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졌는지에는 무관심…자리다툼에만 분주한 여당

2024-04-25 13:00:21 게재

총선 뒤 비대위·전대 논의만 무성 … 25일 첫 패인 분석 토론회

새 대표·원내대표 또 ‘친윤’ 논쟁 … 총리 인선 놓고 ‘윤심’ 눈치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참패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왜 졌는지, 무엇을 바꾸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신 비대위 성격과 전당대회 시기를 둘러싼 갑론을박만 벌어졌다. 총선 당선인들은 참패 대책보다 자신들이 차지할 ‘자리’에만 관심이 많기 때문으로 읽힌다. 벌써부터 당 대표와 원내대표, 총리 등을 놓고 물밑 신경전이 뜨거운 모습이다.

이철규 의원, 영입인재 낙천자들과 조찬모임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이 25일 영입인재 낙천자들과 조찬모임을 하기 위해 여의도 한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왼쪽은 조정훈 의원.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25일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22대 총선이 남긴 과제들’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여당이 충격적인 총선 참패 이후 보름이 지나서야 패인을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그동안 여당은 패인을 둘러싼 공론화를 애써 외면했다. 참패 책임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주류를 향할 게 뻔하기 때문으로 읽힌다. 비수도권에서 재선에 성공한 의원은 24일 “(윤) 대통령 책임인 건 상식의 문제 아니냐. 대통령이 총선 한 달 앞두고 20~30명 (당선을) 날렸다. 뻔한 팩트를 놓고 아직 인사권 가진 대통령 눈치 보느라 다들 침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은 패인 분석과 혁신 논의 대신 보름동안 비대위 성격과 전대 시기만 놓고 시간을 보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수차례 간담회를 거쳐 실무형 비대위와 조기 전대로 가닥을 잡았다. 두 달짜리 비대위를 거쳐 새 지도부를 뽑자는 것이다. 패인 분석과 혁신 논의는 두 달 뒤 선출된 새 지도부에게 맡기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새 지도부가 선출될 두 달 동안 여당은 자리다툼에만 몰두할 분위기다. 여당은 내달 3일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을 거쳐 새 총리를 지명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일부 수석급 인사에 대한 인사도 앞두고 있다. 새 대표는 6월말~7월초쯤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 당선자와 낙선자들은 제각각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향한 물밑 신경전에 분주한 모습이다. 원내대표를 놓고는 3·4선 중진들의 눈치작전이 벌써부터 치열하다. ‘찐윤’ 이철규 의원은 연일 당선자를 비롯한 당내 인사와의 만남에 분주하다. ‘윤심’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아야 여당이 혼란 없이 여소야대 국회를 돌파할 수 있다는 친윤쪽 논리가 강조되지만, 일각에서는 “대통령 때문에 총선에서 참패했는데 ‘찐윤’ 원내대표를 세우는 게 말이 되냐”(수도권 낙선자)고 반발한다.

당 대표에는 나경원 당선자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안철수·윤상현·김태호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벌써부터 대통령실과 친윤에서 ‘한동훈 대표’를 막기 위해 다른 비윤 후보를 밀 것이란 시나리오가 나돈다. 대통령실과 친윤이 총선 결과를 책임지기보다 총선 이후에도 당을 ‘윤심’ 영향력 아래 두려는 마음만 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이 낙점할 인사에도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총리 물망에 오른 중진급 인사들은 총선 책임론에는 입 닫은 채 자신의 발탁을 위한 여론전에만 적극적인 모습이다. 윤 대통령 눈치만 보는 것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으로 결론 난 비서실장 인선을 놓고도 중진들간 신경전이 치열했다.

결과적으로 여당은 총선 패인 분석은 뒷전인 채 다들 자리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 광진을에서 낙선한 오신환 전 의원은 24일 내일신문 통화에서 “총선 참패를 위기상황이라고 인식한다면 총선에서 왜 참패했는지, 당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그런 고민들을 혁신비대위에서 논의하고 그 다음에 전대로 넘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여당 원외 조직위원장들도 지난 22일 혁신비대위 전환을 건의했지만, 여당은 실무비대위를 통한 조기 전대를 택했다. 다른 중진의원도 이날 “지도부를 빨리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건 당이 왜 졌고 당이 어떻게 바뀌어야할지를 논의하는 것이다. 총선에서 참패해놓고 다들 자리에만 관심을 두면 국민이 어떻게 보겠냐”고 우려했다. 앞서 비수도권 재선의원은 “이런 식으로 대표 뽑고 원내대표 선출해봤자, 1년 넘기기 어렵다. 이렇게 엉터리로 총선 수습하면 2년 뒤 지방선거(2026년)와 대선(2027년), 총선(2028년)에서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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