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주식시장, 유럽 각국 선망의 대상

2024-04-19 13:00:22 게재

FT “풍부하고 적극적인 개인·기관 투자자들” … 유럽 자본시장 비관론 역주행

지난해 4월 약 60명의 유럽연합(EU) 관리들이 실사단을 꾸려 스웨덴 증권거래소인 ‘나스닥 스톡홀름(Nasdaq Stockholm)’을 방문했다. 나스닥 스톡홀름 경영진은 ‘자본시장 생태계’에 관한 2시간 동안의 설명회에서 수많은 국내외 중소기업들이 스웨덴 증시에 상장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1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많은 유럽 국가들이 기업공개(IPO)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주식거래량 감소로 고민하고 있다. 반면 스웨덴은 증시 규모에 비해 거대한 투자자 군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번성하는 자본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도 스웨덴 증시에 상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자본시장 싱크탱크인 ‘뉴파이낸셜(New Financial)’의 공동설립자 윌리엄 라이트는 “스웨덴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깊은 규모의 자본시장을 보유하고 있다”며 “스웨덴은 자본시장 생태게가 필요하며, 이를 언제나 장려해야 한다는 점을 미리 깨달은 나라”라고 말했다.

유럽 각국의 금융시장 정책 입안자들은 기업상장 규정과 기업 창업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변경하고 연기금과 개인투자자의 국내주식 투자를 장려함으로써 자국의 주식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스웨덴은 이미 수년, 심지어 수십년 전 이러한 조치 중 상당수를 도입해 다른 국가들을 많이 앞서 있다.

자본시장 정보제공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스웨덴에서는 501개의 기업이 상장했다. 이는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의 기업공개 건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스웨덴은 같은 기간 765개 기업상장을 기록한 영국에 이은 두번째였다.

투자비중 높고 예금비중 낮아

물론 스웨덴의 IPO 자금조달 규모는 미국보다 훨씬 낮다. 스웨덴 음악서비스 제공기업 스포티파이(Spotify), 음료제조업체 오틀리(Oatly) 같은 일부 대기업들은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스웨덴은 중소규모 기업 상장을 장려하는 데 큰 성공을 거뒀다.

스웨덴 투자은행이자 자산운용사인 ‘카네기그룹’의 최고경영자 토니 엘로프손은 “국가경제 규모와 증권거래소 규모에 비해 스웨덴의 기업공개시장은 확실히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활발하다. 중소기업들의 상장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나스닥 스톡홀름 사장 아담 코스티알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약 90%가 10억달러 미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엘로프손 CEO는 “매우 적극적인 프라이빗뱅킹 투자자, 기업가, 기관투자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중심이 된 중소형 규모의 투자커뮤니티까지 모두 끌어들이고 있는 스웨덴의 투자문화가 주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대형 투자자들 중에서도 스웨덴연기금은 오랫동안 국내주식을 소유해왔다. 스웨덴의 4대 퇴직연금제도는 최근 수년간 국내주식 보유량을 늘리거나 유지했다. 반면 영국의 경우 연기금의 국내주식 보유 비중이 4% 수준으로 급감했다. 스웨덴 보험회사들의 국내주식 보유량도 EU에서 가장 높다.

스톡홀름 소재 로펌 ‘화이트 앤 케이스’의 파트너변호사인 존 티먼에 따르면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IPO에서 이른바 ‘코너스톤 투자자’ 역할을 수행해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과 다른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준다. 코너스톤 투자자는 IPO에 앞서 공모가 확정 전 일부 지분을 배정받는다. 티먼은 “모든 성공적인 IPO에는 어느 정도 수준의 코너스톤 투자자가 참여했다”며 “견고한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심리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FT는 “개인 투자자들도 최근 수십년 동안의 다양한 개혁에 힘입어 스웨덴 주식을 많이 매수하고 있다”며 “스웨덴 가계의 경우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이 가장 높고 은행예금 보유 비중은 가장 낮다. 그리고 국민의 금융 이해도는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보다 높다”고 전했다.

스웨덴정부는 1984년 일반인들이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인 ‘알레만스스파(Allemansspar)’를 도입했다. 예금을 투자로 대체하기 위한 공공저축프로그램으로 세금절약형펀드와 유사하다. 소득세는 부과되지만 수익은 전액 비과세다. 이 덕분에 펀드저축이 대세로 자라잡았다. 1990년 기준 170만개 계좌가 개설돼 국내주식 중심의 중소형주펀드 출시를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

스웨덴은행 ‘SEB’의 주식시장 책임자인 칼 로제니우스는 “그같은 펀드는 유럽 다른 국가들보다 10~20년 먼저 등장했다”며 “스웨덴 대규모 펀드들이 국내 중소형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많은 투자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법이 바뀌면서 국민들은 연금에 할당된 금액의 2.5%를 자신이 선택한 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대대적인 홍보캠페인을 통해 확산됐다. 2012년에는 개인이 보유자산을 신고하거나 양도소득세나 배당세를 걱정할 필요 없이 투자할 수 있는 저축계좌인 ‘ISK’를 도입했다. 대신 계좌의 총가치에 세금이 부과된다. 올해의 경우 약 1%의 세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스웨덴 주주NGO그룹인 ‘악티에스파라나(Aktiespararna)’의 최고경영자 요아킴 올손에 따르면 일부 자선단체들은 16~18세 사이의 청소년들에게 주식과 뮤추얼펀드의 차이점 등 금융과 관련된 교육을 하기 위해 학교에 직접 찾아간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자국민의 주식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달 영국기업에 투자하는 이들에게 5000파운드의 비과세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재무장관 브뤼노 르메르는 “EU 개혁입법의 느린 속도에 좌절감을 느낀 일부 국가들끼리 단독으로 새로운 투자상품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유럽 펀드·자산운용협회 회장 산드로 피에리는 “진정한 핵심사안은 직간접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참여를 장려해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스웨덴은 절대적인 모범국가”라고 말했다.

나스닥 스톡홀름은 자국을 넘어 독일 등 다른 국가의 중소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스닥 스톡홀름 코스티알 사장은 “독일 등의 IPO 시장은 중소기업들에 대한 서비스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잘 짜여진 자본시장 생태계

다국적 로펌 '베이커 맥켄지'의 스웨덴법인 파트너변호사인 요아킴 팔크너는 “독일의 경우 소규모 기업의 증시상장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인프라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독일 투자자들은 역사적으로 주식보다 채권을 선호해왔기 때문에 기업공개를 통한 자본조달이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의료장비 제조업체인 PMD솔루션스의 창업자 마일스 머레이는 올해 초 스웨덴 증시에 상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머레이 창업자는 “스웨덴을 택한 것은 비슷한 의료관련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증권거래소인 '유로넥스트 더블린'에 상장하는 것보다 애널리스트들이 우리 기업의 가치를 더 쉽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투자자들을 만나기 쉬운 점도 큰 도움이 됐다. 머레이는 “우리는 이익이 나기 전의 외국기업이었다. 하지만 가장 작은 기업들도 대형 연기금과 미팅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잘 짜여진 스웨덴의 자본시장 생태계는 주식시장 수익률로 이어졌다. 스웨덴 주요 지수는 지난 10년 동안 85% 상승했다. 반면 유로스톡스600 지수는 49%, 런던의 FTSE100 지수는 17% 상승에 그쳤다. 이러한 점 역시 스웨덴 중소기업들에게 국내증시에 남도록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됐다.

카네기그룹의 엘로프손 CEO는 “스웨덴 속담에 ‘물을 얻기 위해 강을 건너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있다”며 스웨덴 자본시장의 매력적인 접근성을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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