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
2025
‘개발’은 ‘계획’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신개발·재개발·재건축·뉴타운 등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도시개발’은 ‘도시계획’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는 망가지고 본연의 아름다움과 정체성을 지켜낼 수 없게 된다. 정체성을 잃으면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키우는 일도 어렵게 된다. 종묘 앞 세운상가 일대 초고층 개발 논란의 본질은 ‘계획’을 무시하고 뛰어넘으려는 ‘개발’에 있다. 도시계획을 세워 도시를 지키고 돌보는 일이야말로 시장에게 부여된 기본 책무인데 지금 서울시장은 계획 아닌 개발 편에 서 있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 부끄럽게도 역사도시 서울의 심장인 도심부(한양도성안) 도시계획은 1990년대 말까지 부재했다. 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서울 도시기본계획’은 1960년대에 수립되었지만 오랜 역사성을 보유하고 있는 ‘도심부계획(Downtown Plan)’은 2000년에 이르러 처음 세워졌다. 조 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이 주재하던 도시계획위원회에 도심
12.03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동북아시아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살얼음같은 현안들이 많은 이 지역에 정치 지도자들의 리스크가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돌출 발언은 당분간 깊고 긴 파장으로 번질 조짐이다. 총리 발언 이후 일본에 불리한 조치가 이어짐에 따라 발언이 실수가 아닌가 하는 막연한 짐작이 나왔다. 그러나 반대로 의도된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최근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는 자리에서도 “발언 진의 왜곡” “발언 내용의 과도한 해석” 등 정치인들의 상투적 화법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야당 의원이 당시) 구체적인 사례를 물었기 때문에 나는 성실히 답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해협의 분쟁 발생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총리가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를 공식 거론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사전에 준비를 했으며, 신중을 기했으리라는 것을 일반인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일본은 직접 무력 공격을 받는 경우와 달리
12.01
지난 11월 25일 여당이 사법개혁안을 발표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여러 쟁점들이 이야기됐지만 제왕적 사법권력을 독점해 대법원장의 사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해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비법관 위원들도 참여시켜 사법행정에 민주적 통제를 강화한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안이 핵심내용 중의 하나다. 사법행정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 모두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현직 법관 외에도 인권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식이 풍부한 비법관이나 비법조인을 포함시켜 위원회 구성에 다양성을 갖추겠다는 방침이다. 즉 위원 지명이나 추천권을 변호사단체나 법학교수회 등에 분배해 사법행정의 폐쇄성을 타파하고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벌써 대법원에서 위헌이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헌법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이 조항을 사법권독립에 관한 조항이라고 보면서 법원에 속하는 '
11.28
다음주 수요일이면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만 1주년이다. 그날 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첫 1보를 접하고 턱도 없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가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황당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명백한 헌법 위반이고 국민 상식으로도 도저히 납득되지 않은 내란 기도였음에 비춰 진즉 엄정한 법적 심판이 내려졌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해서만 결심공판이 끝나 내란우두머리 방조 및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형이 구형된 상태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핵심 피의자들의 재판은 법 기술을 동원한 피고인측의 지연작전에 휘말려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윤 전 대통령이 재판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어떻게 저렇게 자격 미달의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게 됐을까 하는 참담함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증인들의 일관된 증언과 물증이 제시되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변명과 부인
11.27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당 지도부를 누가 결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내부 분란을 겪고 있다. 한쪽에서는 당심을 강조하며 당원 100~70%를, 다른 한쪽은 민심을 내세워 당밖의 국민참여 비율이 최소한 50%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 정당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문제만 갖고 정당민주주의를 운운하는 게 타당할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정당민주주의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짚어봐야 한다. 정당민주주의는 정당이 정치과정 전반에 걸쳐 인민의 주권자적 위상과 역할, 즉 정치적 주체성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작금의 정당정치 현실에서 정당민주주의를 운운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제1원리를 어떻게 구현해 갈 수 있는 지에서 찾아져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인민이 원칙적으로 정치의 주체임을 전제한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인민주권 사상에 바탕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
11.26
인공지능(AI) 시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주식 하는 사람은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 관련 주식이 등락을 거듭할 때마다 쾌재를 부르거나 한숨을 쉰다. 인공지능은 이미 의사보다도 더 정확히 병을 진단한다. 작사·작곡도 인간보다 더 뛰어나게 한다고 한다. 머지않아 인간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나은 마라톤 기록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할 것 같다. 전쟁의 승패도 인공지능 드론과 로봇이 좌우할 것이다. 법정에서 판결문이나 변론문도 인공지능 시스템이 도움 정도가 아니라 직접 작성하는 사실상 인공지능 판검사·변호사 시대가 온다.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정당들도 틈날 때마다 인공지능을 들먹인다. 정상외교에서도 인공지능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우리 언론은 하루가 멀다는 듯 인공지능 관련 뉴스 기사 사설 칼럼 등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광풍에 휩쓸려 이것이 가져올 해악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앞장서 말하기를 꺼린다. 인류 역사를
11.24
한국경제가 진퇴양난의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음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한국경제 미래와 관련된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반도체와 조선을 포함, 10대 주력산업 모두 5년 뒤에는 생산성과 경쟁력에서 중국에 뒤처질 것으로 내다봤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 모두에서 중국이 앞서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한국 기업 성공의 보장수표였던 추격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유일한 길은 시장진화의 선두자리를 꿰차는 ‘추월전략’ 뿐이다. 고객맞춤형 생산의 일반화가 그 해답이다. 이를 뒷받침할 필수 혁신 과제가 있다. 시장은 분명하게도 저마다 특색있는 요구를 제시하고 그마저 수시로 변화하는 고객맞춤형 생산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확인되었듯이 사람의 역할을 기계로 대체하는 기계 중심 자동화는 기계적 동작의 반복으로 변화무쌍한 시장 수요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대안은 기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과감하게 기계에 맡기고 사람은 한층 창조적
11.21
#1.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깊은 협곡에서 독도법을 익히던 스위스 병사들이 폭설로 길을 잃었다. 병사들은 며칠을 헤맸다. 식량은 바닥났고 죽음이 몰려왔다. 그때 한 병사가 배낭에서 지도를 발견했다. 그 지도를 본 병사들은 마을 방향으로 무작정 걷고 걸었다. 지도를 희망 삼은 병사들은 목숨을 건졌다. 구조대는 깜짝 놀랐다. 병사들이 생명줄로 삼은 지도는 알프스산맥 아닌 스페인의 피레네산맥 지도였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밝힌 실화(實話)다. 대니얼 교수는 “신중한 선택도 중요하지만 고민만 하다 때를 놓치는 ‘결정장애’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나라의 국정 운영도 마찬가지다. 좌고우면(左顧右眄)만 하면 나라를 망친다. #2. 나르키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출중한 외모를 가진 미소년이다. 어느날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모습이
11.20
전광용의 단편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의 독백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는 학생시절 이후 필자의 뇌리 한켠을 깊이 차지해왔다. 1900년대 중반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해방, 그에 이은 남북분단과 미소점령, 6.25라는 민족상잔(民族相殘)과 같은 동북아의 지정학적 대격변 한가운데를 살았던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보여준 구절이 있을까? 그런데 혹시 ‘일본놈’ ‘로스케’ ‘양키’라는 일견 상스러운 표현들이 많이 불쾌한가? 하지만 필자에게는 이런 표현들 속에서 다른 국가와 민족에 대한 비하나 모욕보다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침해한 국가나 민족에 대한 깊은 원망과 분노가 느껴질 뿐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필자의 외할머니 또한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의 가혹한 수탈을 회상할 때면 필자에게 분한 감정을 표출하면서 일본인들에 대해 “왜(倭)놈”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으셨다. 하지만
11.19
10월 말~11월 초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큰 성과는 미국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던 사고방식이 무너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금 3500억달러를 선불로 내라고 윽박지르는 트럼프를 상대로 밀당을 해서 2000억달러, 10년 할부로 깎은 이재명정부는 골치 아픈 각종 국내 정치 현안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게 돈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이후 세계질서를 규정해 온 세계화라는 말이 용도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본래 세계화라는 말은 시장개방을 비롯해 각종 국가 간의 장벽을 낮추고 사람 재화 문화 지식의 이동이 자유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뜻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탈냉전 시대를 맞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세계질서를 관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11.17
검찰이 대장동 사건에 대해 항소를 포기하면서 정치권은 전쟁 상황으로 돌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과 대북송금 사건은 검찰의 조작 기소라고 주장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항소포기가 대통령의 혐의를 무죄로 만들기 위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신중한 꼼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월 11~13일 실시한 조사(전국1003명 무선가상번호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1.5% )에서 ‘검찰은 항소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그에 대한 유권자의 생각’을 물어본 결과 ‘적절하다’ 29%, ‘적절하지 않다’ 48%였다. 23%는 의견을 유보했다. 연령별로 볼 때 대통령과 여당 지지세가 강한 40·50대에서도 양론이 비슷하게 갈린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뿐만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주는 유권자층은 중도층 수도권 청년층(중수청)이다. 이번 조사에서 중도층은 항소 포기가 적절 29%, 부적절 48%로 나왔고, 수도권은 서울에서
11.14
내년이면 검찰청이 폐지된다. 검사의 수사권은 행정안전부에 신설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공소권은 법무부에 신설되는 공소청이 각각 행사하게 된다. 공소권을 가진 검사가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 범죄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억울한 피해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며, ‘범죄공화국’이라는 선정적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범죄를 누가 수사할지의 문제보다 어떤 자세로 수사할지가 중요하다. 검찰이 지난 78년 동안 많은 사건에서 보여왔던 정치편향적 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공수처 간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범죄혐의를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 활동을 벌이면서 공수처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했다는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럼 형사절차는 누구를 위한 절차일까. 형사절차는 범죄혐의를 밝혀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과정으로서, 범죄자일지라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수사 기소 재판 등의 절차로 구별하고 적법한 절차와 원칙에 따라 진행하
11.13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올해 초 열린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생성 및 추론형 AI 다음에 등장할 AI 물결은 바로 ‘물리적 AI(Physical AI)’라고 선언했다. 이는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을 구동하는 기술로, 단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에서 실제로 행동하는 기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최첨단 기술은 개념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0년대 MIT의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 교수는 복잡한 기호와 규칙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추상적 지능’에 반기를 들며 “지능은 몸을 통해 현실세계와 직접 부딪히며 발현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과학철학 이론의 토대가 됐다. 이 이론이 실제 구현되기 위해서는 수십년에 걸쳐 발전해온 로봇공학과 컴퓨터 비전, 그리고 강화학습 기술이 필요했다. 결정적으로는 최근 급속하게 발전한 거대언어모델이 이들을 하나의
11.12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시위대가 도쿄나 오사카 거리에서 “조선인은 떠나라” “조선인을 죽여라”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거나 밉다기보다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12년 전에 썼던 칼럼의 시작 부분이다. 재특회를 한국 극우단체, 도쿄나 오사카를 서울, 조선인 대신 ‘짱깨’로 바꿔 여기 그대로 다시 써도 될 것 같다. 딱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서였다. 시위대만 벗어나면 좋은 아빠이고 남편이고 친구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성실한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권이 혐중시위 등을 처벌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야권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4일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이 ‘형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다. 특정 국가 국민 인종에 대해 공연히 모욕하면 1년 이하의 징역형,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반의사불법죄와 친고죄 조항
11.10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이슈는 현재로서는 내년 지방선거 승패에 영향을 끼칠 변수가 될 수 있다. 경제이슈가 선거의 승패 요인으로 등장하는 건 정도의 차이지 천고의 진리다. 문재인정부 때 27번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 것이 정권을 보수진영에 넘겨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란 분석이 많다. 지금의 부동산이슈의 기세를 보면 내년 지방선거를 좌우할 수 있는 규정력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이슈가 경제이슈의 성격을 넘어 이렇듯 뜨겁게 오랜 시간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기능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튜브 사과의 기괴한 모습을 남기면서 퇴장한 전 국토교통부 차관은 “돈 모았다가 나중에 사라”면서 정작 자신은 30억원에 가까운 현금을 예금으로 보유하면서 갭 투자의 솜씨로 자신이 수억의 차익을 남기고 판 집에 전세로 눌러 앉는 고도의 테크닉을 보였다. 15억원 주택이 서민이 갖는 아파트 수준이라는 염장지르는 말을 한 여당의 국토위 간사 역시 민심과
11.07
도시를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올바른 비전과 열정을 지닌 단체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런 단체장을 뽑고 제대로 일하도록 감시하고 응원하는 시민의 몫이 더 크다. 40여 년간 도시를 연구하며 세계 곳곳에서 도시를 혁신한 존경스러운 단체장들을 보아왔다. 그런 리더를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세번씩 시장을 역임하면서 브라질 꾸리찌바를 세계 최고의 생태도시로 만든 자이메 레르네르는 건축가 출신이었다. 그는 돈보다 창의력으로 도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었고, 해결의 열쇠로 ‘공동책임의 방정식’을 제시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가정에서 분리수거한 쓰레기를 가져오면 무게를 달아 과일로 바꿔주는 ‘녹색거래’는 시민 참여를 이끌어낸 상징적 사례였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지하철 대신 꾸리찌바는 1974년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린 간선급행버스(BRT)를 세계 최초로 운행했다. 전용차로 위를 막힘없이 달리는 굴절버스와 사전에 요금을 결제하고 대기하는 튜브
11.06
경주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서해 해상에 중국이 무단으로 설치한 구조물이 관심을 받고 있다. 높이 71m에 달하는 거대 철골 구조물은 중국이 흑심을 품은 결과물인 것으로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제기됐고 앞으로 양국이 풀어나가기로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서해 구조물은 그 사안을 들여다 보면 단번의 회담으로 끝날 수 없는 문제다. 한국과 중국이 경계선을 합의하지 않은 서해 잠정조치수역에 설치된 이 구조물을 연어 양식 시설이라고 중국은 주장하고 있지만, 그 진위를 알 길이 없다. 연어 양식의 이득 정도로는 국가간의 분쟁을 야기할 사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들 구조물이 장차 석유 시추 설비로 발전할 것이라는 일부의 추측이 더 설득력이 있다. 중국은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이란과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천연
11.05
외교 수퍼위크가 지나갔다. 전세계가 한국을 주시했고 온 국민이 숨죽이며 지켜봤다.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되었다는 소식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한미 한일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선진국으로서 한국의 격상된 위상을 과시하는 부수효과도 거두었다. 한미 간에 우려했던 관세협상이 타결되었고 더불어 핵추진잠수함 도입에도 합의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정부 간 공식외교의 성과도 크지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 26만장 그래픽처리장치(GPU) 제공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쾌거였다. 우리나라는 이를 계기로 앞으로 ‘피지컬 AI’라고 하는 미래산업에 선도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성공적인 행사를 준비한 우리 정부의 모든 관계자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차분히 지난 성과를 정리하고 후속조치를 준비해야 할 때다. 이번 협상에는 불변의 구조적 요소와 가변적 협상의 영역이 있었다. 초강대국이자 우리의 안
11.03
사법개혁 방안의 하나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도입 법안이 최근에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대법원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의 반발은 과연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가? 재판소원을 논하기 전에 우선 ‘헌법소원’제도에 대해 살펴보자. 헌법소원제도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규정하듯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헌법적 수단이다. 이 ‘공권력’에는 국회의 입법작용, 법원의 사법작용, 행정부의 행정작용이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사법작용의 하나인 법원의 재판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연혁적으로 보면 헌법소원제도에서는 재판소원이 본질이다. 우리가 헌법소원제도를 설계할 때 모델로 삼은 독일에서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헌법소원제도 도입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히틀러 시절 법원의 많은 오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많았다. 그러자 제2차대전 후에 이러
10.31
수개월을 끌어오던 한미 관세 및 안보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과도한 요구를 들고 나와 거센 압박을 해온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이재명 대통령과 우리 협상팀이 끈기 있게 잘 대응해 얻어낸 결과다. 우리 정부 자체평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외신들이 관세협상에서 일본보다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냈고 주요 안보현안인 핵잠수함 건조와 원자력 협력에 한미협력의 물꼬를 텄다며 이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게 돋보인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도 반등의 계기가 마련되고, 국정동력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이 같은 효과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동안에도 이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통해 얻었던 외교적 성과가 국내 정치에서의 실점으로 빛이 바래고 국정지지도 상승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청래 대표체제가 주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