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2
2026
중동사태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원유 수입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직접적인 석유가격 폭등과 공급망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국가 차원의 전략적 석유 비축 제도가 없어 민간 정유사의 약 30~45일 치 비축량에만 의존해 공급충격에 극히 취약하다. 이로 인해 동남아시아 역내 국가들은 에너지 비상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5월 7~8일 필리핀 세부에서 개최된 제48차 아세안 정상회의는 중동사태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파고에 대응하기 위해 회원국 간 비상연료를 공동 비축하는 데 합의했다. 한편 일본은 아세안의 비상연료 공동 비축 시스템 구축을 위해 100억달러 규모의 금융지원을 하기로 했다. 이 자금은 아세안 국가들의 약 1년치 원유 수입량에 해당하는 최대 12억배럴을 조달하고 비축을 확대할 수 있는 규모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지하 암반 저장기술과 대리 정제 가치사슬을 연계해 동남아 현지의 비축 저장 인프라
06.05
트럼프2기 행정부 출범은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당황스러울 만큼 새로운 외교안보 환경을 열었다. 기존의 미국이 기여하는 안보공동체로서의 동맹은 현실주의와 일방주의로 운영되는 거래주의적 동맹으로 대체됐다. 이번 이란전쟁 과정에서 목격했듯이 미국은 동맹국들과 사전협의 없이 독자행보로 동맹 간 협조체제에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또한 동맹국들은 미군 병력과 각종 방공무기 체계가 중동 지역으로 차출되는 상황에서 역내 안보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안보자원의 분산과 전략적 불확실성의 증대는 동맹국들에게 연루와 방기의 딜레마를 상기시킨다. 지난 5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하며 중국이 신흥 패권세력으로 부상했음을 과시했다. 그는 대만문제를 잘못 다루면 미중이 ‘충돌’할 수 있음을 공개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전쟁 관련 협력을 구하느라 대만 무기판매 문제를 대중국 협상 카드화했다. 올해 하반기 두세차례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
05.29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5월 19일부터 20일까지 정상 간 셔틀외교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에서 열린 이번 방한의 주요 목적은 미중갈등과 긴박한 지정학적 리스크 앞에서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모색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일본 내 전문가들은 문재인-아베정권 시절의 극심한 대립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대통령의 행보가 예상외로 실리적이고 안정적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에 발맞추어 다카이치 총리 역시 조세이탄광 문제 대응이나 야스쿠니신사 방문 자제 등 관계개선을 위한 제스처를 취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한일관계의 온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양국 정권이 국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언제든 상대국을 이용할 수 있다는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일본정권이 내각 지지율 확보를 위해 배외(排外)정서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문제는 다카이치내각의 국내 기반이 급격히 흔들
05.22
중국은 대만과 수교한 에스와티니를 제외한 아프리카 53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47개국에 상주대사관을 두고 있다. 17년 연속 아프리카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지난해 대아프리카 수출은 전년대비 26.5% 늘어난 2250억달러, 흑자만 1020억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올해 5월 1일자로 아프리카 관세제로 정책을 단행하며 무역불균형 해소에 나섰다. 이미 무관세가 적용되던 33개 최빈국에 더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모로코·이집트·남아공까지 모두 혜택을 받게 되었다. 미국이 지난해 종료된 아프리카성장기회법(AGOA) 연장 여부를 놓고 저울질하는 사이에 중국은 아프리카에 통 큰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글로벌공급망은 물론 자국의 영향력도 더욱 확대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미국이 ‘조건부 지원’으로 망설이는 가운데 중국은 ‘무조건 환영’으로 아프리카의 마음을 사겠다는 외교적 셈법에 아프리카 원자재를 무관세로 들여오겠다는 경제적 셈법까지 더해진 것이다. 1960~1970년대 중국정부는 아프리카
05.15
1869년 5월 10일 미국 유타주 프로몬토리 서밋. 동쪽에서 달려온 유니언 퍼시픽과 서쪽에서 달려온 센트럴 퍼시픽이 마지막 황금 스파이크(golden spike)를 박았다. 두 대륙의 철로가 맞물린 순간이었다. 대서양 국가 미국이 태평양 국가로 완성되던 날.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6개월 걸리던 길은 6일로 줄었다. 상품이 흘렀다. 자본이 따라붙었다. 서부개척은 폭발했다. 미국의 운명이 바뀌었다. 1916년 러시아는 유럽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9288km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완성했다. 광활한 유라시아의 심장을 꿰뚫은 강철 동맥이었다. 잠자던 동토의 가치가 깨어났다. 영국의 지정학자 핼퍼드 매킨더는 간파했다. “심장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교훈은 단호하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육로 교통망은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다. 낡은 질서의 해체이고 새 질서의 탄생이다. 국가의 체급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사건이다. 조 코커의 끈적한 명곡 ‘언체인 마이 하트(Unchain
05.08
필자는 바둑을 둘 줄 모르지만 유명한 대국 결과 설명을 읽어보곤 한다. 가로 세로 19개 선으로 이루어진 바둑판은 외교무대와도 같다. 361개 점의 조합이 주는 선택은 무궁무진한 것 같지만 실제 택할 수 있는 방안은 상당히 제한되며 하나의 결정은 다른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외교와 비슷하다.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디에서 발생하든 서로 영향을 미친다. 한번 돌을 놓으면 거둬들일 수 없다. 중동에서의 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유럽 관계, 세계 경제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다. 일단 전쟁이 시작된 만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쟁 전의 관계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많은 나라가 ‘미생’과 같은 느낌을 갖는다. 경쟁에서 뒤지면 안된다는 위기인식도 있지만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하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소개한 대로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일을 당한다”는 힘의 논리가 강요될
04.24
요즘 국제 정치의 화두는 단연코 ‘팍스 아메리카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모아지고 있다. 작년의 세계적인 관세전쟁에 이어 새해 들어 서반구와 중동에서 연이어 공격적인 군사작전을 펴고 있는 트럼피즘이 역설적으로 미국 힘의 한계도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이란의 끈질긴 저항 앞에서 고전하면서 일방주의의 반작용으로 동맹의 결속력까지 흔들리는 현실이 워싱턴에 더욱 쓰라리게 다가오고 있다. 지난 세기, 특히 2차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이대로 저무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아직 진행형이다. 중요한 지표에서 미국의 힘이 정체 또는 하락 추세에 있어 완만하지만 장기적 하강추세가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루에 비유하면 현재 오후 늦은 시간에 서 있고 황혼을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태양이 언제 떨어질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 답은 미국 스스로 하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운명은 외부 요인보다는 미국 내부의 요인에 좌우될 가능성
04.17
작년 6월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12일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새로운 운명을 맞기 시작했다. 이 해협은 이미 기원전 3000년 수메르 문명 시대부터 페르시아만-인도양 간 교역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전 기간 중의 ‘탱커 전쟁’이나 2019년 이란의 영국 국적 석유제품 운송선 나포 사건은 위치상 해협과 관련은 있었으나 해협 자체의 봉쇄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해협 봉쇄가 ‘전략 무기’ 목록에 오른 것은 작년 6월 이란 의회가 해협 폐쇄를 승인한 것이 처음이다. 다만 당시 이란 최고안보회의는 ‘12일 전쟁’이 종료되자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란은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을 받자마자 해협 봉쇄를 실행했다. 이는 생사기로에 놓인 이란 정권이 주변 아랍 국가들에 대한 공중공격과 함께 선택한 벼랑 끝 전술이다. 이란은 이를 통해 국제유가 앙등, 미국 내 물가 상승, 미국과 걸프 산유국 간 불화 발생을 노렸다. 사우디 등 걸프국가들은 안보
04.10
세계가 동시에 두 개의 지역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 전쟁은 결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군이 러시아 전선에 파병되면서 우리 안보 우려를 키웠고 이란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을 흔들며 우리의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에 잇따라 충격을 주고 있다. 한반도는 이미 세계적 안보 소용돌이의 영향권 안에 들어와 있다. 우리가 풀어야 할 핵심 질문은 한국이 이 격변의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비할 것인가, 아니면 강대국의 결정만 기다릴 것인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2주간 조건부 휴전과 교섭을 수용함으로써 미-이란 전쟁의 흐름을 협상국면으로 일단 전환시켰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교체 목표 대신 이란의 전략적 약화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라는 차선의 성과로 종전 ‘출구’를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동국면이 일단락되면 트럼프의 외교적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음 과제로 이동할 것이다. 1기 행정부 이래 미북 고위급 대화에 대한 트럼프의 개인적 관심은 일관되어 왔다. 중간선
04.03
트럼프 2기 들어 마가(MAGA) 내부의 움직임이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의 가장 충성스러운 하원 동맹이었던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엡스타인 파일 공개 거부와 대외 정책 등을 놓고 연이어 충돌하다 2026년 1월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우파 논평가 터커 칼슨도 이란 공격 이전부터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노선에 공개 비판을 이어왔고, 이란 공격 당일에는 “역겹고 악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 작전이 한 달을 넘어서면서 “왕은 없다(No Kings)”를 내건 시위도 미국 안팎에서 잇따르는 등 MAGA 외부에서의 반발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란 공격 이전부터 조금씩 드러나던 변화 움직임은 이란 공격을 계기로 더 넓고 깊은 층위에서 표면화됐다. 행정부 안에서 터져 나온 저항의 목소리는 MAGA 내부 긴장의 연장선이자, 동시에 그 긴장을 외부로 확산시키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대테러센터장 조 켄트가 사직서를 공개하며 이탈한 것이 그 첫 장
03.27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은 여러 측면에서 예측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로 끝내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 이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정권교체나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해외에 군사개입하던 전임 대통령들을 비난한 그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그는 중국을 제일 위험한 잠재 적국이라 규정하고 아시아에서 중국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저지하겠다고 한 후 지금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적잖은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오바마정부부터 시작되었던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라는 대전략과 어긋나고 있다. 10년 전부터 미국은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빼내 아시아 지역으로의 전환배치를 추진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주한미군 전략 자산들마저 중동으로 재배치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바이든행정부가 노력을 기울여왔던 동맹국과의 연대구도도 관세부과와 파
03.20
2025년 12월 통일부는 연두업무보고에서 ‘서울-북경 고속철’ 구상을 제시했다. 최근 들어 논의가 있었던 사안도 아니고 구체적 계획도 제시되지 않아 다소 의아하다고 생각하면서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렸다. 희망에 부풀어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것이 벌써 30여 년 전 일이다. 이후 유라시아로의 다양한 연결을 도모하면서 한반도 현실의 변화를 꿈꾸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까마득한 과거로 느껴진다. 한반도의 유라시아 물류 연결은 그 자체가 한반도 지정학을 변화시키면서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남북관계 발전을 전제로 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에 통일부로서는 매력적인 의제다.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국가적 과제로 추진되어 주목을 받았다. 한국은 사실상 섬나라이다. 1991년 소련 붕괴는 이러한 지정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떠올랐다. 북한의 개방과 남북관계 발전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 사업이
03.13
3월 8일, 인도는 다시 한번 들썩였다. 인도 대표팀이 국제크리켓평의회(ICC) 남자 T20 월드컵 2026 결승전에서 뉴질랜드를 꺾고 사상 첫 대회 2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벌어진 나렌드라 모디 스타디움은 물론 전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크리켓은 인도에서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국민 감정의 출구이자 집단적 자부심의 상징이다. 그러나 환호가 절정에 이른 바로 그 순간에도 뉴델리 외교가는 전혀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중동정세가 급속히 흔들리는 가운데 인도는 흥분보다 절제를 택하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인도 외교에 묘한 장면을 남겼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전쟁이 본격화되기 불과 며칠 전인 2월 25~26일 이스라엘을 국빈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정상외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든 셈이다. 그만큼 인도의 계산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03.06
2004년 중반부터 2008년 초까지 베네수엘라 대사를 역임한 필자에게 올해 벽두에 전해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재임 시절 여러 차례 만났던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국정을 책임졌던 지도자가 국제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경우 자신의 파멸은 물론 국가의 운명까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위기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반미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하자 베네수엘라를 반미진영의 핵심 국가로 지목했다. 마두로 집권기에는 선거부정과 인권탄압 문제가 불거지며 정치·경제적 압박이 본격화했다. 야권이 장악한 국회의 의장 과이도와 행정부 수반 마두로는 권력 정당성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2019년 1월 과이도가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자 미국은 이를 공식 인정하고 마두로정권을 겨냥해 국영석유회사(PDVSA) 등에 대한 강력한 경제
02.27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필리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마주 앉았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국방·경제·디지털협력을 한단계 끌어올리기로 했다. 원전 재개 타당성 조사, 방산 수출,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 등을 통해 실질적 경제협력을 도모했다. 이번 이 대통령의 필리핀 방문은 1949년 수교 이후 축적해 온 신뢰를 제도적 틀로 한 단계 끌어올려 양국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양국 간에는 안보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여지가 많다. 특히 역내 안보환경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해양 안보 역량 강화와 군 현대화 협력은 양국 모두에게 전략적 가치가 크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전투병력을 파병한 필리핀은 FA-50 경공격기 12대, 호위함 2척, 초계함 2척, 원해경비함 6척을 잇달아 구매하는 등 지난 10년간 약 30억달러 상당의
02.20
냉전 이후 35년간 유지됐던 핵군축 체제가 무너졌다. 미국과 러시아의 실전 배치 핵탄두 수를 각 1550기로 제한하던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2월 5일 종료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이유로 2023년부터 조약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은 후속 합의에 2030년까지 핵탄두1000기 이상의 확대가 예상되는 중국의 참여를 요구했으나 중국은 거부했다. 러시아는 2024년까지 벨라루스에 전술핵 수십 기를 배치했고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도 전술핵 배치 준비 동향을 보인다. 첨예한 핵위협 속에 유럽은 자체 핵우산 논의에 착수했다. 한국도 이 흐름을 주시해야 한다. 미국은 그간 러시아 핵억제를 위해 나토에 핵공유를 제공해 왔다. 1957년 소련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핵공유 논의가 본격화했다. 미국은 양자협정으로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동맹국에 배치했다. 핵무기 운용은 미국이 전담했다. ‘기지형’ 핵공유였다. 이는 적성국과의 군비경쟁과 핵 능력 고도화
02.13
독재자의 ‘착취’는 국민으로부터 권력과 부를 수탈하기 때문에 국가를 망친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스모글루 교수와 로빈슨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특정 국가가 가난한 이유는 지리적·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착취적 권력자가 빈곤을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도자의 실수나 무지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것이다. 노예 식민지배 억압을 겪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 이후 독재 내전 부패 기아 질병의 고통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15억명 인구의 아프리카 54개국 중 절반에 해당하는 27개국이 독재국가이며, 30년 이상 독재자가 군림하는 나라가 5개국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7개국에서 30년 이상 1인 독재가 행해지는 상황에서 그 대다수가 아프리카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8선을 한 카메룬 대통령 비야는 92세 최고령으로 44년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새 임기 7년을 다 채우면 99세로 무려 50년 독재를 하게
02.06
싱가포르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한가운데서 ‘시간’을 국가 전략의 중심 변수로 다루는 나라다. 첨단 인재에게는 탄력적인 근로시간과 높은 보상, 빠른 승진과 재도전 기회를 열어두는 한편, 법·제도 차원에서는 과도한 장시간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유지하는 이중 구조를 택하고 있다. 싱가포르 근무 시절 같은 프로젝트를 두고 한국 기업은 국내 근로시간 규제를 그대로 안고 뛰는 반면, 중국·일본 기업은 현지 관행과 유연한 인력 운용으로 대응해 나가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한국 기업만 ‘타이트한 규제’라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경주에 나서는 형국이었다. 한때 중국 IT기업의 ‘996 근무제’는 과잉 경쟁과 인권 침해의 상징으로 비판받았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이 방식은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등 첨단 기업의 고속 성장을 떠받친 그림자였다. 이와 함께 주 7일 하루 24시간 근무 및 대기를 뜻하는 ‘007 근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며 중국식 발전 모델의 비
01.30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아서 반덴버그를 아는 이는 드물어도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춘다”는 그의 격언은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 말은 지켜지지 않는다. 외교는 오히려 국내정치의 연장인 경우가 많다. 양당 간 분열이 깊어지면서 상대 당에 대해 정치적 선호뿐 아니라 기본적 가치관마저 다르다고 여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과 철저히 대립각을 세운다. 백악관에 역대 대통령 사진을 전시한 기념공간을 만들면서도 바이든 대신 오토펜 사진을 걸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설명문을 붙였다. 바이든이 복귀시킨 파리기후변화협약,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UNESCO)에서 트럼프는 다시 탈퇴했다. 나아가 지난 1월 7일에는 66개 국제기구 탈퇴를 명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바이든은 트럼프 1기를 미국 역사의 일탈이라 규정했지만 트럼프는 재선으로 이를 뒤집었다. 세계는 묻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탈이 아니라면 그가 야기한 변화는 얼마
01.23
우리 사회의 화두인 생명과 안전은 인간실존을 지탱하는 핵심가치다. 이는 국가 공동체에도 적용되는 명제다. 생존은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존재론적 무게를 지니기 때문이다. 지구촌은 베네수엘라 사태를 비롯해 상처투성이 무법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강철주먹을 과시하려고 부드러운 척 연기하던 벨벳 장갑을 벗어 던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멜로스 회담’ 편에서 기술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겪어야 할 것을 겪는다.” 이 싸늘한 명제는 더 차가워졌다. 국제법과 유엔헌장의 질서규범이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기대는 공허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염원하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외풍을 막아보고자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은 영세중립국이다’라고 명시하자는 시민들의 외침이 들린다. 코스타리카 경우를 보자. 1949년 헌법을 통해 군대를 폐지하고 1983년 영구적·적극적·비무장 중립을 선언했으며 2014년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