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하는 과학산책
저렴한 전기요금의 불편한 진실
"전기가 새로운 석유다." 세계에너지위원회 사무총장 크리스토퍼 프레이(Christoph Frei) 박사는 디지털화(Digitalisation)가 에너지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면서 한 말이다. 지난 100년여 세월 동안, 석유가 인류의 번성과 문명의 형성에 미쳤던 바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전기의 역할과 중요성이 얼마나 클까를 상상해볼 수 있다.
전기차로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그런데 사실 전기가 중요한 이유는 에너지 부분의 탈탄소화에 있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은 주로 전기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을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전기화 혹은 전력화(Electrification)라 부른다. 어떻게 바꾸면 될까? 석유로 움직이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로 움직이는 전기차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전기차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전기차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배터리가 우선 먼저 떠오른다. 리튬 니켈 망간 코발트 등 광물을 채굴하고 가공해서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소재를 전기화학적으로 결합시켜 완성된 배터리 셀로 만들고 전기차의 형태에 맞춰 하나의 팩으로 부착한다. 그리고 또다른 중요 부품으로는 자동차 프레임으로 쓰이는 철강재가 있다.
배터리와 철강재만 생각해봐도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단 제조 과정에서도 가급적이면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제철소에서는 고로라고 불리는 큰 용광로에 철광석(Fe2O3)과 석탄을 넣어 1500°C 이상의 고온에서 녹이면, 일산화탄소(CO)가 발생해 철광석(Fe2O3)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반응을 통해 석탄에서 산소를 분리한다. 우리가 석탄을 쓰지 않으려면, 이러한 고로를 완전히 바꿔야 하고 새로운 공정 과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다음 한 문장으로 단순화시켜 보겠다. "최종 수요는 전기로 만든다. 동시에 전기를 깨끗하게 만든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2년전 발표한 '탄소중립로드맵'을 지난 9월 업데이트했는데, 로드맵에서는 2050년 전기를 만드는 발전원에서 90%를 재생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물론, 국가별 상황에 따라 그 비중은 조정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바뀌지 않는 사실은 재생에너지가 전력부분에서 최소 50%가 넘는 주력에너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깨끗한 전기를 만드는 일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설치하면 우리의 과업은 달성될 수 있을까? 아니다. 고압 송전선로와 중저압 배전선로를 의미한 전력망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입지는 자연환경에 좌우되기 때문에 기존의 화석연료 기반 발전소의 입지와 상이하기 때문이다. IEA의 추산에 따르면 2040년까지 8000만km 전력선을 추가, 교체해야 하는데 이 규모는 지금까지 인류가 설치한 전력선의 길이에 버금간다고 한다.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불확실성과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 전력저장장치를 많이 설치해야 한다. 한전은 청정 전기화를 위한 전력망 추가를 위해서는 2036년까지 56.5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한전은 돈이 없다. 지난 8월 대한민국의 전력공급을 담당하는 한전의 누적 빚이 사상 최초로 200조원을 넘어섰다. 하루 이자만 100억이 넘는다고 한다. 적자의 원인은 전기가격보다 전기생산 원가가 더 높기 때문이다. 깨끗한 전기를 만드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기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한전은 천문학적인 적자로 더이상 사업을 유지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전기생산 원가가 올라가면 전기요금 역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깨끗한 전기 생산을 위한 발전, 전력망, 에너지저장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산업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유럽의 배터리회사 노스볼트(northvolt)가 새로운 제조공장을 캐나다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부분은 풍부한 재생에너지로 전기공급이 가능한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전기요금 문제를 "단순히 내 돈에서 얼마가 나가느냐?"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속가능한 사회, 경제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전력산업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의 위기에 처해 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