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아이 AI학과에 맞는 학생일까?

2024-04-03 13:00:03 게재

2016년 3월,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 분야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AI 분야의 적성을 논하기 위해선 이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알파고가 이에 해당한다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알파고는 너무나 많이 언급됐는데 무엇을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필자는 다른 부분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바로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대표 데미스 허사비스다.

이재성 중앙대학교 AI학과 교수

어떤 사람이 AI를 잘할까?

대부분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질 뿐 이를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의 특성을 살펴보면 인공지능 분야에 필요한 적성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우리 아이가 허사비스와 비슷한 특성이 있다면 AI학과에 진학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래서 허사비스의 사례를 바탕으로 필자를 포함해 인공지능을 전공한 동료들과의 공통점을 비교해 인공지능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다음은 언론에 공개된 허사비스의 사례 중 인공지능을 전공한 사람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4살 때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체스를 했다.”

“나는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컴퓨터야말로 나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마법의 기계라고 느꼈다. 13살에 체스 챔피언이 된 후 체스보다 컴퓨터가 재미있다고 확신했다.”

“17살에 게임 ‘테마파크’의 공동 개발자로 이름을 올렸다.”

“1995년 학부생 시절 동료로부터 바둑을 배웠고 성취도 빨랐지만 체스에 비해 성취가 느린 편이라 직접 바둑을 두는 대신 인공지능으로 정복하기로 했다.”

하나하나가 여러 시사점을 보이는 말들이니 차근히 살펴보도록 하자. 필자가 생각하기에 키워드는 체스와 바둑, 컴퓨터, 개발자, 그리고 본인을 대신할 인공지능이다.

바둑은 오래된 게임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부모가 자녀를 기원에 보낼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는 단순히 바둑 실력 향상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집중력 개선과 같은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인공지능을 전공한 필자의 동료들도 어릴 적에 바둑 오목 장기 체스와 같은 ‘수읽기’가 필요한 게임을 즐긴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단순히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수읽기, 즉 전략적 사고 자체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읽기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량 중 하나다.

인공지능을 꿰뚫는 중요한 개념에는 ‘행위'자 와 ‘환경’이 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행위자의 행동은 환경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렇게 바뀐 환경에 따라 또 행위자가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고 이것이 다시 환경을 바꾸는 순환이 일어난다.

바둑을 예로 들면 기사(행위자)와 바둑판(환경)이 이러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바둑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환경에서 나에게 가장 유리한 수를 두면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다. 상대편 기사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돌을 놓았을 때 상대방은 어디에 돌을 놓을지 꾸준히 예측하고 그것까지 고려해 가장 좋은 수를 찾아야 한다. 수읽기에 익숙한 사람이 바둑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

'알파고의 아버지’ 허사비스는 왜 바둑에 매료됐나

그렇다면 우수한 바둑 인공지능이란 수읽기가 능숙한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고 당연히 수읽기에 능숙한 사람이 우수한 바둑 인공지능을 탄생시킬 수밖에 없다. 허사비스는 바둑을 좋아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짧은 시간에 전문가 수준에 이를 정도로 바둑에 대한 이해도 뛰어났다. 세계 최고의 바둑 인공지능인 알파고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사비스는 왜 바둑을 좋아했을까? 허사비스의 마음까진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도 수읽기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수읽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한번 눈여겨보자. 바둑을 잘해야 인공지능에 재능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기를 바란다. 앞서 이야기했듯 ‘행위자’와 ‘환경’의 개념은 바둑뿐만 아니라 세상만사에 적용될 정도로 일반화된 것이다.

즉 우리 아이가 일상에서도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며 행동하는, 다시 말해 수를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 중 하나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보이는 자녀라면 AI학과 진학을 고려해볼 만하다.

이재성 중앙대학교 AI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