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4
2026
요즘 국제 정치의 화두는 단연코 ‘팍스 아메리카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모아지고 있다. 작년의 세계적인 관세전쟁에 이어 새해 들어 서반구와 중동에서 연이어 공격적인 군사작전을 펴고 있는 트럼피즘이 역설적으로 미국 힘의 한계도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이란의 끈질긴 저항 앞에서 고전하면서 일방주의의 반작용으로 동맹의 결속력까지 흔들리는 현실이 워싱턴에 더욱 쓰라리게 다가오고 있다. 지난 세기, 특히 2차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이대로 저무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아직 진행형이다. 중요한 지표에서 미국의 힘이 정체 또는 하락 추세에 있어 완만하지만 장기적 하강추세가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루에 비유하면 현재 오후 늦은 시간에 서 있고 황혼을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태양이 언제 떨어질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 답은 미국 스스로 하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운명은 외부 요인보다는 미국 내부의 요인에 좌우될 가능성
04.17
작년 6월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12일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새로운 운명을 맞기 시작했다. 이 해협은 이미 기원전 3000년 수메르 문명 시대부터 페르시아만-인도양 간 교역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전 기간 중의 ‘탱커 전쟁’이나 2019년 이란의 영국 국적 석유제품 운송선 나포 사건은 위치상 해협과 관련은 있었으나 해협 자체의 봉쇄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해협 봉쇄가 ‘전략 무기’ 목록에 오른 것은 작년 6월 이란 의회가 해협 폐쇄를 승인한 것이 처음이다. 다만 당시 이란 최고안보회의는 ‘12일 전쟁’이 종료되자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란은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을 받자마자 해협 봉쇄를 실행했다. 이는 생사기로에 놓인 이란 정권이 주변 아랍 국가들에 대한 공중공격과 함께 선택한 벼랑 끝 전술이다. 이란은 이를 통해 국제유가 앙등, 미국 내 물가 상승, 미국과 걸프 산유국 간 불화 발생을 노렸다. 사우디 등 걸프국가들은 안보
04.10
세계가 동시에 두 개의 지역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 전쟁은 결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군이 러시아 전선에 파병되면서 우리 안보 우려를 키웠고 이란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을 흔들며 우리의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에 잇따라 충격을 주고 있다. 한반도는 이미 세계적 안보 소용돌이의 영향권 안에 들어와 있다. 우리가 풀어야 할 핵심 질문은 한국이 이 격변의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비할 것인가, 아니면 강대국의 결정만 기다릴 것인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2주간 조건부 휴전과 교섭을 수용함으로써 미-이란 전쟁의 흐름을 협상국면으로 일단 전환시켰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교체 목표 대신 이란의 전략적 약화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라는 차선의 성과로 종전 ‘출구’를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동국면이 일단락되면 트럼프의 외교적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음 과제로 이동할 것이다. 1기 행정부 이래 미북 고위급 대화에 대한 트럼프의 개인적 관심은 일관되어 왔다. 중간선
04.03
트럼프 2기 들어 마가(MAGA) 내부의 움직임이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의 가장 충성스러운 하원 동맹이었던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엡스타인 파일 공개 거부와 대외 정책 등을 놓고 연이어 충돌하다 2026년 1월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우파 논평가 터커 칼슨도 이란 공격 이전부터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노선에 공개 비판을 이어왔고, 이란 공격 당일에는 “역겹고 악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 작전이 한 달을 넘어서면서 “왕은 없다(No Kings)”를 내건 시위도 미국 안팎에서 잇따르는 등 MAGA 외부에서의 반발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란 공격 이전부터 조금씩 드러나던 변화 움직임은 이란 공격을 계기로 더 넓고 깊은 층위에서 표면화됐다. 행정부 안에서 터져 나온 저항의 목소리는 MAGA 내부 긴장의 연장선이자, 동시에 그 긴장을 외부로 확산시키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대테러센터장 조 켄트가 사직서를 공개하며 이탈한 것이 그 첫 장
03.27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은 여러 측면에서 예측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로 끝내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 이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정권교체나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해외에 군사개입하던 전임 대통령들을 비난한 그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그는 중국을 제일 위험한 잠재 적국이라 규정하고 아시아에서 중국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저지하겠다고 한 후 지금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적잖은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오바마정부부터 시작되었던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라는 대전략과 어긋나고 있다. 10년 전부터 미국은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빼내 아시아 지역으로의 전환배치를 추진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주한미군 전략 자산들마저 중동으로 재배치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바이든행정부가 노력을 기울여왔던 동맹국과의 연대구도도 관세부과와 파
03.20
2025년 12월 통일부는 연두업무보고에서 ‘서울-북경 고속철’ 구상을 제시했다. 최근 들어 논의가 있었던 사안도 아니고 구체적 계획도 제시되지 않아 다소 의아하다고 생각하면서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렸다. 희망에 부풀어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것이 벌써 30여 년 전 일이다. 이후 유라시아로의 다양한 연결을 도모하면서 한반도 현실의 변화를 꿈꾸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까마득한 과거로 느껴진다. 한반도의 유라시아 물류 연결은 그 자체가 한반도 지정학을 변화시키면서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남북관계 발전을 전제로 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에 통일부로서는 매력적인 의제다.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국가적 과제로 추진되어 주목을 받았다. 한국은 사실상 섬나라이다. 1991년 소련 붕괴는 이러한 지정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떠올랐다. 북한의 개방과 남북관계 발전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 사업이
03.13
3월 8일, 인도는 다시 한번 들썩였다. 인도 대표팀이 국제크리켓평의회(ICC) 남자 T20 월드컵 2026 결승전에서 뉴질랜드를 꺾고 사상 첫 대회 2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벌어진 나렌드라 모디 스타디움은 물론 전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크리켓은 인도에서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국민 감정의 출구이자 집단적 자부심의 상징이다. 그러나 환호가 절정에 이른 바로 그 순간에도 뉴델리 외교가는 전혀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중동정세가 급속히 흔들리는 가운데 인도는 흥분보다 절제를 택하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인도 외교에 묘한 장면을 남겼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전쟁이 본격화되기 불과 며칠 전인 2월 25~26일 이스라엘을 국빈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정상외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든 셈이다. 그만큼 인도의 계산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03.06
2004년 중반부터 2008년 초까지 베네수엘라 대사를 역임한 필자에게 올해 벽두에 전해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재임 시절 여러 차례 만났던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국정을 책임졌던 지도자가 국제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경우 자신의 파멸은 물론 국가의 운명까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위기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반미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하자 베네수엘라를 반미진영의 핵심 국가로 지목했다. 마두로 집권기에는 선거부정과 인권탄압 문제가 불거지며 정치·경제적 압박이 본격화했다. 야권이 장악한 국회의 의장 과이도와 행정부 수반 마두로는 권력 정당성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2019년 1월 과이도가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자 미국은 이를 공식 인정하고 마두로정권을 겨냥해 국영석유회사(PDVSA) 등에 대한 강력한 경제
02.27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필리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마주 앉았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국방·경제·디지털협력을 한단계 끌어올리기로 했다. 원전 재개 타당성 조사, 방산 수출,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 등을 통해 실질적 경제협력을 도모했다. 이번 이 대통령의 필리핀 방문은 1949년 수교 이후 축적해 온 신뢰를 제도적 틀로 한 단계 끌어올려 양국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양국 간에는 안보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여지가 많다. 특히 역내 안보환경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해양 안보 역량 강화와 군 현대화 협력은 양국 모두에게 전략적 가치가 크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전투병력을 파병한 필리핀은 FA-50 경공격기 12대, 호위함 2척, 초계함 2척, 원해경비함 6척을 잇달아 구매하는 등 지난 10년간 약 30억달러 상당의
02.20
냉전 이후 35년간 유지됐던 핵군축 체제가 무너졌다. 미국과 러시아의 실전 배치 핵탄두 수를 각 1550기로 제한하던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2월 5일 종료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이유로 2023년부터 조약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은 후속 합의에 2030년까지 핵탄두1000기 이상의 확대가 예상되는 중국의 참여를 요구했으나 중국은 거부했다. 러시아는 2024년까지 벨라루스에 전술핵 수십 기를 배치했고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도 전술핵 배치 준비 동향을 보인다. 첨예한 핵위협 속에 유럽은 자체 핵우산 논의에 착수했다. 한국도 이 흐름을 주시해야 한다. 미국은 그간 러시아 핵억제를 위해 나토에 핵공유를 제공해 왔다. 1957년 소련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핵공유 논의가 본격화했다. 미국은 양자협정으로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동맹국에 배치했다. 핵무기 운용은 미국이 전담했다. ‘기지형’ 핵공유였다. 이는 적성국과의 군비경쟁과 핵 능력 고도화
02.13
독재자의 ‘착취’는 국민으로부터 권력과 부를 수탈하기 때문에 국가를 망친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스모글루 교수와 로빈슨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특정 국가가 가난한 이유는 지리적·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착취적 권력자가 빈곤을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도자의 실수나 무지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것이다. 노예 식민지배 억압을 겪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 이후 독재 내전 부패 기아 질병의 고통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15억명 인구의 아프리카 54개국 중 절반에 해당하는 27개국이 독재국가이며, 30년 이상 독재자가 군림하는 나라가 5개국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7개국에서 30년 이상 1인 독재가 행해지는 상황에서 그 대다수가 아프리카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8선을 한 카메룬 대통령 비야는 92세 최고령으로 44년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새 임기 7년을 다 채우면 99세로 무려 50년 독재를 하게
02.06
싱가포르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한가운데서 ‘시간’을 국가 전략의 중심 변수로 다루는 나라다. 첨단 인재에게는 탄력적인 근로시간과 높은 보상, 빠른 승진과 재도전 기회를 열어두는 한편, 법·제도 차원에서는 과도한 장시간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유지하는 이중 구조를 택하고 있다. 싱가포르 근무 시절 같은 프로젝트를 두고 한국 기업은 국내 근로시간 규제를 그대로 안고 뛰는 반면, 중국·일본 기업은 현지 관행과 유연한 인력 운용으로 대응해 나가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한국 기업만 ‘타이트한 규제’라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경주에 나서는 형국이었다. 한때 중국 IT기업의 ‘996 근무제’는 과잉 경쟁과 인권 침해의 상징으로 비판받았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이 방식은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등 첨단 기업의 고속 성장을 떠받친 그림자였다. 이와 함께 주 7일 하루 24시간 근무 및 대기를 뜻하는 ‘007 근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며 중국식 발전 모델의 비
01.30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아서 반덴버그를 아는 이는 드물어도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춘다”는 그의 격언은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 말은 지켜지지 않는다. 외교는 오히려 국내정치의 연장인 경우가 많다. 양당 간 분열이 깊어지면서 상대 당에 대해 정치적 선호뿐 아니라 기본적 가치관마저 다르다고 여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과 철저히 대립각을 세운다. 백악관에 역대 대통령 사진을 전시한 기념공간을 만들면서도 바이든 대신 오토펜 사진을 걸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설명문을 붙였다. 바이든이 복귀시킨 파리기후변화협약,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UNESCO)에서 트럼프는 다시 탈퇴했다. 나아가 지난 1월 7일에는 66개 국제기구 탈퇴를 명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바이든은 트럼프 1기를 미국 역사의 일탈이라 규정했지만 트럼프는 재선으로 이를 뒤집었다. 세계는 묻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탈이 아니라면 그가 야기한 변화는 얼마
01.23
우리 사회의 화두인 생명과 안전은 인간실존을 지탱하는 핵심가치다. 이는 국가 공동체에도 적용되는 명제다. 생존은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존재론적 무게를 지니기 때문이다. 지구촌은 베네수엘라 사태를 비롯해 상처투성이 무법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강철주먹을 과시하려고 부드러운 척 연기하던 벨벳 장갑을 벗어 던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멜로스 회담’ 편에서 기술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겪어야 할 것을 겪는다.” 이 싸늘한 명제는 더 차가워졌다. 국제법과 유엔헌장의 질서규범이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기대는 공허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염원하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외풍을 막아보고자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은 영세중립국이다’라고 명시하자는 시민들의 외침이 들린다. 코스타리카 경우를 보자. 1949년 헌법을 통해 군대를 폐지하고 1983년 영구적·적극적·비무장 중립을 선언했으며 2014년 인
01.16
지난해 1월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했을 때 중동전문가들의 예측은 대체로 일치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주의, 신고립주의 기조가 1기보다 강화될 것이며 미군 관여 축소, 친이스라엘 노선 강화, 가자분쟁 조기 종결, 아브라함협정 확대, 이란 핵에 대한 강경대응이 이어지리라는 전망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방향은 맞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미군 관여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중동 주둔군 4만~5만명 규모는 그대로 유지됐고 오히려 개별 군사 개입은 늘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지원이 대폭 강화됐고 후티 반군과 시리아 ISIS에 대한 보복공습이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6월 22일에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초유의 공습을 단행했다. 카타르에는 미군기지 주둔과 관련해 안전보장까지 약속했다. 철수는커녕 관여를 확대한 셈이다. 이스라엘 정책에서도 의외의 모습이 나타났다. 네타냐후의 무모한 확전으로 두 지도자 관계가 악화됐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했다. 무기지원은 물론
01.09
새해 벽두 심야에 전광석화처럼 실행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강제 체포와 미국 압송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미국의 신안보전략에 천명된 소위 ‘돈로 독트린’의 첫 실행 사례가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돈로 독트린은 19세기 초의 먼로 독트린이 21세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MAGA)와 묘하게 결합한 트럼프 자신의 조어다. 그러나 두 독트린은 유사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남북 미주대륙을 포괄하는 서반구(Western Hemisphere)를 중시하는 안보 사고라는 면에서 유사하지만, 그 조건과 배경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먼로는 세계 10위권 밖의 신생국, 트럼프는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다. 먼로 독트린은 유럽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소외된 방어적 입장에서 나온 노선이었다. 반면 돈로 독트린은 지난 80년 간 유지된 자유 질서를 수호하는 세계경찰로서의 미국 역할에서 자진 후퇴를 의미하면서도 서반구 중심의 미국 패권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포
01.02
지난해는 트럼프의 관세전쟁과 미국 우선주의가 세계를 뒤흔든 한해였다. 동맹국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정부는 미측 요구에 상호 국익에 부합하는 원칙적 타협점을 찾으며 위기를 넘겼다. 새해는 실행의 시간이다. 동맹과 안보 운영에 혁신적 사고 전환이 필요하고 구체적 성과로 보여줘야 할 때다. 주목할 것이 있다. 트럼프행정부가 지난해 국가안보전략에서 나토동맹 파트너인 유럽의 ‘문명적 소멸’ 위험까지 경고하며 근본적 문제들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미 행정부는 가치보다 이익 기반 거래전략과 유럽연합(EU)의 다자주의 문제를 제기했다. 유럽이 러시아와 전략적 안정을 재확립하고 안보의 일차적 책임을 지는 자립적 동맹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동맹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유럽은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약화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지역안보에 직결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에서조차 배제되어 있다. 내부 정치적 분열로 일치된 대러 전략이
12.26
2025
매년 12월이 되면 한국 사회는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에 시선을 집중한다. 성적 발표와 함께 올해 수능의 난이도가 적절했는지, 변별력은 충분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된다. 최근에는 재벌가 자제의 우수한 성적이 화제가 되며 여전히 ‘누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가’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는 한국 교육의 민감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교육이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적 담론의 중심에 서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치열한 교육열을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인도다. 인도의 명문 공과대학 인도공과대학(IIT)에 입학하기 위한 공동입학시험(JEE)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매년 수백만명의 학생이 응시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극소수다. 특히 상위 100위 이내에 드는 수험생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가족과 지역사회의 자부심이 된다. 이들의 얼굴과 이름은 일간지와 대형 입시학원 광고에 실리고 ‘전국 몇 위’라는 숫자는
12.19
일본이 다시 한번 국가운영의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정보국’ 신설은 단순한 조직개편이 아니다. 2차대전 이후 80년간 유지된 전후 체제를 넘어 일본이 ‘보통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 시스템 전환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아베 신조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이를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국가안전보장국(NSS)을 설치해 외교·안보정책을 총리 관저 중심으로 통합하는 전략조정 체계를 구축했다. 다카이치정부가 추진하는 ‘정보 개혁’은 여기에 더해 정보수집과 분석 역량을 제도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정책결정 시스템의 완결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이번 정보개편의 핵심은 속도와 집중이다. 현재 일본의 정보기능은 내각정보조사실 경찰청 공안조사청 방위성 외무성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다. 정보의 축적 자체는 가능했지만 이를 국가 차원에서 신속히 통합·분석해 하나의 전략 판단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다카이치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12.12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미국의 19번째 ‘국가안보전략’이 논란을 낳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작성된 33쪽 문건은 역대 문건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 미국의 역할과 세계의 이념적 가치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이번 문건이 전략의 최우선 순위를 미국 본토와 서반구에 두고 먼로주의를 소환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을 ‘문명 소멸’ 위기에 처했다고 하고, 유럽연합(EU)의 초국가적 정체성과 진보정책을 비판하며 미국이 이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은 과도해 보인다. 한국은 이번 문건에 세번 언급된다. 중국의 경제 재조정과 대외 영향력 견제를 위한 파트너로 두번,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말라카해협) 방어를 위한 국방비 증액 필요국으로 한번 등장한다. 한국에 기대하는 바가 중국 견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중국은 이번 문건에서 경제적 경쟁자, 공급망 취약성의 원천, 무역 파트너, 지역 패권 추구 저지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트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