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중국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의 부정합성

2023-11-09 11:41:20 게재
이창열 한국통일외교협회 부회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최근 미국의 유명 공과대학을 둘러보면서 자유롭지만 치열한 연구 분위기와 단기과제보다 새로운 방향의 연구를 장려하는 모습에서 미국의 저력을 느꼈다. 우수한 중국학생들이 연구인력풀에서 배제되는 연구환경이 아쉽다는 미국 교수의 순수한 속내도 흥미로웠다.

중국학생들이 우수하다는 평가와 함께 중국이 과학기술연구에서 미국을 능가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들도 이어지고 있다. 5월 네이처는 2022년 82개 학술지를 분석한 네이처 인덱스를 발표하면서 중국이 생명과학을 제외한 자연과학 전 분야에서 미국을 앞섰다고 했다. 8월 일본 문부성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상위 1% 논문에서 중국이 1위라고 발표했다.

중국의 괄목할 만한 과학기술 부상을 보면서 한편으로 중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교차되는, 말하자면 기술력과 경제력의 부정합성이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중국의 연구역량 향상에 대한 유보적 견해가 상당하다. 인구대국 중국의 자체 인용회수가 논문실적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양대 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만 보면 2022년 기준 미국이 786편으로 중국의 186편보다 많다는 점, 가장 많이 인용된 중국논문들이 미국과 협력으로 진행된 점 등 에다 미국의 중요연구에 대한 접근 제한으로 연구역량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있다.

뒤늦은 민간역량 강화 선언은 만시지탄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이 전기차 이차전지와 같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우주개발 반도체 양자컴퓨터 등 국가가 선정하는 목표에 집중되는 것이 양날의 칼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제조 2025 보고서는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가 종합국력의 신장만이 아니라 "국가안보를 보장하며 세계적 강국이 되는 필수적인 경로"라고 했다.

중국은 과학기술을 국가안보나 국력경쟁에 우선 활용하려는 욕구를 줄이고 민생증진과 직결되는 종합국력 발전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원천기술에 집중하다가 상용화로 경제력을 키운 일본에게 경제적 우위를 위협받았던 사례나 소련이 국가가 중시하는 군사·안보 분야에 연구역량을 집중함으로써 과학기술의 상용화를 등한시했던 반면교사도 있다.

국가목표 우선의 연구는 당장 필요한 기술의 캐치업에 집중하고 새로운 선도기술의 개발이 미뤄져 서구의 원천기술에 종속되는 문제도 있다. 미국이 디리스킹 전략을 할 수 있는 것도 원천기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천기술은 대부분 민간의 자율적 연구환경에서 탄생된다는 점에서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연구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미국에 비해 중국이 쉽게 바꾸지 못하는 조건으로 중앙의 통제,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로막는 문화, 세계의 재능을 끌어들이는 동화 능력의 부재를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이 경제성장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GDP 증가에는 기술만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역할도 작용한다. 기술력 향상과 제도개선 등으로 구성된 총요소생산성의 제고뿐 아니라 한정된 자본이 효율성이 높은 부분으로 배분돼야 하고 노동자들의 생산성도 향상돼야 한다.

중국은 기술력 확보를 위해 절치부심한 것에 비해 자본의 효율적 사용이나 노동력의 질을 향상시키는 노력은 부족했다. 특히 중국 GDP 생산의 30%를 좌우하는 부동산산업의 경우 노동과 자본이 대거 투입됐지만 오히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이 경기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3분기에 예상보다 높은 4.9% 성장을 한 것은 투자위축에도 민간소비가 늘어나서 가능했다. 경제발전의 동력이 과학기술강국을 지향하는 정부 주도의 투자보다는 민간이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에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민간기업이 중국경제 성장의 주역임을 역설하면서 민간의 과학기술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다. 7월 14일 중국 당중앙과 국무원은 민영경제가 '중국식 현대화의 선도역량'이자 '2049년 두번째 100년 목표 실현의 중요역량'이며 '민영기업의 연구개발투입을 확대하여 과학기술혁신능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과학기술 혁신 분발하는데 한국은

우리의 경쟁상대인 중국이 과학기술 혁신에 분발하는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R&D 예산을 16.6% 축소한다는 소식은 우려를 자아낸다.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이 되는 현실과 배치되고 이공계 인재의 이탈을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절약이라는 소탐으로 과학기술 약화라는 대실은 범하지 않아야 한다.

이창열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