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진짜 교육 카르텔

2023-06-22 11:58:53 게재
박종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킬러문항'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쓰러졌다. 정치권의 십자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19일 사임했다. 교육부의 대학입시 담당 국장이 전격 교체된 지 사흘만이다. 6월 수능 모의평가 후폭풍이다.

이른바 킬러문항은 수험생 70% 이상이 틀리는 고난도 문제를 가리킨다. 한 문제에 당락이 갈리는 상황이다. 상위권 수험생이라도 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문제는 출제하지 말도록 지시한 배경이겠다. 옳은 말씀이다. 공교육 교육과정에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거다. 비문학 국어문제나 과목융합형도 출제하지 말라는 거다. 이런 문제가 수험생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만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는 거다.

그런데 교육계의 '이권 카르텔'이 말을 듣지 않았단다. 6월 모의평가에 버젓이 킬러문항이 출제됐다는 거다. 대통령은 교육계의 고질적 불공정에 분노했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달리 반응했다. 킬러문항이 사라지면 쉬운 수능, 즉 '물수능'이 되는 것 아니냐 긴장한다. 그렇게 되면 특목고와 자사고 학생들에게는 재앙이다. 내신성적에서 불리한 그들이다. 그나마 수능성적으로 지원하는 정시모집에 희망을 걸고 있는데 무더기 1등급이 쏟아지면 어쩌란 말이냐.

대학서열화와 학벌사회가 본원적 문제

사실 입시를 둘러싼 곡절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해방 이후 입시제도가 19차례나 바뀌었다. 1974년 고교평준화도 특목고와 자사고로 보완했고, 예비고사~학력고사~수학능력시험으로 시험 성격도 변화했으며, "한가지만 잘 해도 대학 간다"로 대표되는 고차방정식 입시로 흘러왔다.

그럼에도 "바로 이것이다"하는 입시제도는 없었다. 사실 이번에 제기된 공교육 밖의 '킬러문항'이나 '이권 카르텔'은 해묵은 암(癌)을 놔두고 탈모방지책을 논의하는 것과 다름 없다. 출제가 문제가 아니라 대학서열화와 이로써 빚어진 학벌사회가 본원적인 문제 아닌가.

원래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학생선발권을 대학 자율에 맡기자는 교육전문가이다. 그리하면 수험생을 일렬 종대로 세우고 차례로 잘라가는 서열화는 완화될 것이다. 여기에 평생교육을 내실화해 고졸 이후 직장에 다니다 원격수업으로 서울대나 특성화된 국립대에 편입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입학이 평생 특별우대권을 보장하는 '사다리 없는 기득권'이 다소 희석되지 않겠나.

실제로 미국 UC버클리의 2022학년도 신입 합격자는 1만4648명이다. 여기에 편입생이 5268명이다. 편입생의 96.3%는 캘리포니아 2년제 대학 출신이다. 우리로 치면 지방 전문대에서 서울대로 편입하는 거다. 하버드대도 그렇다. 뉴욕주립대 철학과 졸업생이 하버드대 평생교육원에서 프리메드 과정을 이수하고 현재 하버드 메디컬스쿨 2년차다. 이런 게 공정한 기회이고, 자유의 본 모습 아닌가.

하지만 대학입시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교육부, 능력과 적성보다 순간의 점수로 자른 뒤 "차점자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는 프레임에 안주하는 스카이(SKY)대학, 한 문제가 인생을 결정한다며 학부모의 주머니를 터는 입시관계자의 콘크리트 이권 카르텔이 본질적인 교육계 암(癌) 아닌가.

이를 잘 아는 이 장관이 "나도 전문가이지만, (대통령에게) 배우는 상황"이라고 말하면 우리 교육은 희망이 없다. 물수능이냐 불수능이냐, 매년 오락가락 '반년소계(半年小計)'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시대에 창의력이나 추리력 대신 교과 암기력 테스트에 매진해 어쩌란 말인가.

미국의 UC버클리 UCLA처럼 우리 국립대도 통합운영해 거점별로 특성화하자는 교육개혁안도 번번이 좌절됐다. "그나마 똑똑한 대학 하나(서울대) 있는데, 그마저 고만고만한 대학 만드냐"는 논리다. 일본은 고만고만한 대학과 연구소에서 노벨상이 쏟아진다. 1949년 이후 물리학상 12명, 화학상 8명, 생리의학상 5명이다. 우리의 똑똑한 대학은 단 한명도 없다. 경쟁력 없는 대학 구조를 그대로 두고 입시만 만지작거려야 해방 후 20번째, 21번째로 변천사만 더할 뿐이다.

오래 전 미국 LA에서 수학능력시험(SAT) 만점을 맞고도 하버드대학 진학에 실패한 한인 부모가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일이 있다. 점수만능 우리 관점으로는 당연히 소송 감이지만, 리더와 민주시민의 자질을 보는 미국대학 관점으로는 점수만으로 뽑는 것이야 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겠다.

대학 담장과 문턱 없애는 게 정답

빠르게 가는 것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썩은 음식은 그대로 두고 몰려드는 파리떼를 향해 파리채를 들지, 킬러를 뿌릴지, 어디부터 손볼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썩은 음식을 치우면 된다.

대통령이 지적한 이권 카르텔 문제도 본원적인 개혁이 정답이다. 대입제도는 바꿀 만큼 바꿔 봤다. 이제 대학의 담장과 문턱을 없애고 '계속 교육'과 '확장 교육'으로 바꾸는 거다. 선발은 어떤 잣대로 뽑든 대학 자율로 하고. 그것이 자유와 공정의 기치에도 맞지 않겠나.

박종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