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독성예측 통한 세이프설계로 안전한 대체물질 개발
종이빨대에서 영원한 화학물질 과불화화합물(PFAS)이 검출됐다. 놀이공원에서 판매한 모자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 유명 스포츠 의류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 모두 최근 뉴스들이다. 안전과 웰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는 화학물질과 제품 안전에 관한 이런 뉴스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관한 접근방식은 최근 큰 전환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피해가 나타나면 그 후에 독성연구를 통해 화학물질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한 다음 규제조치가 취해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수없이 경험하고 난 후 화학물질·제품 관리의 패러다임은 이러한 '뒷북관리'에서 사전규제로 전환됐다. 이제는 피해가 예상되는 화학물질·제품에 대해서는 생산 유통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시키는 조치가 선제적으로 이뤄진다.
어떤 화학물질이 안전성 문제로 시장에서 퇴출되면 그 기능을 대신할 물질, 즉 대체제가 필요하게 된다. 화학물질 규제 강화로 인해 최근 시장에서는 대체제 개발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이렇게 개발된 대체물질이 역시 사용하기 전까지는 안전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사실 유사한 효능을 갖는 화학물질은 유사한 수준의 독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에 널리 사용된 비스페놀A가 환경호르몬으로 규제되면서 비스페놀S나 비스페놀F와 같은 대체물질이 개발됐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대체물질 역시 비스페놀A와 비슷한 독성을 나타낼 수 있음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례는 최근 개발되고 있는 다른 대체물질에서도 다수 발견됐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화학물질을 새로운 물질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사전에 안전성 고려하는 설계가 더 경제적
화학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은 상호연관된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갖고 있다. 이는 원하는 효능을 갖는 동시에 독성이 낮은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대체제 개발의 핵심 과제임을 의미한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세이프설계(Safe and Sustainable by Design, SSbD)는 대체제 개발에 적용가능한 매우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세이프설계는 개발하는 화학물질의 효능을 유지하며, 동시에 인체 건강과 환경에 대한 유해한 영향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세이프설계는 안전한 나노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최초 제안된 개념이나 최근 EU에서는 이를 화학물질과 소재개발 분야 전반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U 공동연구센터(Joint Research Center, JRC)는 연구계 산업계 정부기관 및 NGO가 함께 모여 활용가능한 세이프설계 기준과 구현 메커니즘을 정의하는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2022년에 JRC 보고서로 공개했다.
세이프설계는 얼핏 보면 안전성은 보장하나 경제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화학물질의 규제가 강화되어 이제 기업이 화학물질의 안전성 데이터를 시장 출시 전에 제출해야 하는 '노데이터 노마켓(No Data No Market)' 시대에 세이프설계는 오히려 매우 경제적인 제안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이 모든 개발과정과 상품화를 마치고 출시될 때 이미 상당한 비용이 투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품의 안전성 평가에서 출시 불가 판정을 받는다면 이러한 비용투자는 기업의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이나 기술개발 초기부터 환경과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최대한 안전한 제품을 설계하는 세이프설계 접근법은 오히려 경제적으로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AI 기술 진보로 독성예측도 더 정교해져
세이프설계를 구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화학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기술이다. 독성예측은 화학물질의 물성 및 독성정보에 관해 누적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이루어진다. 데이터과학과 AI 분야의 진보는 더 정교하고 신뢰성 있는 독성예측모델의 개발을 가능케 한다.
최근 기업에서는 AI를 활용해 원하는 최적 효능을 갖는 물질을 찾아내는 스마트물질 개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스마트물질 개발 시 독성예측을 포함해 안전성을 동시에 고려한 개발이 필요하다. 진정한 스마트 물질은 안전한 물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SG가 본격 도입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효능뿐만 아니라 안전성도 함께 고려하는 세이프설계로 안전한 화학물질과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