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지정학·고부채에 금값 고공행진

2024-04-16 13:00:05 게재

FT 라나 포루하

금값은 최근 미국의 예상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지정학 갈등, 오는 11월 미 대선, 미국 통화정책과 시장향방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불안감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요소는 금값이 급등하는 예측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라나 포루하는 “이번 금값 상승배경에는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더 깊고 장기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인플레이션이다. 앞으로 여러 분기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든 오랫동안 ‘더 높은 인플레이션’의 시기를 맞이할 전망이다. 포루하는 “기술 주도의 생산성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제외하면 현재로서는 인플레이션을 제외한 거시적 추세를 생각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재정부양책부터 각국의 자체적인 공급망 건설에 따른 중복성 증가, 청정에너지 전환, 경제선진국들의 재산업화 등에 필요한 투자 등 글로벌 경제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고령화된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건강과 시간, 충분한 소비여력이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금은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현 상황의 안정성이 걱정될 때 금을 찾기도 한다. 금은 수십년 동안 약세를 보이다가 현재처럼 세계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할 때 상승세를 탄다.

포루하는 “서방이 만든 자유시장 규칙을 신흥국들이 따를 것으로 기대했던 워싱턴 컨센서스, 전후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가 끝났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서방과 중국 간의 무역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달러의 무기화로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금융패권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미국채를 팔고 금을 사들이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중동발 긴장 고조도 금값을 더 밀어올릴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많은 분석가들도 이러한 상황변화로 금값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5가지 트렌드로 보는 세계경제’ 저자인 BNP 파리바 포티스의 수석 전략가 필립 기젤스는 현재 1온스당 2374달러인 금값이 멀지 않아 400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다. 기젤스는 “이는 단순한 금리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비해 헤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학자 브래드 세서는 최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 금융자산 보유액이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당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물론 미국채를 줄여 확보한 자금이 모두 금 매입으로 들어간 건 아니다. 하지만 이는 변화하는 세상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커런시 리서치 어소시에이츠’의 최근 보고서는 “중국의 금 매입과 미국채 매도는 1960년대 후반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유럽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기 시작한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1968~1982년의 금값은 다우지수와 달러 모두에 대해 상승했던 마지막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상승의 시작이었다. 1971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금본위제에서 탈퇴하면서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환율변동으로부터 미국산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비공식적인 달러 평가절하 조치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선에 성공하면 수입품 전반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는 또 강달러가 해외에서 활약하는 미국 제조업체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중국의 덤핑에 항의하기 위해 최근 베이징을 방문했다.

포루하는 “바이든이나 트럼프나 미국 산업계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달러가치가 하락하리라는 점은 예상가능하다. 이 역시 금값에 호재가 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금값이 강세를 보이는 마지막 이유는 미국의 부채와 재정적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의회예산국은 올해 말 미국 연방부채가 GDP의 99%에 달하고 2054년 172%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미 정부의 부채부담을 일부 줄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에 따라 고금리 장기화가 현실화되면 국채값 하락, 세수 감소 등으로 미정부의 재정은 더욱 지속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린다.

투자 뉴스레터인 ‘나무를 위한 숲’ 발행자이자 금 강세론자인 루크 그로멘은 “미국 예산에서 줄일 수 있는 것은 이자 지급액뿐이다. 복지 혜택과 국방비 삭감은 정치적으로 실행가능하지 않다”며 “결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정책방향을 바꿔 금리를 낮춰야 미국이 부채상승 소용돌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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