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유병자 연금보험’으로 연금시장 활성화
영국 연금보험 시장에서 30% 차지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소득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연금보험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개인연금 시장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상품개발이 요구되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유병자 연금보험’이 소비자들의 수요에 부응하고 있어 주목된다.
보험개발원이 최근 낸 ‘새로운 연금보험 시장, 유병자 연금보험’ 이슈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개인연금보험 시장은 매년 축소되고 있는 상황으로, 생명보험사 연금보험의 전체 수입보험료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간 연평균 약 2.8%씩 줄었다.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0%대로 은퇴자의 안정적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한데도 노후 소득 대비에 필요한 연금보험에 대한 관심은 낮은 편이다. 그 이유에 대해 보고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보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연금상품 부족 △자발적 노후자산 형성을 위한 정교한 세제 제도 미흡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고령화와 더불어 ‘유병장수시대’에 진입하면서 고령 유병자의 노후 소득 확보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연금 상품으로 ‘유병자 연금보험’을 소개했다.
고령 유병자는 노후의 생활자금뿐 아니라 의료 시설비용 등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한 만큼 유병자 연금보험은 건강손상 등으로 인해 평균 이하의 기대수명을 가진 피보험자에게 더 많은 연금액을 지급하도록 설계돼 있다. 기존 연금보험이 성별, 연령만을 고려하는 데 비해 유병자연금보험은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연금액을 차등화한 것.
일반 연금보험은 다양한 연령층에서 가입하는 반면 유병자 연금보험은 은퇴기에 있는 고령층이 주로 가입하는 편이다.
유병자 연금시장은 영국이 가장 활성화돼 있는데 1995년 유병자 연금 상품이 영국에 처음 도입된 이후 연금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늘어나며 2020년 30%를 넘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 유병자 연금시장이 활성화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퇴직자산을 종신연금으로 구입하도록 유도한 정부 정책이다.
영국은 퇴직자산 적립액을 일시금으로 인출하면 적립액의 25%에 대해서만 비과세를 적용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55%의 높은 세율을 적용했다.
퇴직자산을 의무적으로 연금화하도록 유도하는 정부 정책은 상대적으로 생존 기간이 짧은 유병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돼 1990년대 초반부터 연금화 의무에 대한 유병자의 불만이 표출되면서 유병자 연금보험 상품이 나오게 됐다.
2015년 4월 종신연금 의무화 제도 폐지를 결정한 이후 영국의 전반적인 개인연금 시장 규모는 축소됐지만 유병자연금 상품의 비중은 크게 변화하지 않고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유병자 종신연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자리잡으면서 수요가 유지된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유병자 연금보험 도입은 국내 개인연금시장 활성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면서 “소비자는 유병자 연금보험의 종신 보장 기능을 바탕으로 장수위험을 회피하고, 안정적인 노후·건강자금 확보를 위해 필요한 연금액 증액 효과를 동시에 누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책 당국은 세제 지원 제도를 개선하고 종신형 연금 선택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크게 확대해 연금 가입자들이 장수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영국 사례처럼 퇴직자산의 연금화를 강력하게 유도하는 정책 등을 통해 은퇴자·고령층의 연금 가입 활성화를 이끌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