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 심사 우대국서 한국 제외
영국 호주 등은 포함 … 여한구 전 통상본부장 “한국을 백색국가로 지정해야”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기업을 인수·합병할 때 영국이나 호주보다 투자안보 심사를 까다롭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한국을 동맹국이라 칭하면서도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백색국가(심사우대국)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25일 관가에 따르면 CFIUS는 외국인의 미국기업 인수합병 등 대미 투자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한다. 심사후 안보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업이 그 문제를 해소한다는 조건으로 승인하거나 거래 자체를 불허할 수 있다.
다만 미국정부는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에 속한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경우 백색국가로 지정해 일부 규정 적용을 면제하는 ‘예외 국가’ 혜택을 주고 있다. 외국인투자의 안보위험을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를 갖췄고 미국과 잘 협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미국의 반(反) 중국 노선을 구축하는 주요 동맹국인 우리나라와 일본 등은 ‘예외 국가’로 지정돼 있지 않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9월 CFIUS가 외국인투자의 국가안보 영향을 평가할 때 △핵심 공급망 △첨단기술 △투자 동향 △사이버보안 △미국인의 개인정보 보호 등 5개 요인을 추가 고려하라고 명령해 투자를 막을 수 있는 사유를 늘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이 개선을 주장하고 나서 주목된다.
여 선임위원은 22일(현지시간) 연구소 홈페이지에 ‘우방국에 국가안보 위협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약화시킨다’는 글을 올리고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자 정상회의 참여국인 한국과 일본을 CFIUS의 백색국가명단에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국가안보라는 개념을 좁고 명확하게 정의해야만 동맹들의 참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은 국내에 초점을 맞춘 제한적인 국가안보 관점에서 벗어나 동맹들과 집단적인 국가안보라는 더 넓고 총체적인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안보 적용범위를 계속 확대하면 미국이 동맹과 파트너에게서 힘들게 얻은 신뢰가 약해지고, 안보와 경제이익 간에 구축한 섬세한 균형을 깨뜨릴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여 선임위원이 한국의 ‘백색국가’ 지정을 주장한 이유는 최근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둘러싼 미국 내 부정적인 기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 4위 철강사 일본제철은 미국의 3대 철강기업 US스틸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J.D. 벤스, 마코 루비오, 조시 홀리는 CFIUS위원장에게 인수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정치권과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동향은 최근 한국기업들이 대미투자를 확대해가는 상황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미국 재무부의 연례 CFIUS 의회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미국기업 인수에 대한 CFIUS 심사는 2020년 2건에서 2021년 13건, 2022년 14건으로 급증했다.
따라서 일본제철이 겪고 있는 일을 삼성전자나 현대차, 포스코가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