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위기관리 나선 서울시

2024-05-16 13:00:04 게재

공사비 급등에 속도 느려진 정비사업

서울시 핵심사업 대다수 건설경기 영향

집값 안정 위해 주택공급 시그널 유지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추진현황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기로 한 것은 정비사업 전반에 위기가 감지되고 있어서다. 시민들에게 재개발·재건축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다 깊은 속내는 급격하게 떨어진 정비사업 속도를 올려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데 있다(표 참조).

현재 서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들은 어디나 할 것 없이 공사비 급등으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다. 공사비 문제는 재개발·재건축 시장 전반을 위협하는 핵심적 장애물이다. 시공사는 기존 계약금액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공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조합은 추가 분담금이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솟으면 재건축에 나설 이유가 사라진다.

강북 모 재건축 추진단지는 아파트 가격이 4억원인데 재건축 추가 분담금이 5억원에 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재건축은 이주와 세살이 등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 하는건데 그 이유가 사라지면 사업 추진 동기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일부 사업장에서 ‘이렇게 비싸게 지을거면 차라리 더 버티는 게 나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체도, 조합도 재건축 동력 상실 = 서울시 입장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중요한 것은 이 사업이 오세훈 시장의 핵심 공약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은 새로 개발할 주택 부지가 부족해 재개발·재건축이 아니면 신규 주택을 공급할 방법이 없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관리돼야 하는 것은 이 사업이 주택공급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주택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전 서울시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시절, 서울 집값 수직상승의 주원인 중 하나가 주택 공급 부족”이라며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주택공급 물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장의 불안함이 가중되고 이는 집값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이번 공개 항목에 향후 정비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주택 숫자를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비사업 추진단계별 또는 개발 유형별 주택 공급 규모를 상세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정비사업 속도 저하로 또다시 공급 물량이 축소될 수 있다는 주택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신중하게'에서 '신속하게'로 전환=

이로써 서울시에 다시 복귀한 뒤 시장의 기대와 달리 ‘신속 보다 신중’을 강조했던 오세훈 시장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기조는 다시 ‘신속하게’ 쪽으로 전환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취임 초 오 시장은 자신을 서울시장으로 다시 등판하게 만들었던 부동산 표심과 거리를 두면서 신중한 재건축을 추진했다. 가열된 부동산 시장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정세 불안, 경기 불황, 고금리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원자재값이 치솟고 건설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어서다.

시가 전수조사 등 번거로운 과정에도 불구하고 정비사업 현황 공개에 나선 것은 또다른 속내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건설비 급등으로 인한 사업 위축이 재개발·재건축 부문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시가 추진하는 대관람차 사업, 그레이트 한강, 용산국제업무지구 재추진 등은 모두 건설중심의 대형 개발사업”이라면서 “이 와중에 오 시장의 핵심사업인 재개발·재건축마저 위축되면 임기 내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사업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신속하게와 신중하게를 모두 관통하는 오 시장의 주택시장 운영 기조는 ‘서울 집값 안정’이며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초점을 달리한 것일 뿐 핵심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다”면서 “지지층이 몰려 있는 강남3구의 거센 요구에도 불구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연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조치도 궁극적으로는 집값 안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이제형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