로 가리면서 말이다. 국민의힘 경선이 그렇다. 헌법재판소에서 헌법파괴 행위로 판결해 파면한 윤 전 대통령이 아직도 ‘1호 당원’이다. 당 차원의 진정
04.23
탄핵심판과 헌재 판결기간이 지연되면서 초조하게 마음 졸이던 국민들의 눈과 귀가 대통령 파면 판결로 조기대선이 결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피곤하다. 경선을 앞두고 대거 몰려나온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의 조별 토론회에서 드러난 탄핵 관련 말바꾸기와 상대방에 대한 인신 공격성 발언들 때문이다. 20일 TV로 중계된 국민의힘 대선 예비토론에서 홍준표 경선후보는 한동훈 후보에게 “키도 크신데 뭐하려고 키높이 구두를 신느냐”고 물었다. 연이어서 “생머리냐, 보정 속옷이냐 이 질문은 유치해서 안하겠다”고 정책과는 무관한 사적인 인신공격성 질문을 했다. 이에 한 후보는 “유치하시네요”라고 맞받고 끝냈다. 시청자들에게 가학적 재미를 선사하려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엉뚱한 발언으로 TV토론 자체를 희화화하는 이런 태도는 사실상 유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린다. 실례이며 전파 낭비다. 한 친구는 그 순간 지금까지 이유 없이 가볍게 보이던 한동훈이란 인물이 갑자기 세련되고 진중하
04.22
지난 3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렸던 2025 세라위크(CERAWeek)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CERAWeek는 미국의 S&P 글로벌이 매년 개최하는 에너지 컨퍼런스입니다. 우리에게는 '2030 에너지 전쟁' '뉴맵'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다니엘 예긴(Daniel Yergin)이 전체 회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전세계 10000명 이상의 에너지 업계 리더, 정책 결정자, 투자자, 기술 전문가들이 모여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리래를 논의 했습니다. 올해 회의는 ‘에너지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다’는 주제 아래 에너지 안보, 공급확대, 기후변화 대응, 기술혁신과 지정학적 도전 과제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전력 수요 급증과 천연가스가 주도하는 에너지 세계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에너지 관련 발표와 토론이 있었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어떤 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할 것인가를 다투는 전원 믹스 논쟁의 변한 모습이었습니다.
04.21
2024년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29조달러와 18조달러다. 두 나라의 GDP를 합산하면 47조달러로 세계경제에서 비중은 약 43%다. 그러나 두 나라 경제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70~80%에 이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5년 봄, 미국과 중국은 상호보복 관세폭탄을 주고받으며 경제전쟁의 막장 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기존 강국이 신흥 강국의 부상을 견제하다 전쟁으로 치닫는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현재의 미중대립에서 되살아나는 듯하다. 트럼프는 창이다. 직설적이고 돌진형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를 찌른다. 그는 부동산 업자 시절부터 그런 사람이었고 1기 정부도 그렇게 움직였으며, 2기 들어서는 더 거칠어졌다. “관세는 좋은 것”이라는 그의 발언에 미국 안팎의 경제 전문가들이 경악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 순간의 거래였고 중국이 굴복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04.17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팬데믹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한국 사회가 정치적인 내부질서의 붕괴 위기도 평화적으로 이겨낸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의 놀라운 잠재력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최근 지속가능발전과 경영의 영역에서 핵심어로 떠오른 개념이 회복탄력성이며 투자자들이 ESG 용어 대신 회복탄력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지만 지속가능성이 미래 세대를 고려한 성장방식을 주장하는 보다 포괄적인 접근인 반면 회복탄력성은 부정적 충격으로부터 회복 또는 적응 능력을 나타내는 지속가능성의 한 부분 또는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은 40년 가까이 경제 정책과 사회발전의 지표가 되었지만 시류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부침을 겪었다. 가장 최근 비즈니스 유행어(buzzword)였던 ESG도 지속가능성의 한 단면으로 과분한 주목을 받다가 이제 제자리를 찾
04.16
한국 현대정치사는 권력의 속살을 드러내는 ‘정치 언어’의 변천사다. 박정희정권 시절은 ‘안보’와 ‘개발’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통치했다. 정치적 갈등은 국가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는 ‘민주주의’라는 언어로 정치 권력을 포장했다. 민주화의 진전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부를 거치며 법과 제도, 절차로 가시화됐다. 의회와 시민사회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각 정당과 정파 간에도 타협과 절충의 정치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대의 법은 정치갈등을 조정하는 조력자였다.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다시 국가 권력은 ‘법대로’라는 정치 언어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언론이 권력과 유착하면서 건강한 공론의 장이 사라지고 정치는 사법적 판단에 내맡겨졌다. 법이 정치를 재단하면서 정적을 겨누는 무기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 그것이다. 이 흐름은 윤석열 검찰정권에 이르러 극대화되었다. 12월 3일 통치권이라는 이름으로 도
04.15
내란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형사재판이 본격 개시됐다. 지난 3년 ‘왕’처럼 군림하며 국정을 농단하던 윤석열과 비선 논란의 중심에 있던 김건희에 대한 엄정한 법의 심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만큼 헌정질서를 전복하고 국가를 혼돈으로 몰아넣으려 했던 그들의 범죄사실을 확정하는 데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명의 재판관이 5가지 소추 내용을 모두 인용한 평결을 내놓았으니 재판의 진행도 순조로울 성싶다. 그러나 아직 방심은 이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한마디 사과도 없이 상왕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내란에 연루됐던 피고인들 역시 증거를 인멸하고 법의 심판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책동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란특검 임명을 거부하던 한덕수 권한대행이 돌연 내란혐의 피의자 이완규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감행한 것 또한 내란 뒷수습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지난 겨울
04.14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박완서의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수치심을 궁구한다. 주인공은 학생 시절 6·25 전쟁을 겪는다. 피난 간 마을에 미군 부대가 생기자 많은 사람이 미군과 가까이 하고 싶어한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딸에게 양갈보짓이라도 하라고 들볶는다. 주인공은 이를 피해 이른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다 세번 결혼하게 된다. 어릴 때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았던 주인공은 그러는 사이에 부끄러움을 잊어버린다. 그는 고위층 부인이 된 친구를 만나 서울 종로의 일본어 학원에 다니게 된다. “여러분, 이 부근부터 소매치기를 조심하십시오.” 일본어로 안내하는 가이드의 말을 알아듣곤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는 문득 학원 간판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휘날리고 싶어 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부끄러움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감정이라는 걸 보여준다. ‘부끄러움’은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일찍이 맹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