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의 교차 속 ‘사과씨앗’ 찾기

2024-04-15 13:00:01 게재

기술만이 전부 아닌 실리콘밸리 문화 … 잡스 “인간문화와 결합한 과학기술이 울림 줘”

미국 샌프란시스코 ‘잭 케루악’ 골목 옆에 있는 시티라이츠 서점 전경. 사진 김욱진
“나는 소나무와 전자기술로 가득찬 인공두뇌의 숲을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마치 컴퓨터가 꽃인 것처럼 사슴들이 평화롭게 컴퓨터 사이를 거니는 숲을.”

1967년 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이트-애슈베리(Haight-Asubury) 거리로 가보자. 한 장발의 시인이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준다. 전단지에는 3연짜리 시가 쓰여있다. 시의 제목은 ‘은혜로운 기계의 보살핌을 받는 우리 모두(All Watched Over By Machines of Loving Grace)’다.

작가는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활동한 리처드 브라우티건이다. 1935년에 태어난 그는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0대와 30대, 그는 당시 미국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비트세대이자 히피세대의 중심인물이었다.

언뜻 문명을 벗어나 전원으로 회귀하자고 주장할 것처럼 보이는 이가 기계와 인간의 조화를 꿈꾸는 시를 썼다는 사실은 의외다. 이처럼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실재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후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컴퓨터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뉴욕타임스에서 28년 동안 기술 전문기자로 활동한 존 마르코프는 2005년 발간한 그의 저서 ‘동면쥐가 말한 것’에서 1960년대 말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관료주의적 통제도구로 묵살되던 컴퓨터가 개인의 표현과 해방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고 말이다. 당시 미국 서부에서 유행한 슬로건이 ‘켜고 부팅하고 교감하라(Turn On, Boot Up, and Jack In)’였다는 사실에서 보다 극적으로 기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히피 정체성 잃지 않았던 스티브 잡스

많은 한국인에게 실리콘밸리는 컴퓨터광들이 모여 사는 기술중독 사회로 치부된다. 하지만 통시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둘러싼 지역에는 기술을 통해 인간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거대한 움직임이 있다. 인간과 기계의 조화를 주창한 반문화 세대의 시인 브라우티건이 활동한 무대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독립서점 ‘시티라이츠(City Lights)’다.

누군가 실리콘밸리를 여행하러 간다면 애플파크에 가는 것도 좋고 구글 캠퍼스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꼭 한번 시티라이츠 서점을 들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필자부터 그랬다. 3년 전 실리콘밸리에 일하러 가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시티라이츠 서점이었다. 기술적으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적 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나고 실리콘밸리 근무는 무엇으로 남았는가. 돌이켜 보니 출발점에서 세운 가정에 대한 답변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요약된다.

망망대해와 같은 실리콘밸리에서 막막함을 떨쳐내는 방법은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의 흔적을 좇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예술적 상상력을 테크놀로지로 풀어낸 기업인이어야 했다. 인간문화와 과학기술의 경계에 서서 해답을 찾으려 한 대표적 인물은 누구일까. 2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21세기를 표상하는 두가지 영역의 경계인은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다. 잡스가 사망한 후 영국 B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제목은 ‘억만장자 히피(The Billion Dollar Hippy)’였다.

젊은 시절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사과 농장 공동체 생활을 하던 그는 비즈니스 영역에 뛰어들어서도 자신의 히피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사과 농장 시절을 떠올리며 컴퓨터 회사 이름을 ‘애플’로 지을 만큼 열성적이었던 그는 억만장자가 되고도 여전히 반문화 세계의 시민이었다.

잡스의 접근법은 두 영역의 교차점(intersection)에 서는 것이다. CNN 대표를 지냈고 잡스의 공식전기 작업을 한 월터 아이작슨은 고등학교 시절 잡스가 “전자공학에 광적으로 빠져있는 부류와 문학·창작에 몰두하는 부류의 교차점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고 서술한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리드 대학을 자퇴하고도 캘리그래피 수업을 의도적으로 청강한 일화 역시 “자신을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세워 놓으려고 시도한 사례”로 해석한다.

잡스는 사망하기 직전 마지막 제품 발표에서 직접적으로 이를 설파했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애플의 DNA입니다. 인간문화와 결합한 과학기술만이 가슴을 울리는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발언에서 그의 철학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잡스에 앞서 한국인 백남준이 있었다

3년 동안 잡스 꽁무니를 쫓으며 많은 순간 희열을 느꼈지만 때때로 꺼림칙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스스로 문화 사대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성찰과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려는 노력이 과연 우리에게는 없었는가’ 하는 반추가 틈틈이 반복됐다. 힌트를 얻은 순간은 공교롭게도 잡스의 흔적을 따르면서다. 1984년 애플의 슈퍼볼 하프타임 광고를 조사하면서 잡스보다 몇주 앞서서 조지 오웰의 물음에 응답한 인물을 발견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독일 미국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예술가 백남준이다. 백남준은 1984년 1월 1일 뉴욕 파리 베를린 서울을 연결하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쇼를 기획했다. 글로벌 미디어 잔치의 제목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 사회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게 백남준의 주장이었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옭아매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은 기술을 활용해 모두를 고양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작품의 주제였다.

백남준이 전달하려던 바는 잡스가 1984년 1월 22일 슈퍼볼 광고에서 제시한 메시지와 적확히 일치한다. 이는 잡스가 크게 관여한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가 공개된 시점보다 3주 빠르다. 한국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예술가가 같은 주제로 한발 앞서 담론을 제시한 것이다.

귀국을 앞두고 필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실리콘밸리에서 구하려던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 선다는 것의 의미를 제시한 인물이 멀리 있지 않았다. 백남준은 세계인이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누구보다 잘 살린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기술 기기를 통해 예술을 구현하려 했다면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 작품에 기술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 실리콘밸리에서 백남준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했다. 다행히 UC버클리의 예술·영화박물관(BAMPFA)이 백남준의 초기작을 보관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웹사이트에 나온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영상 필름 보관소의 담당자를 접촉해 따로 예약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정중히 메일을 보내 백남준의 작품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답신을 받지는 못했다. 귀국일이 다가왔고 결국 백남준의 작품을 보지 못한 채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서도 ‘사과씨앗’ 찾을 수 있나

아쉬움을 덜기 위해 한국에 오고 나서 용인부터 찾았다. 시차 적응을 마친 주말, 달려간 곳은 ‘백남준 아트센터’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현장 실황이 임의접속실(Random Access Hall)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영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비트세대를 대표하는 시인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가 등장해 ‘명상하라’고 노래했다.

긴즈버그는 1956년 자신의 시 ‘울부짖음(Howl)’을 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하자 샌프란시스코 시티라이츠 서점에서 독립출판을 실험했다. 시티라이츠 서점은 긴즈버그의 주된 활동무대였다. 미국의 한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과 한국 출신의 백남준이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교류하고 있었다.

1980년 3월 25일, 백남준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임의 접속 정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 백남준은 이렇게 말한다. “한편에 예술이라 불리는 것이 있고 다른 한편에 소통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가끔 둘이 그리는 곡선이 교차한다. 그 사이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 그게 우리의 테마다.” 어쩌면 실리콘밸리까지 가서 구하려 했던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대한 힌트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라지만 어쩐지 부끄러워진다.

김욱진 코트라 경제협력실 차장 실리콘밸리 마음산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