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대통령과 석유

2024-06-17 13:00:15 게재

거의 40년 전 알라스카 캘리포니아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 미국의 유전지대를 취재한 적이 있다. 알라스카 푸르도베이 유전은 파이프를 꽂기만 해도 원유가 콸콸 쏟아져서 이를 제어하는 게 문제였고, 캘리포니아 유전은 너무 오래 파먹어서 액체 상태 기름이 고갈돼 돌덩이처럼 딱딱한 고체석유를 파내기 위해 땅속에 파이프를 거미줄처럼 쳐놓고 수증기를 주입해서 액체로 만든 후 펌프로 퍼내고 있었다. 사우디 원유보다 생산단가가 훨씬 비싸지만 미국은 이들 유전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클라호마와 텍사스에는 메이저 석유회사가 운용하는 대규모 유전도 많았지만 평원 사막 강변을 따라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자잘한 석유지층에서 원유를 뽑아올리는 소규모 석유 채굴사업가, 소위 와일드캐터(wildcatter)가 많았다. 오클라호마의 ‘털사’라는 도시는 와일드캐터들이 만든 회사가 수백개나 진을 치고 있어 ‘세계 석유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였다.

당시 털사에서 유일한 한국인 와일드캐터로 석유채굴 사업을 하던 명인성 박사와 며칠간 유전지대를 다니며 석유에 얽힌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서울공대 광산학과를 중퇴하고 일찍이 미국에서 석유사업에 손을 댄 그는 캔자스주와 오클라호마주에서 직접 시추해서 개발한 유정을 여럿 갖고 있었고 중국과 남미에서도 석유 시추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시추현장 찾은 대통령

명 박사는 두가지 흥미로운 스토리를 들려줬다. 첫째 석유채굴사업은 두 사람, 즉 지질학자와 엔지니어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거였다. 즉 메이저 석유회사에서 지질전문가로 근무경력이 있는 지질학자와 광산 엔지니어가 파트너를 이루면 아주 훌륭한 석유개발 스타트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자본은 100% 펀딩을 통해서 가능하다. 지질학자가 석유 매장 가능성이 높은 지질구조를 찾아내면 엔지니어가 시추 기획을 세워 투자자를 끌어모은다. 시추공 하나 뚫는데 약 10만달러가 드는데 투자자들의 구미가 당기게 지질구조 시추계획 및 성공 배당에 대한 기대가 부풀게 투자설명회를 열어야 한다.

명 박사는 캔자스주에서 자신이 직접 시추해 개발한 유정을 보여주며 “3년 전 시추하자 하루 250배럴이 터져 6개월 만에 투자액을 완전 회수하고 아직도 하루 수십 배럴씩 기름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시추공을 연달아 4개 뚫었는데 허탕을 쳐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다고 했다. 시추 성공률만이 투자를 끌어모으는 신뢰의 기초라는 것이다.

명 박사가 들려준 두번째 얘기는 바로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이 깜짝 발표한 포항 영일만 유전 일화다. 1973년 제1차 중동 석유위기로 국민경제가 마구 흔들릴 때 터져나온 이 뉴스는 국민들에게 산유국의 꿈에 부풀게 했던 해프닝이다. 당시 명 박사는 정부의 부름을 받아 현장 시추 작업에 깊이 참여했다고 한다. 비밀준수 서약 때문에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다면서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헬리콥터를 타고 현장에 나타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석유가 정말 나왔냐는 질문에 그는 “불고기 해먹을 정도의 가스”라고 실패를 비유했다.

박 대통령의 해프닝이 있은지 반세기만에 이번엔 윤석열 대통령이 영일만 심해 유전 탐사시추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50년 전과 다른 점은 그때는 독재체제 아래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했기 때문에 유전개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고 언론이나 야당도 대통령의 비위에 거슬리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야당은 물론 언론, 특히 SNS의 발달로 사실과 왜곡과장이 엉켜 정보의 홍수가 난무하는 판이다.

야당과 시민단체 사람 중에는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 등 각종 정치적 난국을 덮어 버리기 위해 국정보고 형식으로 유전시추 과장 뉴스를 만들었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보수층 중에도 시추해봐야 확인될 심해 유전개발 계획을 왜 대통령이 했는지 모르겠다며 소통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보았다. 유전시추 성공의 본질적 불학실성과 대통령의 낮은 인기도가 어우러진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막대한 투자하려면 국민 설득이 관건

이번 대통령 발표의 요지는 간단하다. 영일만 해저 광구에서 실시한 물리탐사 자료를 ‘지오액트’라는 전문컨설팅 기업에 맡겨 분석한 결과 약 140억배럴의 석유 및 가스 추정 매장 가능성이 20% 정도로 높게 나타나서 올해 연말부터 해저에 5개의 시추공을 뚫는 작업을 하기로 했으니 차분히 지켜봐달라는 것이다.

시추공 하나 뚫는데 1000억원, 탐사시추에만 5000억원이 소요될 판이다. 대통령의 결정에 의해 결국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투자하게 되는 것이니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관련 시민단체 등의 시비가 쏟아질 것이다.

석유는 지극히 전략적 상품이다. 대통령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확실성을 안고 막대한 투자를 하려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석유시대를 넘어 미래 에너지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와 디테일을 보여줘야 한다.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