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산업데이터, 제조업 성장엔진으로

2024-06-20 13:00:03 게재

우리나라 경제는 제조업의 생산과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제조업 비중은 30%에 육박하며, 수출의 제조업 의존도는 세계 2위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은 매우 높다. 지난해 7월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발표한 제조업 경쟁력지수(CIP)를 보면 53개국 중 독일 중국 아일랜드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1990년대 10위권 밖에서 맴돌다가 2004년 이후부터 5위 안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위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세계 1,2위를 차지했던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은 2020년 6위, 2021년 8위로 밀려났다. 반면 1990년대 초반 30위권 밖에 있는 중국은 2016년 이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조업 위기로 수출절벽 현실화될 수도

우리나라 제조업에 위기요인이 적지 않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 육성에 열을 올리면서 세계 제조업 지형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여기에 미중 전략경쟁으로 중국의 제조기술 자립이 가속화됐고, 인도 아세안으로 제조시설을 옮기면서 우리 수출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지난 20년간 주력 수출품목의 변화가 없는 등 제조업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제조업이 성장할 기반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용인반도체 클러스터는 5년이 되도록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자칫 수출 증가 품목이 없어지는 수출절벽이 수년 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제조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산업데이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 수주·발주 기계운전 판매·AS 등 일련의 제조활동에서 산업데이터가 생성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며 새로운 산업을 만들기도 한다. 농기계 제조업체인 존디어가 농업에 관한 데이터를 파는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여기에 더해 오랜기간 기업내 축적된 산업데이터는 중국과 아세안 등의 신생 후발기업을 견제하는 데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더욱이 개인정보보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제조분야에서 데이터 이용이 확산되면 사회전반에 인공지능과 디지털전환을 촉발하는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 강국인 일본과 독일은 산업데이터 활용에 집중하고 있다.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가 장악한 SNS나 스마트폰 검색엔진 등 소비데이터 영역에서 경쟁은 어렵다고 본다. 대신 강력한 제조업에서 나오는 산업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과 디지털전환시대를 이끌겠다는 전략이 필요하다. 독일은 2011년 인더스트리4.0, 2014년 산업데이터공간(IDS) 이니셔티브, 2017년 국제데이터공간협회(IDSA) 설립 등 산업데이터 활용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 자동차산업 데이터연계플랫폼 ‘카테나-X’ 운용을 시작했으며 최근 이를 제조업 전반에 확산하기 위해 ‘매뉴패처링-X’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이 중심이 되어 기업간 산업데이터 공유, 표준화 등 제도 기반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 관민 데이터활용 기본법, 2017년 데이터 거래 규정, 2018년 생산성향상 특별조치법 등의 제정을 추진했으며, 지난해 4월 ‘우라노스 에코시스템 (Ouranos Ecosystem)’을 출범시켜 산업계 전반에 데이터 연계를 꾀하고 있다.

산업데이터 활용 프로젝트 서둘러야

우리나라는 2022년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이 제정되고서야 산업데이터 활용기반 구축이 본격화된다. 이 법에 따라 지난해 1월 제1차 산업디지털전환 종합계획이 수립되었고 산업전반에 AI를 내재화시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 일본에 비해 많이 뒤져 있다. 제조업이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진다. 산업데이터는 우리 제조업이 위기를 넘어 경쟁력을 유지할 해법이 될 수 있다. 산업데이터의 본격적인 활용을 위한 프로젝트를 좀더 서둘러야 할 것이다.

김용래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전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