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한의 무력시위, 북한식 평화보장의 이면
새해 벽두부터 북한의 미사일 발사 행보가 이어진다. 그 의도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지난 1년여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연설들을 깊게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8차 당대회부터 최근 미사일 발사 행보까지 일관된 하나의 흐름이 있다.
첫째, 대외적 환경의 인식이다. 김 총비서 연설에서 '더욱 불안정해진 국제정치정세와 주변 환경'에 대한 언급이 늘어났다. 미국의 일방적인 편가르기식 대외정책, 신냉전 구도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에 대한 대처로 '국제 및 지역문제'에 대한 입장과 원칙 수립, 유리한 환경으로의 활용, 정세의 안정적 관리 등을 주문하고 있다.
대미정책에서도 국제정세 고려를 유독 강조한다. 김 총비서는 지난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한의 '대미전략'이 미국의 대북정책 미국정치 국제관계를 엄밀하게 분석한 위에 수립됐다고 밝히고 있다.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미중 전략경쟁과 동북아 군비경쟁, 미국정치 등 불안정한 정세를 대미 접근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군비경쟁 속 '선 핵무기 고도화' 선택
둘째, 선 핵무기 고도화, 후 대미협상이다. 우선 강해지자는 것이다. 국가방위력 강화는 '필수적이고 사활적인 중대국사'다. 핵심은 '전략전술 무기 개발·생산의 가속화'다. 전략무기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까지 핵무기 고도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전략적 목표는 첫번째가 소형경량화된 전술핵무기 개발, 두번째가 초대형 핵탄두 생산, 세번째가 1만5000km 사정거리 내 다양한 전략적 대상에 대한 타격능력 확보다. 정리하면 미국 본토, 미 태평양 함대, 미 제7함대, 주한미군 등에 대한 '핵 선제 및 보복 능력의 고도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5대 핵심과제로 ①극초음속미사일 ②수중 및 지상에서 발사되는 고체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③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④군사정찰위성 ⑤무인정찰기 등을 제시했다. 결국 '핵무기의 불가역적 고도화'가 목표다. 사실상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이렇게 북한만 보면 위협적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대칭적이다. 최근 한국의 무기증강은 괄목할만하다. 스텔스전투기와 고고도무인정찰기 도입, 미사일지침 개정 후 다양한 탄두 개발 및 사거리 제고, 잠수함 전력 강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 전투기 개발, 대공미사일 및 요격체계 강화 등 전력 증강의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김 총비서는 연설 곳곳에서 이에 대해 날선 비난을 하고 있다. 그만큼 북한에게 초조함을 주는 것이다. 남북한 군비경쟁과 동북아 군비경쟁의 그림자가 짙다. 북한은 이 그림자 속에서 '선 핵무기 고도화'를 택한 것이다.
셋째, 미국과 한국에 대한 태도 변화다. 미국에 대한 대내외 매체의 비난이 사라진 지 2년이 넘었다. 간혹 대미담화가 나오긴 하지만 지난해 이후로 거친 언사도 삼간다. 심지어 김 총비서는 한국이나 미국이 주적이 아니라고까지 한다. 최근 몇개월 사이 '대북적대시정책 철회'조차 잘 쓰지 않고 있다. 한국에게도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다. 한국의 대북한 관점, 도발에 대한 피해의식을 버리란 것이다.
대신 등장한 것이 '합법적 자위권'이다. 전략무기 개발이 일반국가의 주권행사로서 합법적 권리라는 것이다. 대미·대남 메시지가 줄고 건조해졌다. 분노와 적대의 언어보단 평화와 안전, 자위권 주장이 늘었다. 선 핵무기 고도화, 주적은 없으며 건드리지만 않으면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방어적 대응, 평화와 안전을 위한 자위권 행사, 표면적으로 '북한식 평화공존'의 선언이다.
전략적 공백기 관리 넘어서는 구상 필요
그러나 이런 태도는 상황관리용 전술적 태도일 수 있다. 5년 내 전략무기 개발 완수를 통해 중장기적으로는 비핵화 협상이 아닌 제한적인 핵군축 협상, 남북한 운용적 군비통제, 일정한 북미관계 개선, 대외교역 확대를 통한 발전 모색 등을 이상적인 목표로 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최대한 무기개발의 합법성을 각인시키기 위한 북한의 무기개발 행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중 및 미러 갈등, 미국의 대북 집중력 저하, 한국의 대선 등 어수선한 국면은 북한에겐 호기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전략적 공백기의 관리를 넘어선 포괄적 대북구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