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남은 3년, 협치는 선택 아닌 필수
2년 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2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정치 초년생인 윤 대통령은 당선인시절부터 ‘천하’를 쥔 듯 했다. 호기롭게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궁’을 옮기는 건 다른 ‘왕’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나름 ‘자유민주’를 외치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공정과 상식’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변질됐다. 정치적 경쟁자들은 잠재적 범법자로 취급됐다. 문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 정부 인사들과 이재명 등 야당 정치인들이 사정 대상에 올랐고 상당수 기소되거나 여전히 수사선상에 놓여 있다. 공직사회는 검사 출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얼어붙었다. 국내외의 환경은 악화되고 민생은 어려워졌다.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이번 총선에서 확인됐다.
총선 후 더 냉담해진 민심
최근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총선 전보다 더 바닥을 헤매고 있다. 한국갤럽의 5월 2주 데일리오피니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는 24%, 부정 평가는 67%였다.(지난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 무선전화 전화조사원 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총선 전 그나마 30%대에서 버티던 지지율은 총선 후 20%대로 내려앉았다.
취임 2주년 지지율 24%는 제6공화국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국갤럽은 설명했다. 취임 2주년 무렵 국정 지지율은 김대중 전 대통령(49%), 문재인 전 대통령(47%), 이명박 전 대통령(44%), 김영삼 전 대통령(37%), 노무현 전 대통령(33%), 노태우 전 대통령(28%), 윤 대통령(24%) 순이었다. 윤 대통령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냉담했다.
2년 전 이미 정치권과 대부분의 언론은 ‘여소야대’ 상황에 주목했다. ‘거야 민주당’과의 협치를 필수과제로 꼽았고 윤 대통령이 이를 실현하지 않으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란 우려를 내놓았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제 임기 내내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말이 좋아 협치이지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일부를 내놓아야 한다. 협치의 출발이 양보이고 양보는 힘을 가진 집권세력이 먼저 시작하는 게 상식이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
양보에는 당연히 아픔이 따른다. 그게 정치적인 것이든 주변과 관련되든 각오해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합당을 통해 ‘원수 같은’ 김영삼을 끌여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의 상징인 김종필 자민련과 연합을 통해 상황을 타개했다. ‘야합’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통령 권력을 나눴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대연정’을 제안했다. 이들은 가족과 측근에 대한 아픈 결단도 내려야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에게서는 아직 이런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특검 등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이다. 오히려 “내 갈 길 가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등 그동안 정치권과 세간에서 요구하던 것을 받아들였으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대해 “여러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첫 고비는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넘긴 것 같다”며 “대부분의 현안에 대해 질문이 나왔고 대통령이 상세히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다.
‘불행한 국민’ 안만들려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윤 대통령 역시 10일 보란듯이 거리로 나섰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청계천을 걸으며 시민들과 ‘소통’했다. 재래시장에서는 ‘다정한 포즈’로 노점 노인의 손을 잡았다. 김치찌개를 먹으며 음식값도 물어봤다. 식당 주인은 2년 전 8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올랐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인건비와 식자재 가격이 올라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대파 소동’은 재연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해답은 없고 답답함만 느껴진다. 윤 대통령이 앞으로도 현장을 방문하고 토론을 계속한다니 정말 민생을 어루만지고 진정으로 소통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남은 임기 3년은 긴 시간이다. 야당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지만 국정 운영의 일차적 책임은 누가 뭐래도 윤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 협치는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얘기다. 차제에 윤 대통령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불행한 대통령’은 참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한 ‘불행한 국민’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차염진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