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1
2026
위 그림은 남극 상공의 오존 농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통해 과학적 경고가 오존 파괴 물질 사용의 단계적 퇴출이라는 국제적 행동으로 이어진 보기 드문 사례를 만들었다. 또한 오존층 파괴의 실존적 위험을 대중에게 알려 인류 공동체 의식을 발현시키고, 오존층의 점진적 회복이라는 국제사회 합의를 이끌어낸 상징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2024년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우리 사회는 개정을 둘러싼 논의를 이어왔고 최근 정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제도의 구체적 설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논점의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는 단순히 과학 부정론 때문은 아니다. 탄소중립은 사회 전체의 전환을 요구해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해야하는 고난도 과제다. 더구나 감축의 총량적 효율만이 아니라 비용 부담의 분배 윤리까지 함께 다루어야 한다. 환경정책의 성공모델인 몬트리올 의정서에서
04.14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질병관리청 4개 정부 부처가 공동으로 추진중인 국가통합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은 한국인의 건강정보와 유전체를 비롯한 대규모 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한 인프라 사업이다. DNA와 같은 단순하지만 다양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생체 분자부터, 실제 환자의 건강과 질환상태를 포함한 복잡하고 해석이 어려운 정보까지 한번에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쌓인 대규모 데이터는 인공지능(AI)을 통해 학습될 수 있다. 이러한 AI바이오를 고도화함으로써 질환이 생기고 건강상태가 바뀌는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생체분자를 조절해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여전히 다양한 문제가 산재해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인체에서 유래한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측면에서 본 사업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만, 그로 인한 제한조건도 까다롭다는 문제도 지니고 있다. 요컨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
04.07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물 분자 하나를 내보내며 결합한 이당류다. 그전까지 설탕은 귀족의 빛나는 사치품이었다. 요리사는 당도를 혀로 가늠했고, 상인은 원산지와 정제 정도에 따라 제각각인 품질을 눈으로 쳤다. 사탕수수즙에서 불순물을 걷어내고 수분을 날리면 고순도의 하얀 결정이 남는다. 맛이 표준화되고 계량이 쉬워지고 용해도가 일정해졌다. 하얀 결정은 단지 단맛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물질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근대 식품산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그 문을 누군가는 처음으로 열어야 했다. 그 문을 연 사람이 노버트 릴뢰(Norbert Rillieux)다. 1806년 뉴올리언스에서 백인 농장주 아버지와 흑인 노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유 유색인이라는 어중간한 신분이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돌아온 그가 개발한 다중 효용 증발기는 증발기 여러 대를 연결해 한 단계에서 나온 열기가 다음 단계를 달구게 했다.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되자 석탄 소비량은 획기적으
03.31
춘천에 사는 필자는 주말에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곤 한다. 실개천과 같은 자연도 좋지만 낯선 골목길을 걷는 것도 즐긴다. 거닐다 보면 원룸건물들 위로 솟아오른 태양전지판을 종종 마주친다. 태양전지를 지지하는 철 구조물도 휑한 느낌이지만 그 위의 검푸른 태양전지판의 칙칙한 모습은 정다운 골목길 속 이방인과 같다. 이를 보며 가끔 태양전지를 건물을 멋지게 장식하는 건축재로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빛을 흡수해 전기를 만드는 실리콘(Si) 태양전지가 암청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빛의 반사를 방지하는 막이 올라간 실리콘 태양전지는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을 대부분 흡수하고 약간의 푸른색만 반사하기 때문이다. 암청색 태양전지판이 건물의 외관을 온통 둘러싼 모습을 상상하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대신 다양한 색상을 띠는 태양전지판을 개발해 건축외장재로 쓰면 어떨까? 표면이 색을 보이려면 입사하는 태양빛을 모두 흡수하지 않고 일부를 반사해야 한다. 가령 가시
03.24
영화 ‘변산’에는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다”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카메라가 잡은 앵글이나 줄거리를 쫓다 보면 ‘과연 그러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머니의 고향이고 지금도 그곳에 외가를 둔 필자는 그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파도가 긴 시간을 들여 층층이 깎아 만든 채석강 해안절벽을 보고 휘둥그레진 눈이 내변산의 웅숭깊은 숲과 계곡에서 한 번 더 놀라는 곳이 변산이다. 가난할지는 모르겠으나 노을 말고도 보여줄 것은 이곳에도 부지기수로 많다. 느른한 여름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솔가리를 흔들어 피리소리를 내는 원두막에 서서 서해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문풍지를 때리는 눈바람에 들창문을 열고 이른 새벽을 맞은 적이 있는가? 이는 어린 필자가 변산 외가에 머무는 동안 겪은 일이다. 변산은 산과 바다가 너나들이로 접한 곳이다. 어디를 가도 바다가 보이고 산이 둘러섰다. 그 덕분에 한반도의 서쪽 무릎께 자리한 이곳은 온난다습한
03.17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고 확장하는 정교한 메커니즘은 의외로 아이들의 놀이에서 발견된다. 털실 한줄을 가져와 양 끝을 묶고 팽팽하게 당겨보자. 양손에 실을 한번씩 더 감아 고리를 만든다. 가운뎃손가락을 반대편 실을 차례로 떠내면 ‘출렁다리’ 모양이 만들어진다. 실뜨기(string figures) 놀이의 시작이다. 이 놀이는 실 한줄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 묘미다. 그런데 출렁다리 다음에 또 다른 모양을 만들기가 무척 어렵다. 이 실뜨기 놀이의 전략은 맞은편에 친구를 불러 앉히는 것이다. “자, 받아봐!” 손을 내밀면 친구가 실의 어느 지점을 낚아채느냐에 따라 사다리가 되고 다이아몬드가 된다. 실은 내 손을 떠나 친구의 손으로 옮겨가며 쉴 새 없이 변모한다. 이 역동적인 주고받기 놀이로 과학기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함께 생각하기(thinking-with)’를 설명한다. 지식은 개인의 머릿속에 고립되지 않으면서 서로 주고받으며 엮이고 비틀어지며 비로소 진화한다. 이 과정
03.10
늦은 밤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컴퓨터 화면에는 복잡한 계산 결과가 떠 있고 학생들은 그 앞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옆에 둔 채 코드를 다시 돌려본다. 문제 하나를 붙잡고 몇 주, 때로는 몇 달을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다. 과학과 공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밤은 일상의 한 장면이다. 필자 역시 비슷한 밤들을 보냈다. 과학과 공학은 그렇게 사람의 시간을 먹으며 성장하는 분야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때로는 반복적인 계산과 실험의 형태로, 때로는 오랜 고민과 실패의 형태로 쌓여 간다. 이처럼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과학과 공학은 오랫동안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기도 했다.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보다 그 분야 자체가 좋아서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 말이다. 과학이 좋고 공학이 좋아서, 혹은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03.03
새해 들어 반도체로 온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폭등하면서 메모리 기업들의 이익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 전망에 주가가 끝없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예상치 못한 놀라운 성능을 나타내면서 글로벌 AI 기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데 학습과 추론용 데이터센터 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야기된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부족이 그 원인이다. 국내외 첨단 메모리업체가 각광받는 이유는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생산하는 GPU 연산코어와 메모리 사이의 데이터 이동속도를 높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독점 공급과 수요 폭발 때문이다. 일반적인 D램 메모리보다 데이터를 보내는 전선 수를 대폭 늘려 통신속도를 높인 것이 HBM이다. 물론 HBM을 구성하는 D램 메모리 소자의 속도도 빨라졌는데 컴퓨터의 심장박동과도 같은 클럭 주파수가 올라가는 등의 개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선 수를 늘리는 것도 무한히 계속할 수 없고 클럭 주파수도 계속 올릴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반
02.24
‘모든 학문 분야는 소중하다.’ 오늘 글은 이 당연한 문장으로 시작하려 한다. 다양성은 생물학적 생태계뿐만 아니라 대학 기업, 그리고 사회 전반의 회복탄력성을 지탱하는 핵심동력이다. 모든 연구자가 자신의 분야에 투자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절박함에는 저마다의 타당한 논리가 있다. 클라크 커(Clark Kerr)가 그의 저서 ‘대학의 쓰임새’에서 역설했듯 현대의 연구는 대규모 자본 투입을 전제로 하며 미국식 연구 중심 대학이나 유럽의 거대 연구소들이 그 모델을 선도해왔다. 하지만 자본의 총량이 곧 혁신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규모의 경제라는 신화에 균열을 낸 사례들은 이미 도처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도의 화성 탐사선 ‘망갈리안(Mangalyaan)’이다. 2014년 인도는 미국 NASA 예산의 1/9 수준인 단돈 1000억원으로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반도체 설계의 강자 ARM역시 좋은 예다. 인텔이라는 거인이 제조 시설(Fab)에 수십조 원을 쏟아부으며
02.10
제4차 국가생명연구자원 관리·활용 기본계획이 공개됐다. AI바이오를 위한 핵심 인프라로서 생명연구자원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국내 연구진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 대상 연구 데이터를 한 데 모아 정리하고, 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기반 분석 플랫폼을 구축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소규모 데이터에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대규모 데이터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생명이라는 복잡한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질 것이다. 예컨대 사람의 데이터로부터 질환의 원인과 대책을 쉽게 도출하고, 동식물의 데이터로부터 신약 후보 물질을 더 쉽게 발굴하는 것을 가능케 할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바이오스테이션(K-BDS)은 이러한 데이터 등록과 분석 플랫폼 구축을 위한 핵심 인프라다. 이는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에서 운영 중인 바이오 데이터센터에 준하는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국내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고속으로 등록할
02.03
지난 1월 7일, 미국 보건복지부와 농무부는 새로운 ‘식생활지침(DGA, Dietary guidelines for Americans) 2025–2030’을 발표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보건복지부 장관과 브룩 롤린스(Brooke L. Rollins) 농무부 장관이 공개한 식이 지침 슬로건은 단순했다. “Eat Real Food, 진짜 음식을 먹어라.” 정부는 거꾸로 된 새로운 식품 피라미드를 내놓았다. 위쪽에는 고기와 유제품, 지방이 자리 잡았고, 곡류는 아래로 내려갔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는 기존 ‘곡류 기저’ 피라미드와 상징적으로 결별하는 선언이었다. 새 지침의 핵심은 단백질 우선이다. 성인 하루 단백질 섭취량을 체중 1kg당 0.8g에서 1.2~1.6g으로 대폭 상향했다. 매 끼니마다 고품질 단백질을 먹으라고 권한다. 흥미로운 건 김치가 이 지침에 명시됐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서를 자세히 읽으면 고개가 갸웃
01.27
‘인공조명으로 밝아진 야간은 생태계의 탄소저장 능력을 줄인다!’ 최근 영국의 한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의 핵심 결과다. 연구팀이 유럽과 북미의 도시 외곽 지역에 대한 위성 데이터와 지상 데이터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 빛 공해가 생태계 호흡을 강화해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늘린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간 빛 공해가 개별 생물종의 군집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다수 있었지만 이처럼 탄소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처음이다. 빛 공해란 ‘야간에 광자의 체적 농도가 자연상태에서 예상되는 값보다 증가한 상태’를 말한다. 현재 전세계 인구의 약 80%가 빛 공해에 노출되어 있고, 유럽과 미국에서 이 비율은 99%를 넘는다. 200여편의 문헌을 메타 분석한 한 연구에 의하면 지구 표면의 거의 절반 정도가 밤에 인공 빛의 영향권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도시의 건물 조명, 경관/광고 조명, 가로등이 빛 공해의 원인이라 간주되지만 이 연구에 의하면 야간 인공광의 절반 이상
01.20
해마다 겨울이면 우리 집 부엌에는 짙은 갈색 실뭉치 모양의 말린 고사리가 있었다. 외할머니가 손톱으로 일일이 끊어서 말린, 전라도 부안의 외가에서 건네 온 물건이었다. 한식날 성묘 가는 길목에서 금관악기 모양으로 구부러진 고사리 어린잎을 보면 필자도 외할머니가 그러셨듯 엄지와 검지 손톱으로 고사리순을 따곤 했다. 고사리는 양치(羊齒)식물이다. 이름의 유래인 양의 이빨을 본 적은 없으나 톱니 모양의 푸른 고사리 잎과 늦가을 마른 잎 뒤에 쭉 늘어선 고사리 포자의 섬뜩한 정렬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자는 양치류를 동물의 양서류와 등치시킴으로써 물을 헤엄쳐 가야 하는 개구리와 고사리 정자의 성생활을 떠올린다. 개구리나 고사리는 물을 멀리 떠나서는 사는 일이 괴롭다. 양치류는 그늘지고 습한 곳을 골라 자신의 성세를 누리지만 인간은 그들의 조상이 한때 물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15억년 전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어떤 조류가 파도를 타고 떠돌던 남세균을
01.13
‘게으른 일머리’가 필요한 시대다. 중요한 판단과 책임은 ‘꽉’ 쥐고 매번 씨름할 필요가 없는 일은 ‘놔’ 버리는 것, 기계의 일과 내 일을 구분하고 에너지를 어디 쓸지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태도 말이다. ‘게으른 일머리’는 개념과 절차를 정의하는 일로 시작한다. 이 단계를 가로막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처럼 보이는 선언문이다. 이로 인해 같은 단어로 다른 것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우리는 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때로는 엄청난 손실을 입기도 한다. ‘내 말 좀 들어봐’라며 시작한 대화가 ‘왜 내가 니 말을 들어야 하는데?’라고 반발하다 한참을 싸운 커플이 있다. 알고 보니 ‘듣다’라는 단어를 한 사람은 ‘귀를 기울이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은 ‘시키는대로 따르다’라는 뜻으로 써, 같은 단어를 담은 전혀 다른 두 가지 버전의 대화가 생성된 것이다.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되지 않은 단위와 절차로 4000억원을 날린 일도 있다. 1999년 나사(NASA
01.06
2025년 11월 27일 오전 1시 13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네번째 비행에 성공했다. 누리호는 차세대 중형위성 3호와 12기의 부탑재 큐브위성을 예정된 궤도에 투입했다. 발사부터 비행, 분리, 궤도 안착에 이르는 주요 비행 이벤트들은 모두 계획대로 수행됐고, 발사체와 탑재체의 상태 역시 정상으로 확인되었다. 결과만 보면 이번 발사는 또 하나의 성공의 기록이다. 그러나 누리호 4차 발사는 ‘성공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기에는 아까운 사건이다. 이미 2차 발사에서 완전한 성공을 경험했고, 3차 발사를 통해 그 성공이 우연이 아님도 확인했다. 그럼에도 이번 발사가 특별하게 읽히는 이유는 이 성공의 성격이 이전과 분명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누리호 4차 발사는 단순히 발사 횟수를 하나 더 늘린 사건이 아니라 한국 우주개발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 누리호 1차 발사는 ‘성공적인 실패’로 불린다. 궤도 진입에는
12.30
2025
최근의 인공지능(AI) 열풍은 기술적 혁신을 넘어 에너지산업 지형까지 흔들고 있다. GPU나 HBM 같은 첨단 반도체 확보 경쟁이 1차전이었다면 이제는 이들을 가동하기 위한 막대한 전력 확보가 2차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도입 예정인 약 25만장의 GPU를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0.5~0.8기가와트의 전력은 원자력발전소 하나의 발전량에 근접하는 양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이러한 데이터 센터를 세계 곳곳에 건설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인류가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전력수요를 의미한다.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AI 기술패권경쟁의 필수조건이 된 셈이다. 필자는 평소 반도체 물리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컴퓨터는 전열기다”라는 농담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농담이 아닌 물리적 실체다. AI 데이터센터나 개인용 PC의 반도체 칩으로 들어간 전기는 최종적으로 모두 열에너지로 변환되어 방출된다. 우리는 뜨거운 컴퓨터를 식혀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왜
12.23
한때는 농경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노동력으로, 현재는 가장 고급화된 육류 중 하나로 한우는 한국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며 한국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한우는 여느 소와 마찬가지로 전세계에서 인류와 함께 진화한 주요 생물이다. 인류가 처음 소를 길들인 것은 약 1만 년 전 즈음으로 추정된다. 그 오랜 세월, 우리는 서로 중요한 자원을 주고 받으며 역사 속에서 함께 변화했다. 현대 소는 크게 한국에서 흔히 소라고 부르는 타우루스 소와 인도 혹소라고 불리는 인디쿠스 소 둘로 나뉜다. 이러한 현대 소는 모두 멸종한 야생 소인 오록스(aurochs)로부터 별도로 유래해 진화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인류와 함께 다양한 지역을 오고 가며 서로 섞이기도 하고 지역 오록스와 섞이기도 하는 등 복잡한 역사를 거치며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소의 진화과정은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를 떠돌며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복잡하다. 소의 진화, 그 중에서도 인류와 길들여
12.16
지방 특산자원을 국가 부처에서 지원해주는 과제가 있었다. 과제심사를 한 날이 마침 첫눈이 수북이 내린 날이었다.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굵은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었다.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보다 한적한 눈길을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앞섰다. 눈에 취해 차를 운전하다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월출산 자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를 잠시 주차하고 월출산에 취해 산허리를 눈으로 좇다보니 산 아래 마을에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잎을 잃고 눈을 위태하게 얹은 가지에 휘청하듯 감이 달려있었다. 하얀 눈을 바탕으로 주황빛을 끝까지 붙들고 서 있었다. 그제서야 그 지역 과제 주제가 ‘감’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감은 과육 껍질 씨 잎 심지어 떫은 미숙과까지 고유한 생리활성 성분과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단감의 껍데기는 주황색 특유의 베타카로틴과 크립토잔틴등 카로티노이드이며, 과육부분은 고유의 단맛뿐 아니라 비타민 A와 C, 칼륨과 식이섬유, 그리고 폴리페놀과 카로티노
12.09
21세기 초, 필자가 한 디스플레이 부품 회사에 근무할 때다. 당시 회사는 시장이 커지던 액정표시장치(Liquid Crystal Display, LCD) TV의 후면에 들어가는 광원을 개발하고 있었다. TV는 보통 스크린에서 직접 빛이 만들어져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LCD는 후면에 백색광을 내는 조명장치, 즉 백라이트가 따로 들어간다. 액정 패널은 조명이 쏘아주는 빛의 투과도를 화소별로 조절하는 광스위치 역할을 할 뿐이다. 여기서 핵심적 역할은 ‘액정’이라 불리는 물질이다. 미국의 트럼프정부가 기초과학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상황에서, 한 프리랜서 작가가 혁신적 산업으로 이어진 기초과학의 다양한 성과를 소개하는 글을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었다. 그중 한 분야가 바로 액정이었다. 액정은 말 그대로 ‘액체’와 ‘결정(고체)’의 합성어다. 액체처럼 흐르는 유동성을 보이지만 결정과 비슷하게 빛의 편광을 조절하는 성질도 갖는 상이 바로 액정상이다. 오늘날 주류 디스플레이로 부상한
12.02
2025년 10월 22일 정부는 2021년 11월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시적으로 시작한 유류세 인하 조치를 18번째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2025년 10월 29일에 유명한 의학저널인 랜싯(Lancet)은 최근 폭염으로 인한 전세계 사망자가 연간 약 55만명이라고 보고했다. Lancet의 이번 보고서에 대해 국외에서는 저명언론 기관과 세계보건기구 같은 공공기관에서 심도있는 분석기사를 내보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연간 55만명이 사망자는 1분당 1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단한 사건인데도 말이다. 이런 정도의 사망자는 이제 언론에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거나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더더욱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한다. 경기부양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유류세 인하다. 일견 서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전례 없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증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