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한 남성성 변화와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균열
11월 16일은 북한의 어머니날이다. 1961년 김일성이 제1차 전국어머니대회에서 연설을 한 날을 기념해 2012년에 제정됐다. 이날은 개별 어머니에 대한 은혜를 감사하고 기념한다기보다 사회주의체제 유지를 위한 자녀 교양에서 어머니의 역할과 임무를 강조하는 날이면서 북한 사회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인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한 출산과 양육의 중요성을 담론화하는 날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날을 제정한 것은 북한 사회, 특히 여성의 변화 결과다. 북한 당국이 국가의 책임을 개별 여성과 가정에게 전가하는 과정에서 생계와 출산 및 양육 등 이중 삼중의 부담을 떠안은 여성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어머니날을 제정한 것이다. 북한이 어머니날을 제정해 기려야할 만큼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가족의 기능들이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와 다른 북한 여성 모습과 가족의 기능은 남성의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동안 북한에서 '아버지'는 수령과 동일시됐고, 개별 남성은 아버지보다 사회주의 생산에 이바지하는 노동자 역할이 부여됐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거치며 가정 내 역할과 부부관계에서 변화된 남성성 담론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안해를 례절있게" 대하고, "반말을 하거나 거칠게 대하는 것은 … 문명화되지 못한 행동"이라며 남성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또한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남성과 부부의 모습을 '원앙새부부'라고 칭하면서 남성의 가사노동을 권장하는 담론도 나타났다.
최근에는 양육과 자녀교양에 있어서도 남성의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학교수업에 아버지가 참여해야 하고 자녀교양에서도 아버지의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조선녀성'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거세진 북한 남성에 대한 변화 요구
이는 과거 아버지 담론이 부재하던 것과 매우 다른 양상이다. 시장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세대에 대한 교양이 강조되는 만큼 자녀교양에 대한 책임을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까지 부과함으로써 자녀교양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의미도 있겠지만, 과거의 부성이 더 이상 변화한 사회에 조응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코넬(R.W.Connell)이 규정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단순히 말해 그 시대의 이상적 남성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북한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사회주의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신념과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산현장에서는 생산성을 높이며 사상의식적으로는 최고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믿음을 모든 영역에서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남성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성을 둘러싼 물질적 혜택, 사회적 문화적 담론과 남성=생계부양자라는 이데올로기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상황이 되지 못한다. 배급을 통해 형식적으로라도 유지될 수 있었던 남성생계부양자는 더 이상 현실적 상징적 존재가 아니다. 이미 여성들의 공식 비공식 경제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거와 같은 수령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가족 내 남성의 역할이나 부성이 축소되고 노동자, 전사로서만 남성성이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 대가정인 북한 사회에서 유일한 아버지인 수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령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포괄하는 '어버이'로 표상되기는 했지만, 가부장으로서 유일한 존재로 위치되었다. 다시 말해 북한 사회에서 수령 외에 가부장은 존재할 수 없었기에 개별 가정에서 남성을 위치시키는 담론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어버이'로서 수령은 존재하지 않기에 개별 가정의 가부장들이 가족을 책임지고 아버지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어버이' 수령 부재가 만든 균열
결국 기존 북한체제를 유지했던 핵심인 수령의 부재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균열시키는 조건이 됐다. 이는 북한 사회의 위계를 구성했던 축의 하나인 젠더위계의 균열로 이어진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균열은 기존의 가족-국가, 개별 여성 및 남성-국가, 여성-남성, 남성-남성, 여성-여성 등의 관계뿐만 아니라 체제유지를 위해 동원해 온 규범과 담론의 변화를 야기한다. 하기에 물질적 문화적 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남성성의 균열 등은 북한의 사회질서를 흔드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