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 순한 먼지들의 책방

‘태초의 품속’ 생명의 집에 깃든 시

2024-02-20 13:00:03 게재

정우영/창비 1만원
정우영 시인의 신작 시집 ‘순한 먼지들의 책방’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됐다. ‘죽음의 의미를 묻는 독특한 시집’으로 주목받았던 ‘활에 기대다’(반걸음)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5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삶과 죽음, 필연과 우연, 있음과 없음, 세계 안과 세계 밖 같은 궁극의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사색의 세계를 펼친다.

시는 차분하고 평온하다. 눈과 귀가 순해지는 듯하고 ‘누군가 목덜미를 가만가만 쓰다듬어주는’ 듯한 따듯한 위무의 손길이 느껴진다. 굴곡진 삶의 애잔한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과 귀는 언제나 낮고 작은 것들에게 열려 있고 몸과 마음은 작고 여린 것들에게로 기울어 있다.

또한 시인은 국가 폭력에 무참히 희생된 채 ‘무관심에 밟히고 바스러져 밀려나는 백골들’과 ‘총보다 무섭다는 빨갱이라는 손가락질, 그 철벽’ 같은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맥없이 스러져간 안타까운 영혼들의 넋을 기리며 왜곡된 역사의 진실과 아픔을 되새겨본다.

나아가 자본의 탐욕으로 인한 기후위기와 사막에 폭설이 쏟아지는 전지구적 재앙, ‘소와 돼지 수백만마리가 산 채로 땅속에 묻’히고 ‘닭과 오리 수천만마리도 땅 밑으로 끌려 들어’가는 생명 파괴의 참혹한 현장을 직시하며 살아 있는 것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비극적 현실을 잊지 않는다.

1989년 ‘민중시’를 통해 문단에 나온 이후 문예운동의 중심에 서서 헌신해온 시인은 민중문학과 노동문학 계열의 시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시인은 민중이나 노동에 앞서 자연의 숭고함과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천생의 서정 시인이다. 이번 시집은 그의 시가 하나의 전환점을 지나 ‘태초의 품속’ 같은 자연의 집, 생명의 집에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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