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초(超)연결시대 정치

2023-08-03 11:44:45 게재
박종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한다. 때로는 '적과의 동침' 혹은 '가재는 게 편'으로 묘사된다. 서로 극한대치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지금 이대로~"를 바라는 우리네 정당정치를 빗댄 표현들이다.

그럴 것이 양대 정당의 지향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말로만 보수, 무늬만 진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나.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 뒷받침한다.' 다소 진보적인 이 슬로건은 다름 아닌 국민의힘 정강정책 1조1항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전국민 기본소득 공약과 초록 동색이 아닌가. 국민의힘 10대 기본 정책인 '기회의 나라, 사법개혁, 경제혁신, 깨끗한 지구, 약자와 동행, 남녀평등'에 이르면 잠시 헷갈린다. 그러다 '경제민주화 구현' 대목에서 "아하, 김종인~"하며 그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정책 간판은 이렇게 걸었지만 실제는 사법개혁 대신 검찰권 되돌리기와 재생에너지 비중 축소, 노동자단체 압박과 여성가족부 위상축소를 밀어붙이는 표리부동에서 이면의 본색을 간파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 정당, 좁혀서 양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지향점은 똑같다. 재선(再選)이다. 국가적 어젠다가 아니다. 소음 수준의 요란한 나팔수 역할도, 두텁게 분칠한 얼굴을 이 방송 저 신문에 들이미는 것도 다 공천 때문이리라.

이들에게 공통의 적이자 계산이 필요한 변수는 강력한 제3지대 혹은 제3신당이겠다. 과연 가능할까. 내년 4월 10일 제22대 총선까지 8개월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순식간이다. 하지만 우리네 정치 역사에서 본다면 지각변동까지도 가능한 세월 아니겠나.

제3신당의 지각변동은 가능할까

바로 전 2020년의 21대 총선에선 선거일을 불과 두달 앞두고 미래통합당이 출범했다. 선거 참패 이후 현재의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었지만. 2016년의 20대 총선에서도 선거를 3개월여 남기고 더불어민주당이 출범했다. 당시로서는 예상밖으로 박근혜의 여당에 1석 차 승리를 거둔다.

묘한 것은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이도,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이도 김종인씨였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부쩍 신문과 방송 인터뷰를 통해 제3당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실제 물밑 움직임에 힘을 싣는 것인지, 희망과 전망을 버무린 정치적 '촉'인지는 모를 일이다.

여하튼 현재 민주당의 친명과 비명 간 첨예한 갈등, 국민의힘은 친윤과 유승민과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비윤의 반목이 정계개편 지렛대의 힘점이 되는 모양새다. 여야에 실망한 무당층이 받침점인데 그 비율이 50%에 가까워지고 신진세력이 힘점에 모여들면 아르키메데스의 말처럼 "지구도 들어올릴 수 있는" 작용이 가능하지 않겠나.

돌이켜보면 우리 정당사는 위인설당(爲人設黨)으로 얼룩졌다. 1987년 이후 대통령의 정당명은 모두 달랐다. 자칭 보수의 경우 민주정의당 노태우, 민주자유당 김영삼, 한나라당 이명박, 새누리당 박근혜에 이어 국민의힘 윤석열까지 '같은 뿌리 다른 이름'이었다. 진보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으로 다르다. 징크스의 관점으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선 이재명에게는 불운이겠다.

모두가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정당을 개편했다면, 윤 대통령은 혈혈단신으로 입당해 당선 이후 자신을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는 모양새가 전임자들과 다르다. 본디 여의도 정치에 불신과 혐오를 보였던 그에게 정당은 단지 필요조건이었을 뿐일까. 그가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으로 갈 수는 없고…"라고 말한 것도 어쩌면 "이 당이나 저 당이나 오십보백보"란 생각이었던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우리 정당정치는 무채색이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민주주의임에도 다채로운 색감과 선명한 채도가 없다. 다만 회색지대에서 서로 흑백으로 가르는 모노톤(monotone) 정치이다. 공교롭게도 국민의힘 빨강과 민주당 청록은 보색관계이다. 보색은 두 빛깔을 합치면 무채색이 된다.

만일 제3지대나 신당이 출현한다면 선명한 색감이길 바란다. 그 형태는 초연결시대에 걸맞은 직접 참여형 플랫폼이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그리스 직접민주주의의 21세기형 재현을 목표로 말이다. 초연결 상황에선 모집단 여론조사가 아닌 진짜 여론수집이 가능하다. 여론을 거스르면 국민소환 성격의 '디지털 도편추방'도 가능하고.

대의제도 시대에 맞게 손 볼 시점

거리와 시간 제약이 없는 네트워크 시대이다. 이제 대의(代議)제는 대대적으로 손볼 시점이다. 국민의사의 왜곡과 누락이 없도록, 정치적 소외지대가 없도록, 정의가 지체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이런 비전을 약속하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기득권 정당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지 않겠나. 그게 초연결시대 정치혁신이겠다.

박종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